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정치인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단숨에 1, 2위를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공보팀을 꾸리는 등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비공식적인 정치를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소식은 그가 검찰총장 퇴임 직전에 뉴욕 검찰의 전설이라 불리는 고 로버트 모겐소 검사장의 전기를 배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사서 나눠준 것도 아니고, 일부러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이 제작하도록 하고 직접 추천사를 써서 전국 검찰청에 2300부를 배포했다고 한다. 모겐소는 윤 전 총장과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집요한 수사와 기소로 유명해졌는데, ‘..
작년 12월 국민의힘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국내에서 확진자 수만 세지 말고 당장 해외로 나가 백신을 구해오라고 다그친 적이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방역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백신 수급 문제를 꼽았다. 하지만 데이터가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방역 성공과 백신 성공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미국과 영국 등 방역에 처참하게 실패한 강대국들이 백신민족주의를 앞세워 싹쓸이를 하고 있고, 한국처럼 방역에 비교적 성공한 나라들은 싹쓸이할 국력도 부족하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덜 느낀다. 한국의 백신 수급이 비교적 늦은 것이 과연 K방역의 성공에 도취되었기 때문인지, 사상 유례없는 속도와 방식으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신중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 이후 7700만명분을 확보..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의 명단을 보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여당의 우상호·박영선, 야당의 나경원·오세훈·안철수 등이다. 누가 여론조사 1위라는 둥 누가 경선에서 유리하다는 둥 하지만, 어쩐지 시들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책이나 공약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돋보인다. 그의 공약에 찬성하든, 안 하든 분명하게 제시하고 평가받겠다는 자세는 눈에 띈다. 후보들의 공통점이라면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르게 이어지고 있는 86세대 정치적 기득권층에 속한다는 점, 오랫동안 전업으로 정치를 해왔지만 유명하다는 것 말고 그 정치적 기여가 무엇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신선한 제3의 후보를 기다리게 된다. ‘영입’이다. 한국 정치에서 영입..
연말이 되니 지나간 한 해를 회고하거나 새해를 전망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이 지면을 빌려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 다시 돌아보았다. 그 시점에서는 나름대로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고 생각했던 내용들이니 모아놓고 보면 한 해를 회고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는 4·15 총선을 앞두고 위성정당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양대 거대정당의 꼼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개정선거법의 정신을 팽개쳤고, 중도 혹은 소수파 유권자의 권리를 빼앗았으며,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진 망국적 분열상을 그대로 국회로 옮겨왔다. 그 당시 나는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고 했던가. 21대 국회는 그 이상을 보여줄 것임이 확실하다”고 썼다. 그 예상은 별로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거대여당..
올해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변수는 뜻밖에 코로나19였는데, 감염병의 사이클에서 앞부분은 정치적 파급효과가 크지만 뒷부분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감염병이 처음 등장할 때는 불확실성과 공포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부의 대처와 그 효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감염병이 사라지는 단계에서는 공포도 함께 줄어들고 관심사는 여러 곳으로 흩어진다. 4·15 총선으로 돌아가보자.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이 2월19일이었고, 총선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정부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굴욕외교=방역실패=무능한 정부’라는 프레임을 반복 주입했다. 하지만 3월 중순 이후 한국의 방역성공이 세계적 모범사례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공세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방역..
그동안 한국에서 세금은 내라는 대로 내는 것이었다. 경제학적으로는 세금은 개인의 사적 부를 국가에 이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개인이 가진 돈 중 일부를 국가가 자기 것이라고 가져간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원칙 위에서 만들어졌다. 식민 본국인 영국 의회가 식민지 개척자들을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표해주지 않는다면 세금을 낼 수 없다는 주장이고, 이것은 미국 독립전쟁의 첫 번째 슬로건이 되었다. 즉 미국은 동의할 수 없는 세금에 반발해서 만들어진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예들도 많다. 1992년 미국 콜로라도주 주민들은 주헌법 10조를 개정하고 ‘납세자권리장전’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유권자 동의 없이..
포퓰리즘이란 단어는 종종 ‘대중주의’라고 번역되는데, 그래서인지 그 실체가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령 아니냐는 착각이다. 2018년 이재명 경기지사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은 포퓰리스트라고 대놓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포퓰리즘의 반대말은 엘리트주의이고, 촛불혁명이 보여주었듯이 국민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며, 따라서 본인은 주체를 대변하는 포퓰리스트라고 설명했다. 틀렸다. 포퓰리즘은 엘리트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선한 대다수 국민과 나쁜 소수 엘리트(혹은 기득권)를 구분해서 정치에 이용하는 모든 방식을 말한다. 포퓰리즘의 원래 뜻에 대입해보면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즘에 대한 취약성을 안고 출발했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201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특별한 시기를 살고 있다. 1995년 일본 옴진리교의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출퇴근 시간의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해 12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중태에 빠지는 테러를 저질렀다. 눈앞에 다가온 종말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질 텐데, 자신들이 죽여주는 사람들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이비 믿음에 빠진 그들은 죄책감도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 다행히 그들의 테러행위는 세 번의 범행 끝에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종식되었는데, 만약 길게 이어졌다면 일본 사회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시대는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생명을 빼앗고, 나아가 사회를 붕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