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이 더욱 외로워지는 연말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평소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 아닐까. 비혼과 1인 가구 등으로 표상되는 ‘혼삶’은 물론 자살, 고독사, 무연고사 등으로 현상하는 ‘혼’죽음은 이제 전 연령대에 퍼져 있다. 1인 가구는 전체의 31.7%(2020년 기준)이고 그 증가폭은 통계청의 예측치를 훌쩍 넘어섰다 한다. 전체 1인 가구에서 40세 미만이 37%나 되고, 20~30대 1인 가구는 1년 만에 95만명이나 늘었다. 사별 등의 이유로 생기는 고령층 1인 가구도 많지만 그보다 미혼·만혼으로 인한 1인 가구화가 더 빠르다. 정치학자 김만권은 외로움이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관된다고 논한 바 있다. ‘자기책임’과 ‘각자도생’만이 지배하는 황량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약자·소수자를 ..
‘헬조선’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과 , 방탄소년단. 적어도 2021년 한 해는 세계적 코로나19 헬 속의 안전지대를 자임한 K방역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더 드러난다.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말도 나온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통계는 올해에도 변함이 없었다. 인구 1000만 이상 나라 중에서 세계 최악의 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임금격차지수, OECD 최저수준의 소득불평등, OECD 최악의 산재사망사고발생률 등. 물론 대한민국의 각종 질곡에 대한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기본소득, 부동산투기규제, 산업재해규제, 최저임금 등. 하지만 OECD 최저수준의 조세율과 역시 최저수준의 사회복지예산비율 등 실체적 변화들에 대해서는 진보도 보수도 아..
‘교육자치 30년’을 기념하는 공식적인 행사가 지난주에 개최되었다. ‘모든 국민이 교육전문가’라는 말이 있지만, 비교적 낯설고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교육 이슈가 지방교육자치로 불리는 제도일 것이다. ‘지방자치’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익숙하게 접하고 시청이나 시의회를 떠올리게 된다. ‘지방교육자치’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지방교육자치의 목적은 지방교육의 발전이다. 학교의 유형은 국립, 공립, 사립으로 분류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립학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립·경영하며, 공·사립학교는 교육감의 지도·감독을 받는다. 초·중등학교, 그리고 유치원과 특수학교를 관할하는 중요하고 실질적인 교육이 지방교육이다. 지방에서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의 발전을 위해 지방교육자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에서 지방교육..
미국이 인권 문제를 이유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한다고 공식 발표하자, 우리 외교가에서도 보이콧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외교적 보이콧을 고려하지 않고 있고 그런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쿼드 가입국이자 미국의 정보동맹국인 ‘파이브 아이즈’ 국가인 호주 총리 앞에서 대통령이 직접 답한 것인 만큼 그 무게감은 가볍지 않다. 직전 동계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이웃 국가에서 열리는 차기 올림픽에 보이콧 운운해야 하는 것도 서글픈 현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인권보다 올림픽이 중요하냐는 반론 앞에 시달리게 될 우리 외교관들의 고달픈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한국에 인권은 실질..
올봄 집 앞 작은 땅에 풀 뽑고 돌을 골라 손바닥만 한 채마밭을 하나 만들었다. 책모임 동무들하고는 토종텃밭 일구는 공동농사도 벌였다. 귀촌해서 1000평 땅에 과수 농사도 했는데 이 정도야 싶었지만 여러 작물을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돌봐야 하는 텃밭 농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규모가 작아도 세심하고 꾸준한 관리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의 텃밭은 종합 예술 정원인데, 우리들의 텃밭은 뭔가 엉성했다. 고수의 춤사위가 고난도 동작을 가뿐하고 수월한 몸짓으로 펼쳐보이듯이 농사도 그런 일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륜과 숙련이 몸의 감각으로 쌓여야 기술의 적용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일.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농사는 예술성도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한다. 얼마 전 농업 정..
1991년에 유학을 간 미국에서 일본이 곧 미국을 추월할 것이고 일본식 경영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만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이미 시작한 때였는데도 1970~1980년대 일본의 경제적 성공에 매몰되어 곧 드러날 문제를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세계 10대 강국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현재 보이는 것만 보고 미래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거나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가격 경쟁력과 생산공정 혁신 중심의 한국 제조업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은 2011년 이후로 다양한 지수들에서..
이재명의 외연 확장 행보가 거침없다. 박정희의 고속도로, 박태준의 포항제철은 물론 전두환의 삼저호황까지 주저하지 않고 불러낸다.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민망하고 어지러워 속이 울렁거린다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전두환까지 호명해야 하나라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이재명으로서는 절박한 모양이다. 역사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정책에서도 중도 성향 유권자에 대한 구애를 서슴지 않는다. 중도지지 기반을 얻으려는 전략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의 열쇠가 되는 것은 스윙보터 때문이다. 한때 ‘기회주의적’ 유권자로 불렸으나 지금은 ‘까다로운’ 유권자라고 하는 존재다. 이들은 분명한 소신이 있으며 사안별로 꼼꼼하게 따지며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자기 주도적 참여자이다. 이 까다로운 중도 유권자를 ..
매년 이맘때면 남북관계와 관련된 정세 평가 및 전망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 연말에도 어김없이 이곳저곳에서 부탁받은 글 빚이 쌓여 있지만 뭘 써야 할지 난감하다. 최근 몇 년간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지나간 1년을 평가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이다. 2019년 희망으로 가득 찼던 전망은 2018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를 맛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2020년과 2021년에도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다음 해를 전망해 보았지만 더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북관계를 전망하기가 두렵다. 우리는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그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 9월 평양에선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남북의 주민들 삶 속에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