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제중(博施濟衆)이라는 말이 있다. 널리 사랑을 베풀어서 많은 이들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인(仁)하다고 인정할 만한지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어찌 인에 그치겠는가? 성(聖)의 경지에 오른 것이 분명하다. 요임금 순임금이라도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여기셨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내 눈앞의 문제들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나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홍수나 지진 등 특정 지역의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과 달리, 너나없이 생업과 일상에 지장을 받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의 것을 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다행히 우리나라가 비교적 방..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의 이모티콘은 “좋아요” 하나뿐이었다. “싫어요”도 추가해 달라는 이용자들의 요청에, 오히려 “최고예요” 등의 공감 이모티콘들을 추가했다. 그 가운데에는 “화나요”도 있지만, 이는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게시자가 분노하는 내용과 대상에 나도 함께 분노한다는 공감의 표현이다. 분노의 대상이 공적이고 명확할 때 소셜 네트워크 내에서의 확산은 매우 빠르다. 공감을 넘어서 새로운 근거와 논리를 장착한 주장으로 결집되어, 웹서비스 바깥의 현실 세계에 영향을 주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나 정의(正義) 역시 특정한 시야에 제한될 때가 적지 않아서, 의분(義憤)이라고 믿고 휘두르는 칼날이 의도치 않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신의 손마저 날카롭게 파고들기도 ..
내 몸에 세상의 온갖 곤고함이 다 이르러 흉하게 쇠하였으니, 원통하고 분하여 얼음을 품에 안은 듯하고 근심스럽고 두려워 창자에 바퀴가 구르는 듯하다. 평생 도를 배우고도 죄목은 의리를 어긴 소인이고, 태평성대를 만나고도 신세는 변방에 유배된 외로운 신하다.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을 걱정하니 머리털 난 중이요, 수염 난 아녀자다. 보름마다 점고 받으니 사로잡힌 죄수요, 열병하는 병사다. 촌구석 훈장 노릇이나 하며 아이들의 우두머리로 불리고 있다. 1802년 10월21일 심노숭이 쓴 일기다. 그는 유배형에 처한 상황에서 20책 분량의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5년4개월 동안 일기를 빠뜨린 날이 열흘도 채 되지 않는다. 다양한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유배 생활의 어려움 가운데 감정..
바람난 아내가 여종을 시켜 남편에게 독이 든 술을 권하게 했다. 여종은 진실을 말하자니 파탄에 이를 것이 걱정되었고 그렇다고 남편을 죽일 수도 없어서, 거짓으로 쓰러지면서 술을 엎질러 버렸다. 여종은 화가 난 주인에게 채찍질을 당해야 했지만, 자신의 거짓으로 부부를 지킬 수 있었다.전국시대 유세가 소진(蘇秦)은 연합하여 진나라에 맞서는 합종책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약육강식의 이해관계가 얽힌 각국의 왕을 설득하기 위해 소진이 구사한 논리와 언변은 다양하고 화려했다. 그러나 불과 15년 만에 진나라의 이간질로 합종의 맹약은 깨지고 만다. 궁지에 몰린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 왕을 속여 빼앗겼던 성 10개를 돌려받게 해준다. 그러나 연나라 왕은 소진을 냉대하였다. 그의 거짓됨을 비방하는 이들 때문이었..
당나라 때 문장가 유종원은 이라는 글을 남겼다. 궤(궤)는 앉아 있을 때 몸을 기대는 가구인데, 굽은 나무로 만든 궤를 보고 칼로 베어버렸다는 내용이다. 굽은 것을 늘 곁에 두다 보면 간교한 마음이 생길 수 있으니 과감하게 없애버림으로써 곧음을 지향하는 뜻을 표한 것이다. 곧음을 군자에, 굽음을 소인에 빗대 온 오랜 전통 위에서, 늘 왕 곁에 붙어 아첨을 일삼는 환관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비유로 쓴 글이다.19세기 조선의 사상가 심대윤은 유종원의 이 글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자연 만물에는 생김새가 곧은 것도 굽은 것도 있기 마련이고, 활이나 바퀴, 갈고리처럼 굽어야 유용한 도구들도 있다. 곧아야 할 것을 왜곡해서는 물론 안 될 일이지만, 곧은 것과 굽은 것은 각각의 용처가 있으니 어느 한쪽을 배제하는 것..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글씨를 볼펜으로 쓰는 것도 선망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연필로 써야 좋은 글씨체를 갖출 수 있다며 볼펜을 못 쓰게 했지만, 어린이는 잘못 쓰는 일이 많으므로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써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한 것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는 이유가 사랑의 실패를 경험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잘못 써서 지워야 할 일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연필을 어린이의 전유물로 여기곤 한다. 그럴수록 모르는 것, 잘못한 것이 있음을 인정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석사과정에 재학할 때 일이다.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이 문제는 일단 궐해 두세”라고 하셨다. ..
“일반인은 해오던 대로 안주하려 하고 지식인은 자신이 아는 것에만 빠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존의 규범을 지킬 줄만 알 뿐, 그 규범을 벗어나서 논의할 줄은 모릅니다. 하(夏)·은(殷)·주(周) 삼대는 예가 서로 달랐지만 각기 왕업을 성취했고, 다섯 제후는 법이 서로 달랐지만 각기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예를 만들지만 어리석은 자는 예에 얽매이며, 훌륭한 자는 법을 바꾸지만 모자란 자는 법에 붙들립니다.” 기존 규범의 고수를 주장하는 대신들과 논쟁하며 공손앙이 한 말이다.통용되는 규범을 바꾸기 어려운 것은 지금이나 2400년 전이나 다르지 않다. 익숙한 규범에 따라서 잘 운영하는 편이 안전하지 혁신은 혼란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 당시 진나라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감룡, 두지 등의 반대 ..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1박2일 일정으로 백령도에 간 일이 있다. 그런데 도착한 날 오후 2시에 다음날 배가 뜨지 못한다는 통보를 들었다. 화창하고 바람도 없는 날이었기에 의아했는데, 문제는 해상의 안개였다. 배에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에 장애물을 만났을 때 시계(視界)가 방향을 틀 수 있을 만큼 확보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3박을 하고서야 백령도를 떠나면서 깨달았다. 멈출 수 없으면 출발할 수도 없다는 것을.“해는 길고 새 소리 즐거운데/ 비 온 뒤 산 기운 아름다워라./ 깨끗이 치우고 책을 마주하니/ 이제야 옛사람의 마음이 보이네.” 선비라면 으레 이렇게 살았으리라 여기기 쉽지만, 이행이 이 시를 지은 것은 모진 국문 끝에 겨우 목숨을 건져 유배 생활을 하던 때이다. 18세에 문과 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