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나섰다. 고향과 절은 저물어가는 저녁에 닿는 것이 좋다지만 마음이 좀 급해졌다. 국도에 접어들어 급격한 각도로 몇 번 핸들을 꺾다 보니 방향 감각이 마구 헝클어졌다. 이렇게 모르는 상태, 그게 좋았다. 산 그림자가 길게 덮치는 길에 드디어 이정표가 나타났다. 한 고개를 넘었더니 아연 기린의 머리를 연상케 하는 봉우리가 딱 버티고 서 있다.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어젯밤 읽은 의 한 장면 속으로 미끄러지는 듯 기이한 느낌이 일순 휩싸고 돌았다. 과연! 작은 인각사. 나의 기대에 견주어 현장을 보고 초라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겠다. 나는 너무 빠르게 왔다. 오전에 출발해서 오후에 도착한 것이다. 질펀한 속세의 꼬리를 주렁주렁 그대로 달고 와서 절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2021년이 열리고 벌써 한 달하고도 열흘이 흘렀다. 신축년은 이제야 비로소 밝았다. 둘을 구분해야 하는 건 작년에 배웠다. “요즘 경자년, 쥐의 해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경자년이 되려면 아직 20일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갑자년이니 을미년이니 하는 육십갑자의 기준은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기 때문이다.”(엄민용, ‘말글 나들이’) 2021년과 신축년. 격을 갖추고 때에 맞게 둘을 호명하니 나무의 가지와 줄기, 풀의 꽃과 잎을 구별한 듯 마음이 개운하다. 어린 시절 그렇게 설레게 기다렸던 설이 어느 때부턴가 시무룩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올해처럼 이렇게 싱겁게 넘어갈 줄은 미처 몰랐다. 절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몸을 제대로 구부리는 동작을 만들지 못..

2월, 학년이 올라가고 교실을 이동하는 시기.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되는 슬픔이 왔다. 정든 짝꿍과 헤어지는 와중에 새 교과서를 받는 은밀한 즐거움도 있었으니 국영수는 뒤로 미루고 체육과 미술, 지리부도를 즐겨 보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각종 신기록의 육상선수들과 알타미라 동굴 벽화. 모든 학창 시절을 청산하고 넥타이 매고 사회로 진입할 땐 여기도 한 동굴이 아닐까, 아득하고 캄캄했다. 남산터널에 버스가 갇힐 때도 있었으니 시계를 보고 창밖을 더듬으면 차의 꽁무니가 휘갈긴 치졸한 낙서뿐이었다. 어느 해 여름휴가에 접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수승한 그림들. 이런저런 자료와 체험을 바탕으로 짧은 글을 끄적여 보았다. 한 줄기 빛이 찾아드는 순결한 동굴. 마지막 점을 찍은 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

느긋한 휴일 아침, 눈이 몹시 내렸다. 이 기세라면 알록달록한 문명을 제로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이대로 사흘만 쏟아져도 서울은 아득한 태곳적 서라벌로 변하고 남산은 그야말로 우뚝 돌발한 눈탑. 하지만 아무리 과장법을 동원하려고 해도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의 여운을 찾아 남산터널 지나 인사동으로 나섰다. 아직 토막난 골목이 군데군데 숨어 있는 곳. 발자국을 몇 개 찍으며 늘샘 김영택 화백의 전시회를 보았다. 그야말로 수십만 획의 섬세한 선들이 지배(紙背)를 뚫을 듯 은모래처럼 반짝거리는 펜화. 안타깝게도 작가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유고전이 되고 말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소란스러운 인사동을 빠져나와 걸음을 옮긴다. 북망산으로 가는 듯 종로 지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서 골목이 없어졌다. 골목이란 호기심의 창고. 그것을 먹고 자라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처마가 사라졌다. 처마란 하늘을 맞이하는 응접실. 그 아래에서 잠시 비를 긋던 사람들도 이젠 없다. 물론 빗소리도 함께. 지난주 밤늦게 본 다큐. ‘마지막 화전민, 사무곡의 겨울’의 한 장면이 길게 여운을 남겼다. 산에서 태어나 군대생활을 제외하고 팔십이 넘도록 산중 굴피집에서 살아가는 노인. 산이 터전인 노인의 몸에는 산이 그대로 들어앉은 듯하다. 굽은 어깨는 산의 능선을 빼닮았다. 밭 가운데 선친의 묘에 제사 지내고 혼자 앉아 음복할 때 뒷모습. 고단한 등이 두툼하게 솟았다. 휜 등에 작은 무덤이라도 숨기고 있으신가. 굴참나무 껍질을 기왓장처럼 지붕에 얹은 굴피집에서 ..

펄, 펄, 펄,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서 맴, 맴, 맴, 우는 매미 소리를 떠올리는 버릇을 지닌 지가 여러 해다. 매미와 눈. 내리는 방향과 착지하는 자세가 너무 닮았다. 둘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결정적 근거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증거 또한 어디에도 없다. 같은 자리에서 피고 맺는 꽃과 열매도 서로 만나지는 못한다. 이 겨울의 가운데에서 땡볕의 매미 소리를 소환하는 것으로 냉기는 한결 가시고, 괜히 주눅 든 나의 어깨도 슬쩍 기지개를 켜며 냉랭한 마음 한 조각도 잠시 데울 수 있지 않은가. 아주 오래전 서른의 깔딱고개를 넘을 무렵이다. 고민은 쌓이고 미래는 막힌 굴뚝 같아서 응급처치라도 아니하면 하루도 건사하기 힘들어 해묵은 다이어리에 빽빽하게 글씨를 쓰던 날이 있었다. ..

나무가 처음부터 제자리에 머문 건 아니었으니 짐승에 쫓겨 달아나기도 하고, 고사리의 간지러움을 피해 바위 근처로 물러났다가 절벽 위에 멈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멀리 뻗어 나가던 뿌리가 제 허리를 뒤에서 부여잡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아, 나 있는 곳이 둥근 바닥이로구나. 메아리가 귀로 돌아오는 것처럼, 언젠가는 제 본래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삐거덕삐거덕 노 젓듯 팔 흔들며 돛단배처럼 돌아다닌다. 외출도 하고, 섬에도 건너가고, 어쩌다 외국에도 가보았으나 손오공이 부처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듯 저 나무들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결국 원점 회귀하듯 귀가해야 하는바, 이 또한 세상이 둥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리라. 저 멀리 바다에서 깃발부터 차츰차츰 보이기 시작하는 통통배, 활처럼 ..

입시에 내몰린 시절이 있었다. 오갈 데 없어 더러 일요일에도 가던 고등학교. 부산 서면 근처 시외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면 공부고 뭐고 다 접고 구포 넘어 그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발등이 마구 들썩거렸다. 돌아올 차비가 없는 빈 호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나중에 우리나라 모든 읍(邑)에서 하룻밤을 자리라! 퍽 돌발적인 결심을 했더랬다. 어느새 시시한 어른이 되었지만 까맣게 잊었다가 꽃산행을 다니면서 낯선 고장의 이름들이 새삼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산을 섭렵할 때 충청의 배꼽 같은 곳을 찾는 날도 있었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의 문경(聞慶). 그 근처의 주흘산 부봉(釜峰)을 오를 땐 부산(釜山) 생각을 많이 했다. 과연 부봉도 가마솥을 엎어놓은 형상이었다. 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