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자러 개구리들이 다 숨어버렸네. 개구리가 없으니 뱀도 ‘인투더와일드 호텔’로 고고. 나도 짱박혀 긴 겨울잠이나 자면 좋으련만 월드컵 기간에다 연거푸 마신 커피에 눈만 말똥말똥. 말동무가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에 대고 사는 얘기를 나누곤 해. 김성동 샘의 단편소설 ‘눈오는 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가 잠꼬대를 하는 장면. 두루마기 동정에 인두질을 하던 엄마에게 아랫목에서 아이가 그런다. “아부지 오시먼 깨줘야 뎌. 새벽이라두 아부지 오시먼 꼭 깨줘야 뎌.” 밖에 개 짖는 소리가 나서 “누, 누구세유?” 하고 엄마가 내다보니 눈보라가 펄펄. “아부지는 거시기 새 시상을 맨들기 위해서 높은 산을 넘어갔구, 그래서 원젠가는 다시 높은 산을 넘어오실 거라구 그랬잤냔 말여….” 빨치산이 된 아버..
지난여름에 방영이 시작된 예능 프로그램 를 가끔 본다. 프로팀에서 활약하다가 은퇴한 선수들로 구성된 ‘몬스터즈’ 팀이 고등학생, 대학생, 18세 이하 국가대표팀 등과 시합을 벌이고 있다. 후배들과의 부담 없는 친선 경기가 아닐까 싶지만, 매번 필승의 각오로 치열하게 대결한다. 7할 승률을 목표로 기획되었는데, 결코 만만한 승부가 아니다. 어린 선수들이 ‘대선배’들과 접전을 벌이는 장면은 여느 프로 경기 못지않게 박진감 넘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후배들의 탁월한 플레이에 경탄하면서 한 수 배우는 태도다. 모든 스포츠 경기 자체가 자연스럽게 학습을 수반하지만, 나이와 경험에서 한참 아래인 팀에 패하면서 자기의 약점을 확인하는 모습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
낙타가 죽었다. 죽어서 염라대왕 앞으로 갔다. 알려진 바와 달리 염라대왕은 생사를 결정하는 힘은 없다. 죽은 자에게 지금 처한 상황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줄 뿐이다. “너는 밧줄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바늘귀를 지나서 천국에 이른 첫 번째 낙타이다. 네가 천국에 온 까닭은 아라비아반도의 유목민들이 주장하듯 신의 99번째 이름을 은밀히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막의 은수자들이 높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순종하도록 먼 사막으로 이끈 덕도 아니다. 황야를 헤매던 몽골의 부족장에게 네 피를 주어 목숨을 살린 공도 아니다.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며 몸에 그늘을 만드는 강인함이 있어서도 아니다. 네 어미가 새끼까지 노예로 살게 할 수 없어 일부러 젖을 주지 않은 탓도 아니다.” “어미가 젖을 주지 않다뇨? 무리 속에..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로 추앙받다가 각각 ‘사기꾼’과 ‘빌런’으로 전락한 샘 뱅크먼프리드와 일론 머스크. 이 둘 사이에는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롱터미즘’(Long-termism)이다. 트위터 인수 작업에 동참하고 싶다는 뱅크먼프리드의 의사를 머스크에게 전달하며 다리를 놓아주려 했던 사람도 롱터미즘의 주창자인 옥스퍼드대 철학교수 윌리엄 매캐스킬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현재 실리콘밸리의 IT 거부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 사상은 ‘효과적인 이타주의(EA)’라고 불리는 사회운동의 한 갈래이다. EA는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수천, 수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생명은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EA에서 파생된 롱터미즘은..
정부는 11월28일 미래우주경제 강국 실현을 위한 6대 정책과제를 포함한 우주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6일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경제 비전을 선포한 바 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모델로 한 ‘우주항공청’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의 우주전담기관이 다양한 기능 및 특성을 갖기 때문에 한국 실정에 맞는 우주항공청 신설에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주항공청은 뉴 스페이스 시대의 국내 우주경제, 국방, 안보, 우주협력과 외교, 우주활용 분야 등을 견인할 컨트롤 타워로서 명확한 기능과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우주개발 및 활용에 관여되기 때문에 우주항공청은 단일 부처 산하가 아닌 대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여야 지도부를 만나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해법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바이든 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필수부문 파업이 거세다. 106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 간호사노조는 이달 10만명이 이틀간 파업에 돌입한다. 저임금 생활고에 시달리는 와중에 이주노동자 대체인력이 부족해 업무강도는 세졌다. 영국 의사협회도 정부가 임금 인상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할 계획인데다 철도, 구급차, 우체국, 학교까지 멈춰서고 있다. 지난주 프랑스에서는 법복 입은 예심판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1987·법문사판)의 저자 한스 모겐소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폴레옹의 모자 에피소드를 예로 든다.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1813년, 오스트리아의 외상 메테르니히와 9시간 동안 만났다. 전쟁의 양상이 프랑스 대(對) 러시아·프로이센·영국·스웨덴 동맹군으로 변화하자,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에 반(反)프랑스 동맹에 참가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을 무시했고, 여전히 유럽의 지배자처럼 행동했던 나폴레옹은 상대방을 떠본다. 그는 일부러 모자를 떨어뜨려 메테르니히가 집어주길 바랐지만, 메테르니히는 못 본 척했다 . 모겐소는 의전이 곧 국력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흥분했지만’, 20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두 인물 모두 유..
“첫 강의 때 뭐라도 들고 가야 할 것 같았어요. 박카스 두 박스 사서 한 병씩 나눠드리고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둘째날엔 박카스 대신 요구르트를 가져갔어요. 우리 몸의 심장이 한 번에 뿜어내서 혈관으로 돌게 하는 혈액의 양이 꼭 요구르트 양만큼이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죠. 건강은 숨을 잘 쉬는 것, 좋은 숨을 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취지의 강의였어요.”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에서 진행한 어르신 인문학 강좌에서 김홍표 아주대 교수가 강좌가 마무리된 뒤 강사들 모임에 나와서 밝힌 소회의 한 대목이다. “뭐라도 들고 가야 할 것 같았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저는 마을 이야기를 하기 위해 유튜브로 ‘고향의 봄’을 들려드리면서 시작했죠. 함께 따라 부르기도 했고요. 한 어르신이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갑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