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끓인 커피는 식기 마련이고 피라미드도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저 하늘의 별들도 수명이 다하면 장렬히 빛을 내뿜으며 사라질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라는 별도 50억년 후엔 멈추거나 파괴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우주 안에 ‘시간’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간은 활에서 당겨져 날아가고 있는 화살처럼 돌이킬 수가 없다. 과거로 돌아갈 줄 모르고 미래(未來)라고 부르는 미지의 경계를 향해 만물을 강제로 진입시킨다.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과거’라는 기억뿐이다. 이 ‘과거’라는 기억은 10년 전이나 하루 전이나, 혹은 이 글을 읽기 시작한 1분 전도 지금(至今)이라고 불리는 한순간(瞬間)일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날줄이..
매주 금요일 오전, 서울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한 서울남부교도소에선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 서울대가 2013년부터 매년 두 번씩 10번에 걸쳐 40여명의 수용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해왔다.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변화된 사람은 나다. 내가 사는 경기도 가평에서 이곳에 가려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갈 때마다, 천상의 예루살렘에 가는 순례자처럼 마음이 설렌다. 수용자들은 10주간의 수업을 이수한 후, 선정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수료식에서 발표한다. 이번 학기엔 19세기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에세이 을 읽었다. 몇 주 전 거행한 수료식에서 독후감 발표가 있었다. 한 특별한 분은 139쪽 분량의 독후감을 제출했다. 수인복(囚人服)을 입은 40여명이 앉아 있고, 대표로 발표한 사람은 ..
요즘 이른 아침에 호숫가로 산책을 시작했다. 쌀쌀한 날씨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즐거운 발걸음이다.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잔잔하게 요동치는 물결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이 호수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이는 웅장한 천상의 거울이다. 마치 진귀한 남청색 비단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호수가 하늘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나는 가끔 그 거울 위에서 유영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 호수는 언젠가부터 내 안에 숨어있던 영적인 보물을 발굴하여 조금씩 보여준다. 전통적인 철학이나 종교의 말들에선 찾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내 마음속에 숨겨진 이런 신의 선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일상이 강요하는 산만함과 진부함으로부터 나를 매일 아침 구원한다. 이 호수는 항상..
우리는 스마트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안에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다.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으로 동서고금의 지식과 석학들의 지혜를 한순간에 살펴볼 수가 있다. 스마트 시대에 ‘깨어 있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잡다한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임무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도 탐구대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식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공부란 자기 자신의 심연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는 행위다. 우리의 귀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듣고 그 욕망의 노예가 되어 기계적으로 살기 십상이다. 그런 자신을 자신만의 공간에서 응시하면 그 안에서 미세..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의례가 있다. 골방에 들어가 가운데 자리 잡고 눈을 감고 반가좌를 틀고 앉는다. 그날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집중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상념으로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중한다는 의미는 내 자신을 새로운 시점에서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의미다. 내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쌓여 편견과 고집이 되어버린 내 에고를 벗겨야 한다. 이 무식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제와 똑같은 과거의 나, 죽은 나로 똑같은 삶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가보지 않은 내 마음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바로 그날 해야 할 바를 깨닫게 된다. 이 심연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나만의 심연이다. 나는 이 임무를 대담하고 간결하며 거침없이 완수할 것이다. 사실 그 일을 마치지..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들까? 우주의 어떤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다른 모든 만물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던져진 환경, 특히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는 부모와 사회, 국가라는 공간과 21세기라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날줄의 교차점이 만든 이념과 세계관 안에서 산다. 우리 대부분은 그런 세계 안에서 편안해한다. 교육은 이 세계라는 알을 깨는 행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편협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탈출하여 다른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다. 그래서 ‘교육하다’라는 영어 단어 educate를 보면 교육의 목적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운명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밖으로(e) 이끄는(duc..
오늘 아침 나는 결심했다. 오늘도 ‘나만의 전설(傳說)’을 만들겠다고. 그 전설은 나의 심연에서 건져낸 보물이다. 나를 흥분시키며 내가 반드시 가야 할 운명의 길이다. 내가 들어 올리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내가 원하는 여행의 과정이자 목적지이다. 그래서 이 걸음은 여유롭고 동시에 단호하다. 나만의 전설을 위해 매일 걷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그 여정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도 나만의 전설을 성취하기 위해 내가 고용한 트레이너일 뿐이다. 그런 걸음은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있기 때문에 순교적이다. ‘순교자(殉敎者)’라는 영어 단어 ‘martyr’는 원래 고전 그리스어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다음 두 가지다. 한 의미는 법정에서 ‘자신이 선택한 말이나 행동이 진리라..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그 길은 나에게 유일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가치 있다. 어느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그 길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매일 아침 그날에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나만의 의례를 행한다. 골방에 들어가 가운데 자리 잡고 눈을 감고 반가좌를 틀고 앉는다. 그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몰입하지 않으면 상념에 빠져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깊은 생각의 심연으로 들어가면, 내가 그날에 행동으로 옮겨야 할 바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임무를 대담하고 간결하며 거침없이 마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어두운 숲속 건너편에 있다. 유럽 중세의 어두운 숲에서 나와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한 위대한 인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