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투자자와 비투자자 김재중·유희진기자 고수익의 유혹은 달콤했다. 은행 직원들은 상냥했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들은 “요즘 펀드 하나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바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은 까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기저축과 다름없다던 그들의 말을 믿고 묻어뒀던 목돈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피 같은 돈이 사라져 버린 공간엔 두세배로 커져버린 삶의 무게가 자리잡았다. ■ 부부 생이별한 오원금씨(가명·56) 오씨는 지난 9월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내를 미국으로 떠나보냈다. 아내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처제의 갈비집에 허드렛일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선 것이다. 몇년째 좌골신경통과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도 2시간 뒤 이..
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유희진 기자 ㆍ경기 안산시 성포동의 한 도로변. 고대영씨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은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미미, 앉아! 앉아!” 정적을 깨는 다급한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주인을 찾으며 사납게 짖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잠재우기 위해 고대영씨(40)는 끙끙대고 있었다. 10분간의 실랑이 끝에 겨우 강아지를 치료하고 나서야 고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테크요? 그저 가진 돈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고 싶었습니다. 펀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병원 분점도 낼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꼈다. 욕심 부리다가 화를 부를까 꺼려졌다. 고..
◇ 런던에서 - 공공재 민영화 탓 서민들 더 압박 런던 | 김은정 통신원 지난달 1일 부슬비가 내린 런던 근교 도시 스테인스. 주말마다 이곳에서 과일과 잡화를 좌판에 펼친다는 한 중년 남성에게 요새 장사가 잘되는지 물었다. “끔찍하다(It’s a Shit).” 가판 뒤편에 앉아 있는 그의 부인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스테인스에서, 다른 요일에는 근방의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간이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 부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통에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60%가량 줄었어요. 하지만 가스·수도·전기 요금이 지난해보다 50% 인상되고 물가는 치솟았지 뭐요. 정말 쓰레기 같아요.” 그는 격앙되어 있었다. 고급 대형할인 매장인 막스 앤 스펜서(M&S)의 ..
금융위기는 이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크든 작든 사람들은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럴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뿐이 아니다. 유럽의 이름 모를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 파리 외곽의 자동차공장 노동자들, 런던 교외의 노점상, 도쿄 시내 조그만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들, 일자리를 찾은 베이징의 젊은이도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낯선 숫자들이 어떻게 자기 인생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건지, 그 숫자가 왜 자기와 상관이 있다는 건지. ◇ 파리에서 - 연금생활자 “무보수 봉사 않고 개인 교습” 파리 | 박지연 통신원 지난달 7일 오전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르아브르 시내 ..
조복현 |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팽창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 금융위기가 더욱 발달된 자본시장과 고도화된 금융세계화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1929년 대공황이나 80년대 이후의 여러 금융위기들은 모두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적 행동이나 과도한 신용팽창에 기초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금융행동은 대부분 자유방임적 경제사조에 힘입어 증대될 수 있었다. 1920년 대공황 직전까지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융시장은 자유방임의 사고 하에서 아무런 규제나 감독도 없이 시장자율에 따라 자유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또한 80년대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서 다시..
장관순기자 ㆍ하나의 불씨가 세계를 불사르다 - 미국발 금융위기의 특징 ㆍ개인들도 금융버블 가담 ㆍ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 ‘그날’이 오기 전 우리는 금융거품과 부동산거품이 두텁게 깔린 소파의 푹신함을 즐기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준 금융세계화의 신속성, ‘선진금융기법’이 약속한 장기호황의 기대감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우리가 달콤함에 취해있는 사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바람은 우리의 집과 직장, 재산을 쉽게 불에 탈 수 있게 바짝 말려가고 있었다. 대지가 건조해지면 단비가 내리는 게 시장의 원리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외침과 달리 바짝 마른 대지 위에 마른 번개가 내리 꽂혔다.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것이다. 리..
조찬제기자 지난 9월12일 금요일 오후 6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회의실. 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딧,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디먼,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메릴린치의 존 테인 등 월스트리트의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CEO) 30여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장 등 최고위급 금융당국자들도 참석했다. 가이트너 은행장이 입을 열었다. “정부는 구제금융을 할 의사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올 때 뭔가(공동 대응 방안)를 준비해 주십시오.” 위기에 빠진 리먼 브라더스와 메릴린치에 대해 한 말이다. 두 회사는 이제 백척간두에 서게 되었다. 누가 벼랑 끝에 ..
1부-(2) 미국을 가다 로스앤젤레스 | 유희진기자 ㆍ“전 세계가 탐욕에 눈멀어 빚잔치를 벌였다” ㆍ과도한 차입 의존 투자방식이 화근…“시스템의 위기” ㆍ사무실 대출 등 터질 문제 많아…‘L자형 침체’ 예상 월가 생활 7년째인 코그네티(37)는 서브프라임 문제가 터지기 직전까지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미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은행의 판매부서가 그의 자리였다. 부서 내의 트레이더들이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여 그것을 섞고 짜깁기해(구조화) 상품을 만들면, 그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모기지 부실이 드러나며 일하던 회사의 부서가 구조조정돼 없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월가를 나와 새출발을 한 그는 적응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온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