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침’이 신호였나 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는 박 대통령의 언명이 나오자 당정과 장외의 극우 세력이 총궐기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헌재 결정’ 비판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으스스한 죄목을 들이대고, 야당을 향해선 “대선 불복보다 심각한 헌법 불복”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여당은 헌재 결정 규탄집회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검경은 엄단을 복창하고 있다. 헌재 결정에 대한 반대집회마저 처벌하겠다니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를 방불케 한다. 보수단체들이 10만여명에 달하는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착수했다. 때맞춰 종편을 필두로 한 일부 보수언론은 ‘헌재..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는 자유로운 정치적 결사를 전제로 한다. 일정한 정치적 견해로 뭉친 정당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 없이는 현대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당을 정치 외부의 힘으로 경쟁의 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민’이라는 민주주의 전제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당이 선호되지 않는다면 그건 시민의 선택에 의해 가려져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원리에 타당하다. 정통성 있는 심판자는 오직 시민뿐이다. 한국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주체사상파(약칭 주사파) 혹은 넓은 의미의 자주파라는 특정한 이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왔고 그들의 참여로 정당도 탄생했다. 이 정당은 나름의 이념과 정강 정책을 제시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시민들의 욕구와 시대정..
헌법재판소가 어제 법무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키로 결정했다. 9명의 재판관 중 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을 제외한 8명 전원이 진보당 해산 및 의원직 박탈에 찬성 의견을 냈다. 통합진보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만큼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보다 해산의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게 헌재의 최종 판단이다. 이로써 통합진보당은 창당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으로 정당이 해산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어서 그 정치사회적 파장과 후유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통합진보당의 최종 목적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고 밝혔다. 종북세력이 당을 장악한 뒤 북한식 사회주의 모델을 이행하려 했다..
“대한민국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 나는 해방 60주년에 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서문에서 한국현대사를 이처럼 요약한 바 있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란 이 땅의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유엔인권조약의 ‘자유권’이 보장되는 정치체제이다. 80년대 ‘제3의 물결’이라는 범지구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정리한 세계정치학계의 권위 있는 집단연구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을 금지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그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압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공개변론 절차가 마무리됐다. 헌법재판관들의 비공개 토론인 평의가 끝나면 선고만 남겨두게 된다.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청구를 철회하지 않은 이상, 이제는 헌재가 신중하고 엄정하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연내 선고”를 압박하고 있으나 흔들려선 안될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은 한 정당의 운명을 가름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까닭이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헌법 제8조 2항)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그 존립과 해산 또한 선거를 통해 주권자가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이자 한국도 회원국인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
필자는 통합진보당을 대리하여 지난 1년 동안 17차례의 변론을 하였으나, 여전히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첫 번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정부는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 이래로 현재의 통합진보당까지 그 목적과 활동이 전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미 13년 동안이나 문제 삼지 않다가 왜 갑자기 작년 11월에서야 제소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통합진보당의 핵심적인 강령과 활동은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의 심판청구서에 첨부된 증거들을 보면 인터넷에 구글링해서 찾은 통합진보당과 관련한 보수논객의 칼럼과 보수언론의 주관적인 보도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많은 내용이 중복되어 재판정에서 무더기로 철회하는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졸속으로 해산청구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두 ..
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은 어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내란음모 혐의를 유죄로 본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핵심 공소사실인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은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 의원 등이 내란범죄 실행의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고인을 비롯한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 행위의 시기, 대상, 수단·방법, 실행 또는 준비에 관한 역할 분담 등을 특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지하혁명조직 ‘RO’와 관련해서도 “제보자 진술만으로 RO 조직의 존재를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