명색이 기자라면서 대책 없이 혼동해 사용하는 단어가 꽤 많다. 최근에도 뒤늦게 의미의 차이를 깨친 단어들이 있다. ‘불사르다’와 ‘불태우다’이다. 열정을 불사르고, 이 한 몸 불태워 어쩌고저쩌고하는 식의 표현들을 뒤죽박죽 사용했으나 사실은 잘못된 것이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불사르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불에 태워 없앤다’와 ‘무언가를 남김없이 없애 버린다.’ 전자는 서류 더미나 책을 불사르다, 후자는 번뇌나 잡념을 불사른다는 것이 적절한 예문이다. 불태우다 역시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무언가 불이 붙어 타게 하거나, 비유적으로 어떤 감정이 끓어 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열정을 불태우고 의지를 불태운다는 표현이 맞다. 이라는 책을 보니 불사르면 없어지는 것, 불태우면 더 커지는 것이라고 명쾌하..
기자와 정치인은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어려운 관계다. 뉴스를 원하는 기자와 시민의 주목을 원하는 정치인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 하지만 뉴스를 원하는 기자와 유리한 뉴스만 원하는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는 ㅂ없다. 그런데 이런 직업적 속성을 오해하는 정치인과 기자가 없지 않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그제 기자들을 가리켜 “나쁜 놈들”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이제 내가 답변을 안 하겠다”고도 했다. 기자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을 반복 질문하자 거칠게 불쾌감을 피력한 것이다. 이것이 과연 대선주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귀를 의심케 한다. 시민들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그의 입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올바른 용단”(합의 직후)→“궁극적 완벽한 합의는 피해 할머니들의 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엊그제 기자들과 만나 “홀로 하려니 금전적인 부분부터 빡빡하다. 현재는 당이 없다보니 다 내 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다. 종국적으로는 어떤 정당이든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정당과 함께하겠다. 설 연휴 이후 입당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입국 때는 “지금 당장은 어떤 정당에 바로 소속한다든지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불과 1주일도 안돼 정당 입당에 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조직과 자금 지원이 가능하고 검증 등 수많은 난관을 넘기 위해서는 기존 정당에 몸을 담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 선택의 이유가 정치 비전과 정책을 함께 실현하기 ..
진보와 보수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 초등학생 수준의 어법으로 말한다. 진보가 필요한 시대에는 진보가 옳고 보수가 필요한 시대에는 보수가 옳다. 국운이 승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선순환이 이뤄진다. 그런데 난조에 빠지는 사회가 있다. 진보시대에 보수정권이, 보수시대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는 경우이다. 1994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7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차례 지내고 퇴임할 무렵이었다. 그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였지만, 국민들은 사회당의 장기집권과 높은 실업률에 염증을 냈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파정권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이때 좌파 정치인 자크 들로르가 나타나면서 대선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테랑 정권에서 경제·재무·예산부 장관을 거친 들로르는 1985년 ‘유럽의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주 귀국한 후 폭넓은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귀국 이튿날부터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와 고향인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에 이어 그제는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을 견학했다. 어제는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들렀고,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과 세월호 현장인 팽목항, 광주 5·18묘역을 방문한다. 자신이 제시한 대통합과 정치교체라는 과제 실천에 옹골차게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행보가 ‘정치교체’ 슬로건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보여주기식 행보와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인물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심판받은 정치세력과 함께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것은 코미디다. 또 반 전 총장은 (박근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년간 유엔 수장으로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어제 귀국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메시지를 통해 “부의 양극화,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다. 수많은 지지 인파 속에서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된다”며 국가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포부와 각오도 밝혔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무대를 누빈 한국인에게 시민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향후 5개월 안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짧은 기간에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반 전 총장은 외교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했지만 국내 정치에는 문외한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현안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하기 전날인 어제 그의 친동생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가 미국 연방법원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는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의 초고층빌딩 ‘랜드마크 72’의 매각을 위해 중동 관료들에게 50만달러의 뇌물을 주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사법당국은 이들의 범죄를 매우 무겁게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의 대변인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반 전 총장도 보도를 보고 알았다. 전혀 아는 바가 없을 것이고, 굉장히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동생·조카 문제는 이미 알려진 사건으로, 반 전 총장의 연루설이 계속 제기돼왔다. 2013년 자금 압박에 몰린 경남기업이 회사고문인 반기상씨와 미국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그 아들 주..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우리 과 주무관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하는 인사말이다. 이 친절한 인사말처럼 무례한 민원 전화도 끝까지 친절하게 응답을 해준다. 그 모습을 보며 오랜 시간 훈련된 공무원의 저력이 느껴져 감탄할 때가 있다. 한편 이 인사말을 들을 때마다 ‘공무원들은 시민들을 동료 시민으로서보다 민원인으로 만날 기회가 더 많겠구나’라는 생각 또한 든다. 이는 그의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데 중요한 자극제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시민을 민원인으로 만나야 했던 전문관료가, 어느 한순간 시민들의 열정을 모아 사회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정치인이 된다고 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가 직접 시민을 상대할 필요가 적었던 외교 고위 공무원이었다면 문제는 조금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