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놀랍지도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 세계를 향해 힘주어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도 그냥 거창한 농담이었다. 2014년 1월6일, 신년 기자회견 때 박 대통령은 불쑥 ‘통일대박론’을 꺼냈다. 그해 3월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일명 ‘드레스덴 선언’이라고 하는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발표함으로써 통일대박론이 일회적 립서비스가 아닌,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준비된 것임이 명백한 듯했다. ‘통일대박’이라는 말에서 시사되듯 여기에는 한반도의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비전이 깔려 있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드레스덴 선언의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이라는 제안과도 맞물린다. 하지만 이 제안 이면에는 그 이상의 아이디어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전해인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라시아 ..
이 땅에는 부처를 임으로 모시는 이들도 많고, 예수를 임으로 모시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부처, 예수가 아니더라도 높이 우러르고 싶은 대상을 우리는 임이라 부른다. 임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는데 물동이나 함지 따위를 머리에 이고 간다고 할 때의 ‘이다’라는 뜻도 들어있다. 사모하는 정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언제나 이고 다니고픈 ‘임’이라 했을까! 그러므로 아무나 임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함부로 임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도 안된다. 한 번이라도 임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그 무거운 이름값에 걸맞은 신중한 처신으로 보답해야 하고, 그럴 맘이 없으면 아예 ‘임’자를 떼고 불러달라고 해야 도리에 맞는다. 생각만 해도 절로 서럽고 눈물겨워지는 당신의 임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그 임은 지금 안녕하실까? 부처님은 여든의 천..
지난해 말, 지인의 어머니가 이생의 인연이 다하여 소천하셨다. 지인과는 평소 생각이 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기에 그의 슬픔이 오롯이 전해졌다. 지인의 가족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생전에 종교를 경계에 두지 않고 널리 베풀었던 어머님의 뜻을 헤아려 여러 종교인이 장례의식을 집전하기로 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순으로 고인의 하늘나라 가는 길을 축원했다. 아마도 국가장 말고 가족장을 4대 종교 성직자들이 한자리에서 치른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또 가족들은 조의금 전액을 사회 곳곳에 기부했다. 뒤에 전해 들은 기부 내역을 보니, 세심한 배려가 스며있었다.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들을 치유하는 곳, 부모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 생활하는 그룹홈을 운영하는 곳, 청..
도시는 자주 사막에 비유된다. 도시의 이미지가 삭막한 탓이다. 도시가 사막이라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래알이다. 도시라는 사막에는 모래와 모래를 이어주는 접착제가 없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늘 비어 있다. 서구 인문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도시는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다. 그래서일까. 사막을 주제로 한 시는 비교적 쉽게 다가온다. 우리 자신, 즉 모래알들의 자화상인 경우가 많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프랑스 파리 지하철공사가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오르텅스 블루의 시 ‘사막’ 전문이다. 매우 짧은 시인데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를 빚어내도록 한다. 독자에게..
고대 팔레스티나의 유다국에서 보수 수구파와 진보개혁파 간의 갈등이 한창 격렬했던 때다. 당시 개혁파가 부르짖던 주요 의제의 하나가 ‘산당’의 철폐였다. ‘산당’이란 지역에서 신을 모시는 성소들로, 대개가 산에 있다 보니 산당이라고 불렸다. 개혁파가 집권하고 있던 때, 정부는 개혁조치들과 함께 대대적인 문서 편찬 사업을 벌였다. 그 문서들 중에는 오늘날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공히 핵심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제1성서(구약성서)의 원본들도 포함된다. 그 하나인 왕조실록(열왕기)에서 왕들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산당들의 철폐 여부였다. 한데 그 문서는 당대의 개혁군주 두 명만이 그렇게 했음을 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당 철폐는 수구-개혁 논쟁이 한창이던 때 개혁파가 제기한 논점이었기..
평생 땅만 파먹고 사신 어머니가 대처로 나가 배울 만큼 배웠다는 딸에게 “쌀도 못 되고 보리도 못 되는 글로 말로 먹고산다니 그거 참 우습구나!” 하며 혀를 차시더란다. 옛날 노인이 보시기에 일 같지도 않은 일로 먹고사는 인구가 적잖다. 곰곰 경전의 문자 속을 읽고, 오늘을 위한 뜻으로 풀어서 말해야 하는 종교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쌀도 보리도 못 되는 말과 글 따위로 사는 게 미안하다면 말 한마디, 글 한 토막이라도 밥이 되고 옷이 되게 해야 마땅하리라. 그렇긴 한데 종교인이라면 되도록 사회적 발언을 삼가는 게 이롭다. 아예 현실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도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다. 여름에 수재의연금, 겨울에 연말성금 이렇게 두어 번의 성의만 표시해도 사람 점잖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고로 종..
지난해 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 머문 25일 동안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단어는 ‘화쟁(和諍)’이었다. 다툼을 화해한다는 뜻이다. 혹은 평화롭게 다툰다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원효에 의해 제시된 화쟁은 부분에 집착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걷어내고 다른 차원과 높은 차원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조계종 화쟁위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사는 길을 성찰하고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계종의 공적기구이다. “중생의 병은 무지와 탐욕에서 생기고 보살의 병은 연민에서 생긴다”고 은 말하고 있다. 다양한 욕구와 가치가 충돌하는 삶의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대변하면서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길을 찾는 화쟁은 자비구현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한상균 위원장..
‘집밥’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와 달랐다. ‘혼밥’이란 단어를 접하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집밥은 집과 밥이 결합된 말이어서 금세 알아차렸는데 혼밥 앞에서는 멈칫했다. ‘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막막했다. 알고 보니 혼밥이란 ‘혼자 먹는 밥’이었다. 집밥이 역설적으로 집과 밥이 분리된 사태를 의미한다면, 혼밥은 집밥에서 한걸음 나아가 1인 가구의 신산스러운 삶을 지시한다. 집을 떠났거나 집에 혼자 남은 400만 1인 가구가 매일 혼자 밥을 먹고 있다. 혼자 밥 먹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늦은 오후 중국집에서 혼자 짜장면을 먹는 중년 사내, 자정 무렵 귀가해 혼자 찬물에 밥을 말아먹는 전문직 여성.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영화나 소설을 통해 한두 번 접해보았을 것이다. 우리 시도 밥에 대해 적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