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거주춤 굼뜬 걸음걸이. 뚜루뚜루 뚜뚜뚜 두꺼비가 기어가는, 아니 굴러가는 풀마당. 두꺼비가 나랑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돌무더기에 굴을 파고 사는 거 같다. 보일러는 놓고 사는지, 신문도 보고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멀뚱멀뚱 사방을 둘러보고 눈을 끔벅거리면서 순찰을 돈다. 나라 걱정도 하고 생각이 많은 표정이렷다. 두꺼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소리인데, 과거 김근태 장관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간판 심볼이 두꺼비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갇힌 두꺼비들은 하루도 아니고 수십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지. 대신 고초를 당한 업두꺼비 덕분에 민주화된 세상을 만났지만,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시계는 거꾸로 돈다. 우리 집 두꺼비는 내가 한번씩 쓰다듬어주는 거뿐. ‘관절 뽑기’ 물고문 전기고문 같..
울 동네에선 동물 친구끼리 사랑하는 걸 ‘대붙는다’고 하는데, 개며 염소며 집짐승들은 타고난 요령껏 자손을 번성시켜, 이렇게 빼닮은 걸 ‘타갰다’고 말한다. 외탁이든 친탁이든 ‘타갠’ 후대를 보게 되는데, 성질머리조차 타갰다. 특히 고집불통의 대명사인 염소는 진짜 주인 말을 안 들어. 염소를 끌고 가는 주인네들 보면 힘에 부쳐서 질질 끌려다닌다. 염소를 ‘몀생’이라 부르는데, 인생이나 몀생이나 괜한 고집과 땡깡을 부려 무슨 득 될 게 없거늘 유달리 드센 녀석들이 있지. 타갠 것의 정도가 지나쳐 천하의 막무가내 별종, 변종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를 ‘똘것’이라 부르기도 해. 무리 생활을 마다하고 외따로 멋대로 사는 똘놈. 양고기와 개고기 이야기는 당분간 금지. 살아 있는 양이나 개, 염소 이야기는 오케이...
누가 카페를 하겠다며 이름을 지어달라길래 우리말로 몇 개 보내줬더니 암만 생각해도 촌스럽대. 그럼 애당초 외국인에게 부탁하지 왜 한국인을 귀찮게 하누. 외국어로 해야 ‘부티 귀티’가 난대나 어쩐대나. 똥개가 애기똥을 집어먹는데 옆을 지나던 애완견 왈 “여보슈! 드럽게 사람 똥을 다 먹엇?” 그러자 똥개 왈 “어르신 밥 먹는데 똥 얘기 말엇!” 누군가의 눈엔 한없이 ‘누추하고 낮은 곳’. 그러나 개똥이 민들레를 키우는 맨땅 풀밭은 촌스럽기에 외려 기름지고 푸르러라. 대통령이 사는 집 이름도 신문에 보니깐 영어 이름을 가진 높다란 아파트. 세종 임금이나 이순신 장군이 알까 봐 쉬쉬하자고. 윗지방엔 폭우가 내린다는데, 여긴 구름 낀 하늘 아래 연일 푹푹 찐다 쪄. 둘러보면 얼죽아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
무를 바닥에 깔고 하물하물 푹 익힌 갈치전골로 친구들과 밥을 먹었는데, 한 친구가 오랜 날 심리학 상담공부로 얻은 재미난 얘길 꺼내더라. 혼자든 여럿이든 우울증을 앓는 이가 사는 집엘 가보면 3가지 무덤이 있대. 첫째는 ‘신발 무덤’. 아파트나 어디 문을 열면 현관에 오만가지 신발이 다 나와 나뒹군대. 신발이 삐툴빼툴 놓인 집엔 들어가고 싶지 않아. 둘째는 ‘옷 무덤’. 거실에서부터 군데군데 옷무더기들이 마치 공동묘지 봉분처럼 봉긋 솟아 있고, 빨래는 산더미가 되어야 빨고, 이도 옷걸이 말고 대충 손 닿는 곳에 축~ 널어놓은 집. 셋째는 ‘침대 무덤’. 침실의 이불이며 베개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온갖 옷이며 수건, 잡동사니가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같이 사는 ..
한번은 테레네 사막(사하라 복판)엘 갔었어. 낙타몰이꾼이 말하길, 전에는 소금을 싣고 사막을 건넜다던가. 낙타 대상 무리가 사막을 행진하는 장관을 온갖 제스처를 동원해 설명.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쬐노라면 포크록 밴드 ‘시인과 촌장’의 노래 ‘나무’에 등장할 법한 가시투성이 나무가 반갑고 소중해. 종려나무가 늘어선 오아시스엔 마을이 들어서고, 마을 초입에 우물을 파고 학교와 병원을 지었지. 나는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아기염소를 한 마리 붙들고서 이런 노랠 흥얼거렸어. “푸른 잎사귀로 잊혀진 엄마처럼 따뜻하게 곱게 안아주는 나무… 떠나간 아이들이 하나둘 돌아오면 그 줄기 가득 기쁨 솟아올라 밤새워 휘파람 부는 나무.” 전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곧 학교였다고 했다. “리얼 스쿨?” 후원자들의 돈이 모여 건..
이름조차 ‘쉼’, 휴식을 주는 시인 ‘쉼보르스카’를 좋아해. 그녀의 시엔 ‘더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시가 한 편 있어. 우리말로 옮기자면, “영화를 좋아해. 고양이를 더 좋아해. 초록색을 더 좋아해. 뜻밖에 뜬금없는 게 더 좋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걸 더 좋아해. 의사들이랑 병이 아닌 다른 일로 떠드는 게 좋아. 시를 안 써서 조롱을 당하느니 시를 써서 조롱당하는 편이 더 좋아. 침략하는 나라보다 침략당하는 나라가 더 좋아. 조간신문의 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 꼭지가 더 좋아.” 시의 한 부분. “바르타 강가에 홀로 서 있는 떡갈나무가 참 좋아.” 맘에 들어 밑줄을 그었다. 어떤 환자가 있었는데 의사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내렸어. “적금이 1년 뒤에나 나오는데 그때야 병원비를 낼 수 있겠는..
섬 전역에 퍼진 수국은 축제 그 자체. 쇠소깍의 검은 모래와 몽돌 구르는 소리. 안개가 가득한 중산간도로가 그리워서 제주섬에 다녀왔다. 수영도 잠깐 즐겼어. 1년 전 제주 한 실내수영장에서 허리도 굽고 빼빼 마른 할머니가 자유형을 거뜬히 몇 바퀴. 나는 그야말로 어설픈 해적수영. 그날 결심했지. 수영을 정식으로 배우겠노라. 드디어 상급반 정도는 된다. 언젠가 제주섬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았지. 지독한 습기와 뙤약볕에 죽을동살동 쉽지 않은 도전. 이후엔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즐기며 그늘을 찾아 아이스크림을 먹고만 싶다. 어딘가 푯말에 ‘또옵써’. 요새 듣기 어려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인사말. ‘너딴 거 다시 볼 일 없다. 다시는 너랑 여행 안 해. 앞으로 연락하지 마. 어디서 나 아는 체하지 말아줘.’ 제 ..
도시가스공사, 도시가스설비. 같은 나라에 살지만 시골가스는 없다. 똑같이 세금을 내고 선거권도 있으나 열외. 고유가 시대, 여기선 가스마저 천신을 못하고 살아. 풋고추, 매실장아찌, 찬밥에 물 말아 먹고 거기다가 찬물에 샤워까지 하면 여름에도 얼어죽어. 미숫가루와 얼음 두어 알이면 만족하지만, 무덥다고 찬물에 무작정 샤워를 했다간 심장마비로 꼴까닥. 물을 햇볕에 받아놓고, 고마운 해가 종일토록 데운 물로 목욕을 한다. 언제부터 동네에 동글납대대하게 생긴 친구가 돌아다니길래 나이를 물었더니 나랑 비슷. 명퇴하고 귀촌했다나. 엄니 산밭을 돌보며 한동안 눈에 보였어. 농협 유조차를 불렀는데, 요새 기름값이 얼마냐 물으며 한숨을 짓던 일이 엊그제. 그렁성저렁성 말벗이라도 될까 했지. 행방불명 안 보이길래 물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