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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비워둔 집 엉거주춤 남의 집인 양 들어서는데 마실 다녀오던 아랫집 어머니가 당신 집처럼 마당으로 성큼 들어와 꼬옥 안아주신다 괜찮을 거라고 아파서 먼 길 다녀온 걸 어찌 아시고 걱정마라고, 우덜이 다 뽑아 김치 담았다고 얼까 봐 남은 무는 항아리 속에 넣었다고 가리키는 손길 따라 평상을 살펴보니, 알타리 김치통 옆에 늙은 호박들 펑퍼짐하게 서로 기대어 앉아있고, 항아리 속엔 희푸른 무가 가득, 키 낮은 줄엔 무청이 나란히 매달려 있다. 삐이이 짹짹, 참새떼가 몇 번 나뭇가지 옮겨 앉는 사이, 앞집 어머니와 옆집 어머니도 기웃하더니 우리 집 마당이 금세 방앗간이 되었다. 둥근 스뎅 그릇 속 하얗고 푸른 동치미와 살얼음 든 연시와 아랫집 메주가 같이 숨 쉬는 평상, 이웃들 손길 닿은 자리마다 흥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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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설악산 흔들바위 1971년, 2022년 설악산 흔들바위.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설악산 흔들바위를 밀어서 떨어뜨리는 자, 강호 무림을 평정하는 초고수가 될 것인가? 무림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바위에 꽂혀 있는 칼을 뽑는 자가, 왕이 될 것이다’라는 아서왕 검의 전설에 여러 문파들이 도전을 했고 잃어버린 절대반지를 찾아 제왕이 되려는 사파들이 전쟁을 일으켜 강호의 질서를 어지럽혔다. 적막, 설악산이 화산폭발의 화산재 연기로 대청봉마저 보이지 않고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비바람, 풍화작용에 흔들바위가 깎여, 아스라이 둥그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강호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무리하게 공력을 끌어들이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마인(魔人)이 일엽편주를 타고 설악산 강호에 숨어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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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빅 데이터 시대, 지식정보사회의 전성기다. 지식정보사회라는 용어는 친숙하다. 40여년 전 다니엘 벨과 앨빈 토플러 같은 쟁쟁한 미래학자들이 처음 언급한 이래, 적어도 2000년대부터는 너도나도 떠들어댄 덕분이다. 하지만 이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부르는 최근 들어서다. 쇼핑, 여행, 오락, SNS 소통 등 우리의 일상이 어딘가에 기록되고, 이게 쌓인 정보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1990년 후반 두 명의 대학원생에 의해 허름한 차고에서 출발한 구글의 시가 총액은 2000조원이 넘으며, 2000년대 초반 한 학부생이 기숙사에서 친구들 프로필 공유 사이트를 만들면서 시작한 페이스북(메타)의 시가 총액은 500조원에 달한다(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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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틀린 제너(사진 왼쪽에서 세번째)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남자 육상선수 출신으로 카다시안 자매들의 의붓 아버지였으나 2015년 커밍아웃 이후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사진은 같은 해 ‘아버지의 날’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 출처 케이틀린 제너 트위터 생물학적 남성 A씨는 결혼한 뒤에야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았다. 2018년 이혼한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이듬해 법원에 성별정정 신청을 냈다. “가족관계등록부 성별란에 ‘남’으로 기록된 것을 ‘여’로 정정하도록 허가해달라”는 것이었다. 1·2심은 이를 불허했다. 미성년인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가 ‘여성’이 되면 “정신적 혼란과 충격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개인의 행복 추구보다 부모로서 의무가 더 중요하다고 본 2011년 대법원 판..
한국의 정치 이미지 안에는 아직도 전근대적 절대권력의 망령이 서려 있다. 정치인들은 국가를 오직 권력으로만 이해하며, 통치자는 그 위에 군림하는 군주쯤으로 여긴다. 그 부인을 국모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악의 축으로 여긴다. 또한 재벌과 결탁하며 사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을 장악함으로써 일찍이 알투세가 말한 ‘억압적 국가장치’를 완성한다. 그런 정치에게도 언론은 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이번 MBC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이 잘못되었거나 ‘속이 좁아서’ 생긴 일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언론을 적극적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현 정부의 다급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이라고 본다. 혹은 현 정부가 권력과 국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북 구미에서 김천으로 가다 보면 굽은 길을 정면으로 품고 있는 작은 산 하나를 만난다. 아빠는 정확한 위치도 이름도 모르는 그 평범한 야산을 지날 때마다 ‘저 산의 능선이 꼭 박정희 대통령이 누워 계신 모습 같다’고 하며 산등성이를 손가락으로 이어 눈, 코, 입을 그린다. 아빠의 애절한 충성심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한 대통령의 결단과 카리스마에 대한 예찬으로 이어지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 부근에선 서글픈 애도가 된다. 그렇게 눈물을 훔친 아빠는 목적지인 서울까지 가는 동안 망해가는 조국의 미래를 염려한다. 나는 아빠의 입에서 ‘네가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 찬양과 비관을 밀어낸다. 결말이 없는 이야기는 언제나 ‘정치 이야기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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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장발, 도복, 도사들로 혼탁한 세상. 트레이드 마크 턱수염을 깎고 긴 머리도 싹둑 잘라 버렸다. 너무 단정해서 목사님 같다고들(?) 그런다. 마음 같아선 스님처럼 삭발도 해보고파. 예전에 절밭을 지나가면 허수아비도 승복을 입고 서 있곤 그랬다. “풀 쪼던 호미 그대로 두고 스님 밥 지으러 간 사이 허수아비 혼자 콩밭을 지킵니다. 떡 벌어진 허수아비 스님을 닮진 않았지만 모자와 저고리만은 스님 걸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별이 된 초등교사 임길택 샘 시는 누구 말마따나 가을날 들꽃처럼 가난해서 참 좋아. 여기서 퀴즈. 허수아비 아들이 누구게? 허수지 누구야. 허수는 어딜 가고 아비 혼자 밭을 지키누. 허수의 고독과 설움, 책무의 무거움까지 마음 쓰인다. 김장철이니 산밭도 텅텅 비어가. 고구마가 먼저..
‘사람의 자리’가 몹시 위태롭다.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나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생물학적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사람과의 연결을 피하고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생각을 더 확산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이런 시대에 생활의 리듬을 바꾸고자 고민하고, 기후 위기 시대 생명을 생각하며 존엄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차라리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소위 먹고사니즘이 압도하는 사회는 절대 좋은 사회가 아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위기는 특히 저소득 시민들의 삶을 덮쳤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비 지출 비중이 커졌다는 11월21일 통계청 발표는 이번 겨울이 ‘불만의 계절’(존 스타인벡)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처럼 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