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동네는 고양이가 정착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집과 집 사이에 놓인 높낮이가 다양한 담, 뒹굴고 타넘기에 제격인 까끌까끌한 아스팔트 기와지붕들, 건물마다 구조가 달라 사이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미로까지. 나는 담벼락이 보이는 내 방 창문에서 담 위를 걷는 수많은 고양이들을 봤다. ‘만났다’고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수많은 고양이 중 단 한 마리의 얼굴도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그들에게 무심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골목 가장 끝 집에 사는 통장 아저씨가 비닐봉지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우리집에도 초인종이 울렸다. 아저씨는 할머니에게 봉지 속 물건을 건넸다. 쥐약이었다. 아저씨는 참치에 살살 섞어서 담이나 마당에 두라 일렀다. ..
책 만들기에 관한 예전의 경험담을 가끔 꺼내면 사람들은 꽤 재미있게 또는 신기하게 듣기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진 한때의 이야기로 소비하고 곧 잊어버린다. 회고담 또는 ‘라떼는…’ 따위의 이야기로 들릴까봐 늘 조심스럽지만 아무렴 어떠랴. 시대가 변하고 사물이 바뀌면 그것에 얽힌 경험과 말들도 희미해지는 법.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사물이 바뀌는 만큼 어휘가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 이제는 의미가 달라진 어휘가 과거를 오늘의 잣대로 잘못 이해하게끔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따르면 사라진 것은 단어가 아니라 그것에 결부된 경험과 기억이겠다. ‘게라’ 같은 용어가 그러하다. 오래전 활판인쇄로 책을 만들던 시대에는 인쇄 직전에 시험 인쇄한 교정쇄가 있어서 저자와 편집자가 그것을 가지고 마지막 ..
“선생님은 일할 때 사소한 데까지 마음을 담는 게 보여요. 세미나 공지메일 몇 줄에서 마음이 느껴지고요. 그게 인상 깊었어요.” 갓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일할 무렵 어떤 분께 들은 평이다. 그 말씀이 좋아서 아껴 간직했다. 때때로 혹자에게 순응적이라고 비웃음 사거나 ‘너무 애쓰며 살지 말라’는 핀잔을 듣고도 스스로의 행동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할 일은 차츰 늘었다. 논문 외에 기한을 맞춰 써낼 원고나 심사평 등이 많아졌고, 수업 외에 참여할 회의나 작성할 기획서가 쌓여갔다. 교내식당 다녀올 시간을 못 내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이것저것 일처리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했다.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에 비해 격무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까지 마감에 쫓길까. 시간과 에너지는 한..
엄마 말은 지독하게 안 듣고 컸지만 그 말 중에서 나 좋을 대로 가슴에 새긴 건 하나 있다. “젊을 땐 모르는 게 당연하다.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고개 숙여라. 그게 기특해서 어른들은 다 가르쳐 줄 거다.” 그래서 나는 모르면 알 때까지 물었고, 알아도 일단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잘 모르니 가르쳐 주십쇼’ 하는 요청을 거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궁지에 몰리고 위기를 맞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힘을 빌렸다. 그렇게 20대 내내 ‘무엇이든 물어보는 젊은이’로 어영부영 즐겁게 살았다. “엄마, ‘젊은 때’란 건 대체 몇 살까지 포함되는 거야?” 작년부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이제 나를 향해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인데. ..
프랑스에서 오래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는 와인을 늘 ‘포도주’라고 불렀다. 그 말이 우스워 들을 때마다 타박을 했지만, 친구는 프랑스에서 부르던 대로 ‘뱅’이라 말하기도 그렇고 영어 이름을 쓰기도 싫었을 테니 ‘포도주’를 택했을 것이다. 하긴 포도로 만든 술을 포도주라고 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그러나 친구가 “한국 돌아와서 사람들이 너무 비싼 포도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 것을 봐서는 뭔가 반감이 들었던 게 틀림없다. 좋은 레스토랑에 선남선녀들이 둘러앉아 저마다 와인 잔의 다리를 잡고 휘휘 돌리며 감탄사를 주고받는 그런 괴상한 풍경을 몇 번은 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와인은 비싸고 어렵고 이른바 ‘good taste’, 고상한 취향을 과시하는 상징 같아서 와인을 즐길 때마다..
지난가을 국내 개봉한 란 영화가 있다. 강변 숲속을 산책하던 사람이 흙더미 안에 나란히 누인 유골 두 구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유골의 주인이자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개척기를 살았던 두 남자다. 둘은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아온 ‘따발총’ 쏘는 보안관이나 말 달리는 카우보이가 아니라 장터에서 꿀우유빵을 튀겨 팔던 행상꾼이다. 이들은 마을 유지인 팩터 대장네 마당에 묶인 소의 젖을 몰래 짜서, 그걸 넣어 반죽한 빵으로 소소하게 돈벌이한다. 둘 중 ‘쿠키’라 불리는 이는 고아로 자라나 모피 사냥꾼 무리에 끼어 마을로 흘러든다. 주점에서 시비 붙은 사내들이 주먹 다툼하러 나가면서 애 좀 보고 있으라고 요람을 맡기는, 그러면 엉거주춤 거기 선 채 아빠가 곧 돌아올 거라며 아기를 자장자장 어르는, 그런 ..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2021년이 가고 2022년이 온다. 내년이 오면 올해는 곧장 헌 해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상투적으로 사용되곤 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에 이렇게 부합하는 해가 또 있었을까. 코로나19와 두 번째 보내는 해였지만 익숙해진 것은 별로 없었다. 마스크는 여전히 갑갑했고 연일 속보를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생활을 넘어 생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하려고 했던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매번 체념이 뒤따라왔다. 체념이 반복되거나 길어지면 무기력해진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바로 ‘일’인 해였다. 일에서 그치지 않고 ‘탈’을 낳았다. 경제적인 탈, 신체적인 탈, 그리고 어떤 기대도 갖지 않게 되는 심..
시트콤 의 차정원(배해선)은 보수 정당의 검사 출신 4선 의원으로 지금 당장 당선 가능성이 없는 4, 5위 대권주자가 되기보단, 세를 불려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노리고자 하는 야심 많은 인물이다. 그의 명분은 오직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뒷조사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서슴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의 인물과도 타협해서 쇼를 기획한다. ‘정권교체 2030의 힘으로!’라는 슬로건과 함께 보수 정당의 청년최고위원 캠프가 열리고 있는 한적한 공원.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비판하며 ‘영끌한 대출로 아파트 두어채 마련한 걸 죄악시하면 사회주의’ ‘종부세 때문에 코너에 몰린 청년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코인 투자에 실패한 청년들을 위해 정부에 장치를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