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 선거가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지방(非地方) 선거였다. 대선이 끝나고 돌아서서 치른 선거라 그 연장전이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지방 의제가 뒷전으로 밀려날지는 몰랐다. 한쪽에서는 민심의 향방이 아니라 윤심의 소재가 관전 포인트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선에 나갔던 후보의 흥행몰이가 제대로 먹히느냐가 전략의 핵심이었다. 지방선거 기간에 ‘지방자치’의 현실에 대해 어떤 고민도 들을 수 없었으며 지연되고 있는 ‘지방시대’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그림도 본 적이 없었다. 여의도 정치가 지방정치를 포획하여 풀뿌리민주주의가 왜곡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요즈음 국회가 하나의 당이 과반을 차지해 독주한다고 불평하는 모양인데 영남과 호남의 지방정치 독점은 거기에 ..
“한국 대통령은 젠더 불평등에 대한 압박 질문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미 정상회담 때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 대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이다. 관련 동영상을 되풀이해서 보니, 불안해 보인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사실 불편해 보이기는 했다. 기자는 대선 기간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등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를 지적했다.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내각 인선에선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의 답변은 딱 한마디였다. 아직 여성들이 장관이 될 만한 자리(그 직전의 위치)까지 올라오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예외적인 몇몇 경우에만 해당하는 엉터리 ..
그제 복지시민단체들이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을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예전 두 정부가 출범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새 정부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2012년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복지국가에 소극적이었던 후보가 당선되었어도 복지단체들의 의욕은 강했다. 무상급식 논쟁 이후 보편복지 담론이 부상하고 있었고 박근혜 당선인 역시 ‘한국형 복지국가’를 제시하며 복지 확대를 약속했다.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했다며 오랜 기간 낙담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의지를 불태웠다. 박근혜 정부 내내 복지단체들은 복지 활동을 힘있게 펼쳤다. 문재인 정부를 맞아서는 정말 새 세상을 꿈꾸었다. 대통령까지 탄핵하며 무혈의 시민혁명을 이룬 자부심이 컸다. 문재인 대통령..
갑작스럽다. 이명박 정부가 떠오를 만큼이다. 윤석열 정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 일본에서 출범시킨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전격 참여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끼리 먼저 긴밀하게 반도체 공급망과 같은 유대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가치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미국은 IPEF를 21세기 경제 협정 또는 새 경제협정 모델이라고 부른다. 디지털 경제, 공급망 안정, 청정에너지 기반 시설과 기후 위기를 위한 에너지 전환 등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투명성, 공정 과세, 그리고 부패문제 대응도 이 IPEF의 주요 내용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 과제는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환경개발회의 등에..
차별할 권리는 자유의 핵심이다. 배우자나 섹스 상대를 결정할 때만큼 우리가 차별적인 경우가 있을까? 성별, 나이, 직업, 외모, 성격, 신체조건, 혼인여부, 가족관계, 사회적 지위, 종교 등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결정을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모든 이유들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섹스와 결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의 자발적인 어떤 선택도 존중된다. 차별할 자유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이성을 배제하고 동성과 사랑과 결혼을 한다고 해서 해고해서는 안 된다. 개신교 신자라고 해서 숙박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법안은 채용, 용역, 교육, 행정 등에서 ‘성별, 나이, 직업, 외모, 성격, 신체조건, 혼인여부, 가..
정치의 언어는 희망을 약속하고, 종교의 언어는 구원을 계시한다. 정치는 시간을 단절시키면서 ‘새것’ ‘새 희망’을 말한다. ‘좋은 옛것’과 ‘나쁜 새것’은 두 갈래의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 1948년 7월24일의 일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취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대한민국도 극적으로 건국이 이뤄졌다.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을 “새로운 백성”으로 호명했다. ‘백성’은 일반 국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평민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오늘날 백성은 낯선 위계의 언어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에 등장하는 ‘나’와 ‘본인’도 마찬가지다. 권위주의 정부는 대통령과 국가를 동일시했고, 통치권자로서의 절대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한동훈 법무장관 딸 문제 덕분에 깊고 넓은 교육 불평등과 세밀하게 등급 매겨진 한국인 삶의 계급적 양식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작용하는 구조화된 ‘외부’의 힘은 ‘글로벌’이며 미국이다. 한국 최상층계급은 완전히 글로벌화된 경제와 문화정치의 꼭대기에서, ‘미국’과 ‘영어’를 마음껏 동원하여 지위를 얻고 기득권을 세습한다. 그 자녀들은 이중국적 취득, 영어 유치원, 국제학교, 조기유학, 미국 최상위 랭킹 대학 진학 등의 과정을 밟는다. 아이비리그의 학부, 로스쿨 혹은 메디컬스쿨 등이 단기 목표일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 드는 돈과 이용되는 사회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보통사람들은 짐작조차 어렵다. 그 바로 아래의 상층계급은 최상층을 흉내내거나 자식을 그렇게 만들려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
대북정책은 정부 브랜드로 전임 정부를 차별화하지 않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이어달리기라는 신임 통일부 장관의 청문회 발언이 흥미롭다.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한주적론을 공약으로 내걸어서 대북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탓이다. 권영세 장관의 이런 입장이 대통령의 의사인지 분명하지도 않고 남북관계를 둘러싼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역시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언술을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왕에 장관이 된 그에 대한 기대를 굳이 냉소로 덧칠할 이유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어달리기론이 실행되기 위한 몇 가지 전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이어달리겠다는 의지를 전달할 신호보내기 즉 시그널링의 대상 청중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선거 기간 윤석열 후보가 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