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지방선거에서 2연패한 민주당에서는 친문계와 친명계의 책임 공방이 살벌하다. 제도적으로는 당대표 선출 시 현재 대의원 45%, 권리당원 40%로 규정된 반영 비율을 각각 20%와 45%로 조정할 것인가가 뜨거운 쟁점이다. 대의원은 친문계가, 권리당원은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며 유입된 강성 지지층이 두꺼운 친명계가 더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리당원 반영 비율을 높이자는 쪽의 주장은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이 당의 주인인데 지금의 제도하에서는 이들의 더 많은 지지를 받아도 대의원 지지를 못 받으면 낙선할 수 있어서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다른 나라의 제도와 비교해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떠오르는 질문은 이런 것이..
대선이 아직 서너 달 남아 있던 지난겨울 어느 날, 서울 시내 한 식당에 네 사람이 모였다. 나야 아직 깜냥이 안 되지만, 일행 중 두 사람은 학계에서도 손에 꼽는 선거 전문가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민주당 측의 무게감 있는 인사였다. 네 사람은 정치적 지지로 얽힌 관계는 아니지만 인간적 친분은 오래 쌓아온 사이였다. 이 정치인은 나머지 세 사람에게 다가오는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물었는데, 세 사람은 어찌 된 일인지 본격적인 전망은 안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했다. 두 시간 가까이 대화가 겉돌자 정치인은 “이야기들을 안 하시는 걸 보니 전망이 밝지 않은 모양이군요”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일정을 향해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나자 남은 세 사람이 각자 본인의 전망을 꺼내놓았는데, 나는 깜짝 놀랄 수밖..
표절 논란에 휘말렸던 한 유력 정치인의 석사학위 논문이 해당 대학으로부터 표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늘 그렇듯이 연구윤리지침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표절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고 통상적인 관행이었다는 투의 설명도 따라붙었다. 해당 정치인은 몇년 전부터 이미 논란이 된 학위를 반납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나는 이 특정 정치인만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가짜 논문과, 그렇게 얻은 가짜 학위와, 표절 시비와, 학위 반납이 이어져 왔다. 정치인도, 고위 관료도, 교수도, 연예인도, 스타 강사도 골고루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두고 봐야겠지만 곧 있을 인사청문회에서도 단골 메뉴인 표절 논란이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표절 논란이 하도 많다 보니..
지식이 경제성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과거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문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이 가장 필수적인 지식이었다. 국가별 1인당 GDP와 문해율의 통계적 상관관계는 0.9가 넘는다. 국민 다수가 글자를 읽지 못하는데 부자가 된 나라는 없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우리의 경제 기적을 낳는 데에 핵심적인 변수였다. 기술의 변화는 필수적인 지식의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에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노동은 빠르게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업그레이드된 지식을 모든 국민에게 제공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모든 국민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지식 생산과 유통의 체계를 일반 국..
한 정권의 성패는 종종 아주 초기에 결정된다. 정부 출범 이전인 경우도 많다. 문재인 정부 실패의 씨앗은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뿌려졌다. 3강 중에서 문재인 후보와 이재명 후보는 적폐청산을 주장했고 안희정 후보는 국민통합을 외쳤다. 문재인은 이 경선 승리 전략을 발판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이재명은 5년 후 대선 후보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은 적폐청산이 촛불 광장의 핵심 어젠다가 아니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원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문재인 후보의 경선 전략이었고, 그가 대선 후보로 확정된 4월3일부터 장미대선이 치러진 5월9일까지 한 달간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을 뿐이다. 우연찮게 만들어진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는 신성불가침의 원칙처럼 되어..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이다. 첫째, 보수 유권자가 그 어느 때보다 필사적이다. 어떻게든 정권교체를 해야만 한다는 결기가 데이터의 흐름에서 여러 차례 읽힌다. 둘째, 이대남의 결집이 강력한 변수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이 두 가지로 거의 다 설명이 된다. 남은 한 달 동안 판을 뒤집을 수도 있는 새 변수는 오미크론이다. 단일화를 비롯해 막판 변수들이 작동하겠지만 게임 체인저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필사적 보수와 결집한 이대남이라는 최대 변수 두 개를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정치인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다. 그의 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준석이 옳으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옳으냐 그르냐는 도의적 기준이다. 이준석이 맞냐고 묻는다면 그렇..
세금은 앞으로 한국사회 최고의 갈등 요인이 될 것이고, 세금을 둘러싼 정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이다. 유럽에서 이미 수십 년간 경험한 바 있는데, 우리의 갈등 양상은 훨씬 심각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이라 쓰고 세금이라 읽어버렸으니, 가뜩이나 예정된 갈등이었던 세금 전쟁의 판은 더 커졌다. 전선은 둘이다. 단기적으로는 계층, 중장기적으로는 세대.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북유럽 같은 고부담·고복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중부담·중복지 사회가 우리의 목표라고 가정해보자. ‘얼마’가 필요할까.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공적사회지출은 12.2%로 예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에서 네 번..
11월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이후 대선판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윤석열 후보는 단숨에 10%포인트 정도의 격차로 그때까지 아슬아슬한 1위를 유지하던 이재명 후보를 단숨에 따돌렸다. 하지만 선대위 구성의 난항이 길어지고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다시 이재명 후보와 동률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전격적인 울산 회동과 김종인 박사 영입까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 모든 게 한 달 안에 벌어진 일이다. 무슨 일인가. 지지율 변동의 내막을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윤 후보의 10%포인트 상승부터 보자. 이 시기에 지역별로 윤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상승했다. 집값 상승과 종부세 납부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격차가 커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이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