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국내 최대 재벌 부회장 아들의 중학교 부정입학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귀족학교’로 통하는 모 국제중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한 것이 문제였다. 한국 최고 부자의 아들이 사배자라니. 시민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학교 측은 부모가 이혼해 사배자 전형의 ‘한부모가족’ 대상이라고 해명했다. 국제중 일반전형은 모집정원의 3배수를 뽑아 공개추첨으로 합격자를 선발한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사배자 전형은 서류 심사만 통과하면 합격할 수 있다. 소위 ‘빽’이 통하는 것이다. 특권층 자녀의 입시부정만큼 학부모를 허탈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입시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의 ..
- 2017년 6월 13일 지면게재기사- 대통령 비선실세 최서원씨의 딸 정유라씨의 부정입학은 입시의 공정성 문제를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으로 수시전형의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이번 정부는 수시전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수능절대평가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한다. 수시전형 불신 심화의 방증이다. 수능으로 학생을 뽑는 방식은 사용기간이 만료되었다. 객관식 문제는 기본적인 학력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 창의성이나 도덕성 등 다양한 특성을 평가하기에 부족하다. 객관식 평가로 학생을 선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독서와 실험, 수행평가와 토론, 글쓰기와 과제 제출 등 다양한 지적 활동으로 학생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학생과 학부모, 대중이 이에 반대한다. 그들의 외침은 대체로 같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철없는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씨가 삼성의 뇌물을 받은 것은 당시 스무 살도 안된 정씨의 갑작스러운 임신·출산과 관련이 있다. 어린 딸의 장래가 걱정된 최씨는 사람들 눈을 피해 딸을 독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승마 강국 독일은 승마 선수인 정씨가 그렇잖아도 전지훈련을 가고 싶었던 곳이다.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일찍부터 간파한 삼성이 정씨를 위해 그랑프리대회 우승마와 생활비 등을 댔다. 최씨가 재벌·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도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딸이 금메달을 따는 데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결국 정씨 임신이 ‘독일 승마 유학 → 삼성 뇌물 수수와 K스포츠재단 설립 → 언론 추적 보도와 검찰·특검..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가 수의를 입고 초라하게 끌려가는 모습이 뉴스를 장식하자 많은 사람들은 ‘사필귀정’을 머리에 떠올렸다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저)러려고 교수가 됐나 하는’ 모욕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화면 속 그는 을 쓴 야심 찬 문학청년도, 시대착오적인 박정희주의자이거나 ‘능동적 부역자’도 아니었다. 소심하고 비굴한 ‘하수인’이나 화이트칼라 범죄의 피의자처럼 보였다. 그가 조교에게 죄를 떠넘기려 했다는 최악의 행태도 ‘우병우스러운’ 뻔뻔함보다는 비굴함의 발로로 보였다. 몇몇 이화여대 교수들이 총장(또는 그 배후)의 사주나 강요를 받아 정유라를 위해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비리는 황당하고도 몰상식한 범죄지만, 사실 그 디테일들은 오늘날 한국 대학의 평범한 민낯의 한 부분일 것이다. 어떻게 감히, 총장이..
“전혀~ 몰랐죠. 학적팀에서 e메일을 받고 깜짝 놀라가지고. ‘아이고, 정유라가 내 수업을 들었어요?’라고 해서 그쪽도 놀라고 저도 놀라고 그랬습니다. 하하.” 기자는 류철균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와 지난해 11월 여러 차례 통화했다. 류 교수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취재 중이었다. 류 교수의 행적은 의심스러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원한 청년희망재단의 초대 이사였고 차은택씨와 함께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필명 이인화로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 소설도 썼다. 류 교수는 학점 특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정씨를 몰랐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김경숙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학장이 정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 연단에 24세 청년이 올라왔다. 유튜브를 통해 본 영상에서, 그는 20세에 취직해 4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전기공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방세와 교통비, 식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저축을 할 돈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궁금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자기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1987년에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해서 임금도 오르고 삶이 나아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몇 해 전 재벌 총수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 후 영훈국제중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했다가 적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학교 재단 임원이 특정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 조작을 지시하고 이를 대가로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는 등 온갖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특권층 자녀가 하나고 편입학 전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했다는 의혹이 교육청 감사결과 적발되어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서울서부지검은 1년 넘도록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하나고 입시 부정을 신속하게 수사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에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다. 우리 사회 특권층의 부정입학은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럼에도 사법당국은 ..
오늘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과 엄밀성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입시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받거나,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된다. 수능 문제는 전 영역에서 한 점 흠결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혼란이 크고 입시 공정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게 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입시부정에 수험생들은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은 실세의 딸을 위해 입시요강을 바꾸고,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특혜는 입학 이후에도 계속됐다. 교수들은 일개 학생에게 상상할 수 없는 편의를 제공했다. 중학생 수준도 안되는 비문 투성이 리포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수강신청을 대신 해줬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부끄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