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국민이 선택할 시간이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당선 가능성이 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각각 유능한 일꾼론과 정권교체론으로 맞서고 있다. 집권세력이 제대로 못했다면 바꾸는 게 맞다. 어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정권교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세력에 책임을 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묻지 마 정권교체’는 곤란하다. 집권세력이 잘한 것과 못한 것을 꼼꼼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정권을 바꿀 까닭을 분명하게 확인했다면, 그다음엔 ‘좋은 정권교체’인지 물어야 한다. 정권을 바꾼 결과가 더 나쁘다면 선거는 그저 단순한 분풀이에 불과하게 될 거다. 5년 만의 대선을 그렇게 허비할 수 없다. 선과 결과에 따라 국민의..
이번 대선이 신나지 않는다. 정권 사수 혹은 교체가 간절한 분들도 많지만, 나와 비슷한 심정인 사람들도 흔히 본다. 민주공화국 시민으로 투표를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면서도 이번만은 투표하기가 싫단다. 비호감 후보들을 두고 차악을 뽑아야 하는 ‘강요된 투표’가 민주주의인지 의문까지 제기한다. 단지 인물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복지 발전의 계기를 기대했던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복지공약에서도 실망이 크다. 2012년 대선에서는 신이 났다. 당시 무상급식 논란으로 타오른 복지 논쟁은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3무1반)을 엮어서 보편복지 담론을 만들었고 박근혜 후보조차 아버지의 꿈이었다며 복지국가를 내걸었다. 시민들은 서구 나라 이야기로만 여겼던 복지국가를 한국에서도 그려볼 수 있었..
아이들이 폭격에 울부짖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운동가 니나 포타르스카가 절규하듯이 우크라이나 인민이 겪고 있는 고통은 영화의 장면이 아니다. 러시아는 정당화될 수 없는 침략 전쟁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미국은 책임이 없는가?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한 개혁·개방을 이끈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미 1997년 미국의 나토(NATO) 군사동맹 확장 정책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구소련 국가들 지역에 핵무기와 군대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국제협정을 러시아와 맺지도 않으면서 그곳으로 나토를 확대하는 것은 ‘나쁜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와함께 한 국가와 인민을 모욕하면서 그것이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화두는 진보세력의 공정성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광우병이, 박근혜 정부에 세월호가 있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정권연장을 가로막는 것은 역시 내로남불이다. 실력으로 보나 콘텐츠로 보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도 이상하게도 어려운 선거를 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가 이를 잘 알고 재차 삼차 사과를 하고 있는 이유이다. 보수를 단순화시켜보자면 역사 속에서 우연히 확보한 부를 지키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진보는 그런 역사가 만들어낸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운동’을 해온 집단이고 공정성은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런데 왜 진보진영에서 특혜 문제가 더 두드러져 보일까? 첫번째 이유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 및 법체제에서 많은 특혜가 법제화되어 있어 보수 쪽이 더 운동을..
서울 5511번 시내버스가 상도동의 고갯길을 넘어섰을 때였다. 정지신호로 버스가 멈춰 섰다. 의도하지 않게 바깥 풍경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차창 밖의 벽에는 ‘선거벽보’가 부착되어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한 분이 벽보 앞을 지나다가 유독 두 군데에서 멈춰 선 장면이 눈에 띄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분이 멈춰 선 포스터는 ‘바꾸고 싶다면 사회주의’라고 쓰인 것과 ‘자유 우파 구국 대통령’이라 적힌 것이었다. 순간 ‘아, 우리 사회도 정치적 열망이 폭넓게 표현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작게 감동했다. 1987년 대선 시기의 구호 중 하나가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였다. 민중의 시대로라니, 너무 좋아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 후로도 많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고, 이번이 일곱 번째다. ..
영화 는 비교적 드문 정치영화이자 ‘현대사 영화’ 중 수작으로 보인다. 영화는 상충하는 두 가지 명제, 즉 정치란 목적합리성에 입각해서 도덕주의 따위를 넘어 ‘적’에게 승리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생각과, 정치란 대의와 원칙에 철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정치의 원래 목적이기에 과정과 수단도 선해야 진실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입장 사이의 대립을 서사의 축으로 삼았다. 양자를 너무 도식적이지 않게 그려 서사의 완성도를 높였지만, 영화는 김대중이라는 정치가를 대의와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하면서 당시 민중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큰 인물로 그렸다. 또한 1971년 대선 과정을 재현하며 박정희와 김영삼도 흥미롭게 등장시켜 한국 민주주의사의 한 시대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절로 지금의 대선판과 후보들이 떠오르지 않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한다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갈수록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를 닮아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를 이야기한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이명박식 실용주의와 철학 부재를 덮으려는 윤석열식 실용주의가 같을 수는 없으나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윤 후보는 선거의 가장 큰 대의가 정권교체라고 했는데, 이씨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낙인찍으면서 2007년 대선을 치렀다. ‘이핵관’으로 통했던 이명박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그랬듯 윤 후보 측근 세력은 ‘윤핵관’으로 호가호위 논란을 일으켰다. 이씨는 재임 내내 법치주의를 외쳤는데, 공교롭게도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 역시 법치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두 사..
한국에서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블라디미르 푸틴의 호전성이나 팽창주의 탓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인 듯하다. 대체로 러시아의 선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인 듯하다. 반면 일부 지식인들의 경우 문제의 원인을 NATO(나토)의 동진 확장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나토는 사실상의 군사동맹이기 때문에 구소련 국가의 일부분이었던 체제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사실상 독립국가연합(CIS)으로 재결집해 온 러시아로서는 구소련 지역 내에 미국의 군사적 거점이 확장되는 것을 수용하게 되므로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해법은 두 가지 중의 하나로 압축된다.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멤버십을 갖는 것,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를 오스트리아화나 조금은 굴욕적 용어인 핀란드화 같은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