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론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료 5년 뒤, 그의 나이 70세에 받은 재판에서였다.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다, 죄 없이 죽임을 당한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참지식을 사랑하고, 철학적 올바름을 지닌 사람들이 국정에 참여할 때만 정의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오오. 인간들이여, 너희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혜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에 대한 자각은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식’이라고 말한 공자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이는 자기 생각만 옳다는 독단을 경계하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고, 새로운 배움으로 나아가는 열린 마음을 지향하기도 한다. 위정자의 지혜가 모자라면 정치는 닫힌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고도의 정치는커녕, 보기에도 민망..
“시로는 사천, 그림으로는 겸재가 아니면 쳐주지도 않았다.” 18세기 한때 회자되던 이 말의 주인공은 사천 이병연과 겸재 정선이다. 두 사람은 시인과 화가로 이름났을 뿐 아니라 둘도 없는 평생지기로 시와 그림을 주고받았다. 정선의 유명한 금강산 그림 ‘해악전신첩’이나 한강의 경치를 그린 ‘경교명승첩’ 등이 이병연과 함께한 작품들이다. 이병연은 좋은 그림을 알아보고 소장하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동시대의 문인 조귀명은 이병연이 애지중지 수집한 그림을 곧잘 빌려다 보곤 했는데, 어느 날 그림을 돌려주면서 짤막한 글을 써 주었다. “그림을 소장하는 목적은 감상하는 데 있을 뿐이다. 감상으로 누리는 즐거움은 주인이나 객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애초에 구하여 수집하는 어려움이 없고 내내 관리하느라 노심초사 걱정할 ..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다시 인용해보자. 요즘 우리로선 너무나 낯설고, 또 부럽기도 해서다. 바로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미친 트럼프 막아내기’ 이야기다. 첫번째 주인공은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다. 트럼프는 2020년 5월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을 메운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대를 거론하며 “총으로 그들을 쏴버릴 수 없나. 다리든 어디든 그냥 쏘라”고 밀리에게 명령했다. 지하벙커로 피신할 만큼 트럼프가 위협을 느낀 터라, 단순히 화풀이식 명령으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밀리는 발포를 거부했다. 또 그는 대선을 즈음해서는 흥분한 트럼프가 우발적으로 전쟁을 벌일 것을 염려해 중국에 두 차례 비밀전화를 했다. “우리는 중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트럼..
한국의 노인 상당수는 늙어서까지 일하는데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서울의 한 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올해 17.5%에서 2045년 37.0%로 높아진다. 일본(36.7%)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66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한국이 40.4%로 1위였다. OECD 회원국 평균인 14.4%보다 3배 가까이 높다. 65~69세 노인 취업률은 47.6%로 역시 OECD 최상위권이다. 한국의 노인 상당수가 늙어서까지 일하는데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통계청이 29일 내놓은 ‘2020..
작년 7월에 11분간의 우주 비행을 마치고 귀환한 블루 오리진의 회장인 제프 베이조스가 폭탄 발언을 했다. 자신이 창립한 “아마존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거다. 마치 이재용 회장이 삼성을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어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우주는 나의 꿈이었다”며 인간의 우주 진출을 위한 “블루 오리진 경영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섯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나?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1969년. 어린 시절에 이를 지켜본 아폴로 키즈들은 후에 과수원 벌판에 불과했던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시골 마을을 혁신의 성지인 실리콘 밸리로 변모시켰다. 아폴로 우주선을 운반한 새턴 로켓과 비행제어, 소재, 초기 컴퓨터 기술이 어우러진 우주공학은 실리콘 밸리를 만든 혁신 에너지의 ..
서울 신촌에서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가난한 이의 죽음이 또다시 발견되었다. 집에는 연체된 고지서와 빈 쌀 포대가 있었다고 한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 탈북여성의 고독사가 발생하고 그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죽음이 다뤄지는 방식이나 파장은 예전 같지 않다. 반복되다 보니 둔감해진 것일까? 이번 일을 바라보며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첫째, 배제와 고립에 관한 질문이다. 무엇이 가난한 이들을 타인과의 관계 형성과 사회 참여로부터 물러나게 만드는가?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담론에서 가난은 추상화되고 존중 없이 대상화된다. 가난한 이의 삶은 구체적인 실체로 깊이 다루어지기보다는 모금 캠페인을 위해 가공된 사진으로 자선의 대상으로 동원된다. 21세기 자본..
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1300리 낙동강 줄기가 스쳐지나는 예천 강변에는 이 땅의 마지막 주막으로 불리는 ‘삼강주막’이 있다. 주모라는 이름의 여인이 지켜온 명실상부한 주막이다. 낙동강 내성천 금천에서 흘러나오는 세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자리여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다. 강 위로 삼강교라는 육중한 다리가 놓이고 옛 나루터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50년 전까지만 해도 삼강나루터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번화한 나루터였고, 나루터 주막은 영남 지역 보부상들에게 최고의 쉼터였다. 2005년에 주모 유옥연 노인이 돌아가신 뒤,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 옛 보부상의 숙소와 주막을 재현하고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한 이 주막거리를 생생하게 살아서 지켜온 나무가 있다.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예천 ..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1969년 7월20일, 전 세계인들은 흐린 화질로 전해지는 텔레비전 속 한 장면에 이목을 집중한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월면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인류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달 착륙을 하겠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대중 연설부터 실제 실행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미국이 ‘일’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폴로 계획 덕분이었다. 국가 자원을 하나로 묶은 아폴로 계획이 우직하게 추진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달 착륙은 훨씬 이후의 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해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