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무능, 그리고 그 무능이 어떻게 스스로와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이다. 우선 가장 기초적인 사실부터 따져보자. 알다시피 정치의 영역에서 합의를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합의를 이루고 있었던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유가 있다. 첫째, 기존의 선거제도하에서는 많게는 50%에 가까운 투표가 사표가 되어 사라진다. 특정 지역에서 A 정당이 전체 투표의 51%를 얻었는데 의석은 100% 가져가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다른 정당과 정책을 원했던 49%의 뜻은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선거법 개정의 한..
일부 언론은 황교안 대표의 단식 이후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반등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은 그 직전에 잠깐 빠졌던 2~3%포인트를 다시 회복했을 뿐이다. 6개월 전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5월 말에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2%였는데 며칠 전인 11월 말 지지율은 23%로 6개월 동안 딱 1%포인트 올랐을 뿐이다(이하 갤럽 자료 기준). 중간에 많이 올랐다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소위 ‘조국사태’가 정점으로 달려가던 10월 중순에 27%를 찍은 것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이었다. 자유한국당에 가장 유리한 판국에서도 민주당 지지층 2~3%를 빼앗아 오는 것에 그쳤고, 이들은 한 달 만에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왜 오르지 않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 요인의 결합이 가장 중..
또다시 공정성이 정치적 화두가 되었다. 장관 한 사람과 그 가족을 둘러싸고 두 달 넘게 이어진 공방을 지켜보면서 결국 유탄의 일부는 대학으로 튈 거라는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교수의 자녀가 다른 교수 논문에 이름을 올리거나 장학금을 받는 일들은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역린을 자극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따라서 교육 문제를 넘어 정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역시나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에 이어 교육부는 각 대학에 정시를 얼마나 확대해줄 수 있는지 타진하느라 여념이 없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학에서 입시를 가장 잘 아는 입학처장들이나 입시전선의 최전방에 있는 교사들은 정시 확대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공정성이 필요 없다고 보는 것일까.돌이켜 보면 대통령이 공정성을..
-2018년 10월 8일 지면게재기사-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에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집회 참여자의 11%가 원래 새누리당 지지자였다. 원래 새누리당 지지자 중에서 지지를 철회한 사람이 60%를 넘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책임을 물은 사람도 50%에 달했다. 새누리당 의원 중 탄핵에 찬성한 사람이 62명이었다. 잠깐이나마 이건 아니라는, 그러니 바꿔야 한다는 정치적 합의가 존재했다는 뜻이다.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국민은 세 갈래로 나뉘었다.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 조국 사퇴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 이도저도 지긋지긋하다며 염증을 내는 사람.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손민주주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손민주주의란 정치학자 볼프강 메르..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장관을 임명했다. 놀란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의 상황에서 임명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독이 든 두 개의 잔이다. 임명과 철회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지켜보는 심경은 그저 착잡하다. 국회의 시간도 지나고, 대통령의 시간도 지나고, 격돌의 시간이 다가왔다. 대통령과 조국 장관은 야당과 검찰과 언론과 여론을 상대로 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4중 격돌이다. 격돌의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 한 달간의 소위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것들은 이렇다.첫째, 정의와 상식이 충돌했다. 나는 그동안 여러 차례 ‘386’의 유통기한은 끝났다고 지적해왔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끝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386의 ..
한·일 무역분쟁이 첨예해지면서 점점 도드라지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기업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요즘 무역분쟁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 조금씩 희망적인 소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앞으로 1년 정도면 우리 기술력으로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피해는 일본의 수출 기업에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표적이다. 관련 기술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큰 피해를 입을 줄 알았던 우리 대기업들이 이미 상당량의 재고를 확보해 놓았다든가 혹은 일본이 아닌 제3국으로부터 대체 수입원을 확보했다든가 하는 소식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우리의 글로벌 기업들이 위기에 ..
이번 아베 정부의 계산된 공격은 아프다. 누군가는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고도 했다. 동의한다. 일본은 분명히 선을 넘었다. 물론 일본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한국이 계속해서 일본을 자극했고 거듭된 대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을 넘어 갈등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것은 일본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은 외교의 실패를 지적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의 외교라인은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잘 언급되지 않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오다가 이제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한 우리의 취약성이다. 등에 칼을 맞았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등을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드러낸 취약성이 무..
“폭발사고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조금은 느긋한 주말 기분에 젖어 침대에서 TV를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자막이 떴던 순간의 기억이다.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는데, 왜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내가 학교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의 학교에는 선진국에 비해 안전 인프라가 한참 부족한 상태에서 연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밤을 새우며 실험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간혹 일어난다. 그 장면을 떠올린 것일까. 정당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정치개혁을 위해 단기필마로 분투하다가 마침내 목숨을 버린 그를 보며 폭발사고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설명해야만 했다. 그가 왜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