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광기가 최고로 행복한 상태라고 했다지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광기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앞의 광기와 뒤의 광기는 어떻게 다른 걸까?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약간의 광기를 띠지 않은 위대한 천재란 없다”고 했다지만, 이런 종류의 광기는 사실상 세네카의 목숨을 앗아간 폭군 네로의 광기와는 어떻게 다른 걸까? 이런 의문이 시사하듯이 광기엔 두 얼굴이 있고, 우리 인간은 늘 그 두 얼굴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다. 대체적으로 보아 결론은 늘 하나로 모아지곤 했다. 결과가 좋으면 ‘아름다운 광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추악하거나 사악한 광기’였다. 어떤 분야에서건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엔 그들이 성공을 위해..
정약용이 남긴 글 중에는 이 있다. 1810년 여름,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해서 술집과 떡가게가 있는 저잣거리는 물론 산골짜기까지 가득 차게 되었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고 하고, 소년들은 파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약을 쳐서 파리들을 전멸시켰는데, 정약용은 탄식을 하며 이 전멸된 파리들을 위해 조문하는 글을 쓴다. 그는 이 파리들이 그 전해 기근 때에 죽은 사람들에서 나온 것으로, 환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에는 정약용이 목도했던 재해의 참상과 그 재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관료들은 재해에 대처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그는..
한자권에서 자유라는 말이 개념어로 사용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이다. 서구로부터 freedom, liberty 등이 소개되자 이들의 번역어로 자유가 선택되었다. “스스로(自)” “말미암다(由)”로 구성된 자유가 ‘속박됨이 없음’ ‘억압에서 벗어남’ 등을 뜻하는 freedom이나 liberty의 개념을 담아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스스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간섭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유는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되다”는 뜻의 자주(自主)나 “스스로 세운 규율에 따라 행하다”는 뜻의 자율(自律) 등과 늘 함께한다. 또한 자율이 “무율(無律)”, 곧 규율 없음을 뜻하지 않는 것처럼, 자주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고 하여 남을 ..
2002년 6월25일 한국 대 독일의 월드컵 4강전을 앞두고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 모인 거리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21일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 현장에 “대~한민국” 응원 구호가 짧지만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32개 출전국의 응원가들이 소개되는 공연 도중이었다. 한국 중계 캐스터도, 시청자들도 순간 놀랐다. 경쾌한 다섯 번 박수와 합체되는 이 마성의 구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기억을 거의 자동으로 부른다. 그해 6월 한국은 온통 붉은 물결이었다. 거리에는 ‘비 더 레즈’, 빨간 티셔츠를 입고 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넘쳐났다. 이념도 정파도 없이 남녀노소가 자발적으로 뭉쳤다. 축구공 하나가 이뤄낸 일이다.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가 주도한 거리응원은 ‘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몹시 끔찍할 때 무참(無慘)하고, 더없이 부끄러울 때 무참(無참)하다. 6개월 넘긴 ‘윤석열 시대’가 그렇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4주째 사과의 덫에 갇혀 있다.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는데도, 국민은 제대로 다시 하란다. 158명이 억울하게 죽은 참사에 책임 물은 장관 하나 없어서일 게다. 대통령의 사과는 납득할 문책 뒤에 누가 뭘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어찌보면, 타이밍과 진정성은 이미 놓쳤다. 점입가경이다. 이슈로 이슈를 덮는 검사 영화 속 대사같이…. 참사를 추궁한 대통령실 국감에서 김은혜 수석이 쓴 “웃기고 있네”가 세상을 뒤집었다. 그 분노는 대통령 ..
세월호 참사 속 10대를, ‘사회적 거리 두기’ 속 20대를 보냈던 청년들은 올해서야 집 밖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10·29 참사를 겪으며 또다시 어울림의 두려움을 느꼈다. 교류가 아닌 고독이 생존의 규칙이 되어버렸고, 함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잊었던 트라우마가 재현됐다. 그 어떤 세대도 반복적으로 경험한 적 없었던 가혹한 가르침이었다. 발길을 잃고 마음이 얼어붙은 또래 다수는 저마다 외로운 소수로 남기를 택했다. 그들은 반복된 죄책감과 분노 속에서 침묵과 고립을 택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개인정보보호법상 문제가 없다’며 사법화된 정치적 해명을 마주하고, 이태원 참사 속 여성 희생자가 더 많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애초에 여성이 ..
나무에 아크릴(32×44㎝) 출처를 알 수 없는 선인장이 하나 있습니다. 관심도 안 가지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선인장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자기 몸보다 더 작은 물도 잘 안 주는 메마른 화분에서 자기 스스로 커서 노랑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무심한 주인은 활짝 핀 꽃을 보고서야 그 선인장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커버린 선인장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관심을 가졌으면 더 잘 컸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혹은 햇볕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더 못 컸을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의 중심점을 찾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연재 | 생각그림 - 경향신문 302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 소설(小雪)이다. 첫눈에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은 날, 나에게는 따뜻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이 있다. 건설근로자. 그들의 투명한 근로내역 관리를 위해 도입된 전자카드제가 대폭 확대되면서, 고용복지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첫눈처럼 설레고 반가운 일이다. 전자카드제의 근간인 퇴직공제제도는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들을 계기로 1998년 도입되었다. 일용직이 대부분이기에 근로기준법상 퇴직금 혜택에서 소외된 건설근로자들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해 사기를 높이고 성실 시공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제도 도입 시 모습을 회고해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일용직도 퇴직 후 목돈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찬 모습, 이름 적힌 퇴직공제수첩을 보며 “이제야 근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