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스피커로 방송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일 오전 우리 마을 ○○○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은 어디고, 발인은 언제며, 상주는 누구, 누굽니다. 함께 애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그 순간은 잠시 손을 모으게 되었다. 할머니는 행복한 분인지도 모른다. 애도의 의례가 남아있는 곳에서 돌아가셨으니. 장례의식은 당신의 삶과 죽음이 공동체 안에서 기억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의 힘은 남은 이들에게 더 큰 결속감과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부고는 거의 사라졌고, 내가 본 것도 어쩌면 농촌공동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게 될 마지막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다음 날 신문에서 홀로 죽는 청년들에 대한 기사를 봤다. 코로나19 이후 ‘청년 고독사’가 증가하..
칼럼 주제로 몇 가지가 떠올랐으나, 국민과 언론의 주목이 덜 쏠린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1주-10의결권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벤처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이야기이다. 벤처특별법 개정안은 개정 목적과 법안 내용 사이에 심각한 모순을 갖고 있다. 먼저,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특별법 개정안의 필요성으로, 유니콘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대규모 투자 유치 시 창업주의 지분 희석과 이에 대한 우려가 투자 및 성장의 장애요인으로 대두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익명의 세 사례를 제시해 왔다. 구체적으로, A사가 총 104억원을 투자유치해 창업주의 지분이 29%로 줄었고, B사는 총 162억원 투자유치로 창업주 지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페이스북에 쓴 ‘여성가족부 폐지’ 때문에 주변이 시끄럽다. 정부 기구란 없앨 수도 있고 확대할 수도 있는 터라 그 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닌 듯하다. 소란의 까닭은 말의 정치적 맥락 때문이다. 윤 후보는 이 말로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하여 특정 집단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기획이다. “페미니즘이 그렇게 혐오, 배제해야 할 대상인가? 성별 대결을 부추기는 것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도리인가?” 며칠째 윤 후보에게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 후보는 페미니즘을 비틀어 분열을 조장하고 그것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걱정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 문명국가가 되는데 페미니즘의 기여가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한다. ..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질서와 평화, 신뢰와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히 혼돈과 고통, 환멸과 좌절의 세상이라고 할 만하다. 왜 그러한가? 우리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재앙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히도 ‘인간이 자연에게 가한 재앙’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재앙’ 그리고 이 두 가지 재앙이 결합된 ‘인간과 자연의 공멸 재앙’이 그것이다. 첫째, 인간이 자연에게 가한 재앙은 어떠한가? 주지하다시피,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 열대우림과 산림파괴, 육지와 해양의 플라스틱 쓰레기 범람, 전쟁, 화·생·방의 무기화와 사고, 원전 폐연료 심해 무단 처리로 인한 해양 오염, 각종 산업재해 등 인간이 ‘어머니 자연’에게 가한 반(反)창조적 패륜은 오래전부터 본격적인 자연의 반격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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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의힘을 보면 작란이나 콩가루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들에게서 국민이 절실함을 느낄 수 있을까. 권력욕 자체에 대한 절실함은 없어야 하겠지만, 정치 철학에 기반을 둔 정치적 목표 실현의 절실함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각자의 이권을 추구하며 옥신각신하는 이전투구라고밖에 할 수 없다. 국민의힘의 내분은 선거 강령이나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선거대책위원회의 자리다툼이나 태도를 둘러싼 싸움이다. 의원총회를 통해 다시 한팀을 선언했지만, 제대로 봉합되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의힘 내분의 반사이익으로 이재명 후보가 지지율 40%에 턱걸이했다고는 하나 아직 30% 박스권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재명 후보가 직접 인정했듯이 지지율 상승도 데드크로스 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공이..
늘 병원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아픈 것도 힘든데 막대한 병원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정들었던 집까지 팔고 또 누구는 아예 치료를 포기한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있음에도 벌어지는 일이다. 이러니 민간의료보험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한국의료패널조사에 의하면, 100가구당 81가구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가구당 보험개수는 5.2개, 평균보험료는 월 32만원이다. 민간의료보험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전액 내며, 아픈 정도보다는 보험료 수준에 맞춰 보장해주고,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조장한다. 병원비가 시장상품으로 다루어질 때 생기는 가계부담, 형평성, 지출 낭비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제도이다. 그럼에도 시민의 입장에서는 아팠을 때 가계 파탄에 대비..
나이 탓인가? 새해를 맞았는데 감흥이 없다. 어렸을 적에는 새해 첫날이면 올해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가 가득해 설레기까지 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설렘은 사라졌지만 나름의 계획과 희망으로 새해를 맞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무덤덤하다. 지난해만 해도 코로나19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팬데믹 3년차가 되고 보니 마스크 없이 살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고 그저 ‘새해가 별 건가 그냥 또 다른 한 해지’ 싶다. 코로나19로 미뤘던 계획도 이젠 코로나19를 상수로 두고 세우지 않으면 평생 계획으로만 남을 것 같다. 만남이 줄고, 개인은 고립되고, 미디어 소비는 늘고, 모두가 날이 서 있다. 어렵게 만나봐야 주식, 선거, 부동산이 단골 주제인데 실컷 떠들고 나면 비교와 한숨만 남는다...
2021년은 세상을 멈추게 하려는 힘에 맞섰던 힘겨운 시기였다.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맹렬한 향기’가 되어 함께 견뎌냈다. 내일이면 2022년이 시작된다. 한 해가 저물어 아쉬운데, 까지 막을 내려 서운함이 크다. 은 12월29일 200회로 1445일간의 대장정을 끝냈다. 전국 자영업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고, 시청자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귀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처음 방영되던 때가 2018년 1월5일이었다. 이화여대 앞의 소바집, 햄버거집, 일본라멘집, 백반집을 촬영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후 충무로, 공덕동으로 이어졌고, 고대 정문 앞을 끝으로 38개 골목에서 132개 가게를 누볐다. ‘전국 지역경제 살리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골목이 품은 이야기들을 맛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