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을 때 나는 희망을 품었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며 ‘이제는 여성들의 삶이 바뀌겠구나!’ 희망에 가슴이 벅찼다. 올해는 미투 운동으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망을 품은 여성들이 그동안 겪었던 차별과 폭력을 증언하며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자신의 발화가 어떤 어려움과 파장을 가져올지 알면서도 여성들은 용기를 냈다. 변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 미래는 없으니까. 여성의 삶에도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여성들의 용기가 밑거름이 되어 변화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는 신속하게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범정부협의체를 꾸리는 등 범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
그날은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27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강철보다 단단한 벽을 넘어 너무나도 어렵게 그러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밝힌 날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욕이자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져 피해자가 감추어야 할 정조에 관한 죄일 때, 가문의 수치이자 민족의 수치로 손가락질당할 때, 바로 그 일이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군사주의가 공모한 어마어마한 성폭력 범죄행위임을 낱낱이 전 세계에 알린 그날이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국가가 모두 외면하던 시절, 피해자가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손을 잡기 시작한 그날, 전 세계를 돌며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
김민아의 후 스토리 ⑨ ‘불법촬영’에 분노하는 여성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주머니 속의 송곳이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주머니나 가방 속에 송곳을 넣어 다닌다면, 아니 다녀야 한다면 어떨까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등을 보면 송곳이나 옷핀, 실리콘이나 스티커, 퍼티(속칭 빠데·아교풀)를 갖고 다닌다는 이들이 눈에 띕니다. 불법촬영(몰카) 공포 때문이죠. 화장실 벽에 구멍이나 틈새가 있으면 송곳·옷핀으로 찔러봐 렌즈를 깨버리거나, 실리콘·스티커·퍼티로 틀어막기 위해서랍니다. ‘몰카’는 더 이상 이경규씨의 출세작 ‘몰래카메라’가 아닙니다.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범죄입니다...
놀랍지 않다. 한 청와대 남성 행정관의 ‘부적절한’ 책,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여성 의원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비난과 공격. 묵언수행하듯 버티고 있는 당사자. ‘보편적’ 한국 남성의 정서를 반영한 예측 가능한 행동이었기에 솔직히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정작 실망스러운 것은 당사자를 끼고 도는 몇몇 높으신 분들이다. 성차별적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 국정운영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에 큰 문제의식이 없는 듯하다. 이 정권의 탄생을 눈물겹도록 반기고 지원하고, 성공하길 기원하는 한 시민으로서 주요 인사검증 과정에 ‘성평등’이란 요소를 꼭 고려할 것을 고언한다. 물론 평등의식은 가치관이라 검증이 쉽지 않을 터. 추후 구체적인 평가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고려해야 할 이유는 단순하다. 진보의..
지난해 11월 국립생태원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슬그머니 물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을 여성비하적이라고 비판하는데….” 최 교수는 몇몇 학자들이 잘못 소개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2004년 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과학적 근거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했다는 공로였다. 최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한 안경환 서울대 교수의 책 가 여성비하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몰래 혼인신고’ ‘여자와 술’ 같은 내용은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 부분은 빼고 진화론과 관련된 부분만 보자.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남자는 여자의 유혹에 약하게 진화되어 있다. 여자는 생존을 보장해주는 한 남자와 안정된 관계 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
파격적이되 감동적이다. 지난 몇 주간 새로운 대통령의 행보다. 5·18 유가족과의 눈물의 포옹이 그 정점에 있다. 근현대사에서 우리 스스로가 생산하고 억압한 사회적 타자들의 다친 마음을 감싸는 대통령의 행동은 사실 생경하면서 감격적이었다. 시민들은 벅차고 야당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울고, 감동받아 우는 시민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연대체를 구성하게 된다. 이전 정권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새 대통령의 비의례적이되 적극적 소통의 행보로 더 도드라지는 이 풍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비로소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서의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대한..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알려지자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여들었다. 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슬픔과 공포, 분노의 마음들이 그려졌고, 당신이 바로 나라는 고백, 잊지 않겠다는 다짐,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겠다는 약속 등이 빼곡하게 적혔다.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번져갔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우리에게 그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으로 요동쳤다. 2015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일었던 페미니즘 운동이 드디어 거리로 나섰다. 다양한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담론은 확장되었으며, 페미니즘 시장 역시 형성되었다...
얼마 전 페미니즘과 관련된 프로젝트 제의를 받으면서 갈등한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갈등은 다소 복잡한 것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대단한 페미니스트라고’라는 겸양도 들어있지만, 한편에는 페미니스트라고 분류되는 순간 감당해야 할 많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늘 올바르고 도덕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녀가 함께 모여 사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여자로만 가득 찬 울타리 안에서 옳은 소리만 하는 운동가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나는 아직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인권 운동가나 투사가 되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며 멋대로인 데다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많은 의미에서 나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