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빙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권교체기의 낯익은 풍경이 연일 이어진다. 말의 성찬과는 달리 행동의 냉혹함이 현실을 지배한다. 윤석열 당선인의 일성이었던 ‘국민’통합은 ‘그들만’의 통합임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결단의 고통을 감내한 주권자 국민의 정신적 위무를 위해서라도 지켜져야 할 새 정부 출범의 허니문을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을 무너뜨린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제왕의 방식으로 대통령집무실 이전을 속전속결로 강행한다. 식사정치는 요란하지만 성가신 언론매체는 출입불가로 일관한다. 공약임을 내세워 여론에 역행하는 정부조직개편은 요지부동이다. 법치와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더니 스스로 기소한 국정농단 범죄자를 찾아 사죄하고 명예회복을 약속한다. 능력주의랍시고 최..
지금쯤이면 사라졌으리라 믿고 싶었던 코로나19가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세 번째 봄이 학교에 찾아왔다. 그런데 그 양상은 매우 다르다.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처음 맞는 봄이다. 코로나19 첫해 봄은 등교를 하지 못했다. 그해 2월부터 대학에서 예정된 졸업식의 행사가 취소되었고, 이후 입학식과 졸업식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개강은 했지만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고 등교수업은 거의 불가능했다. 학교는 4월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했고, 부분 등교 후 방학을 맞았다. 결과적으로 등교 일수와 확진자 수가 모두 적은 국가로 기록되었다. 돌이켜보면 아쉽지만, 모두가 처음 겪는 두려움 앞에서 방역체계 준수와 안전권 확보가 중요했던 터라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코로나19 두 번째 봄에도 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일 한·미정책협의대표단을 워싱턴에 파견했다. 대표단은 윤 당선인의 친서를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워싱턴 조야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차기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대북정책, 글로벌 전략 파트너십 등에 대해 설명하고 협력방안을 협의했다. 대표단은 한·미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와 양국 외교·국방장관회의(‘2+2’)의 연내 개최 및 연례 정례화를 요청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지력 강화와 ‘전략자산’의 시의적절한 전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특히 대표단이 방미 중이던 지난 7일 윤 당선인은 역대 당선인들이 한·미연합사령부를 먼저 방문했던 관례를 깨고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협력 파트너가 될 바이든 정부의 대북..
20대 대통령 취임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용산 이전의 적절성은 더 이상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용산 시대가 무엇을 담아낼 것이냐가 중요해졌다. 공약을 실현하는 과정과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통해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공약은 권력 위임을 조건으로 국민과 맺는 계약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계약은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 계약상의 갑이 함부로 계약을 파기하면 갑질이다. 이론적으로 공약의 갑은 주권자이지만, 위임된 권력이 여당과 당선인에 속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갑은 여당과 당선인이다. 그러나 을이 원한다면 그 계약은 수정되거나 파기되어야 한다. 상대적 약자인 을이 계약 파기를 원한다는 것은 계약을 유지함..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런데 모든 대통령은 ‘국민통합’에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대자나 비판자를 전향·투항케 하여 동일집단화하는 것을 국민통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국민통합에 참여하는 일은 변절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께름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럴진대 어떤 국민통합이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국민통합은 국민이라는 이름의 단일집단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상생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민’은 한 덩어리의 사람들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사회정치적 실체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리고 서로 인정하고 다름을 관용하며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공화주의 국가의 국민이다..
‘정의와 공정’ 그리고 ‘청년과 미래’를 내세웠던 윤석열 당선인이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씨를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그런데 한 후보자 지명이 윤 당선인이 표방한 능력과 공정이라는 인선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고, 오히려 여소야대 국회에서 인준을 위한 정략적 행위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덕수 후보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활동하며 거액의 고문료를 받았고,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투자자 국가 간 소송)에 증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인준 청문회에서 한 후보자가 김앤장의 고문으로 활동한 내역과 ISDS에서 실제 증언 여부와 내용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론스타 논란을 접하면서 2007년에 원더걸스가 부른 ‘아이러니..
스웨덴의 웁살라대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국제경제 수업시간이었다. 유엔에 근무하며 인도에 파견을 다녀온 졸업생이 안드라프라데시 지역의 농민 자살 추이에 대한 발표를 했다. 과거 해당 지역에 국제자본이 들어가 쌀농사를 면화로 바꾸는 가운데 농민 다수가 대규모 대출을 받게 되었다. 흉작이 이어지면서 대출을 갚지 못해 이자가 붇자 채무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농민의 수가 매해 늘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총리가 방문해 부채를 부분 탕감해 주고 가장이 자살한 가정에는 추가로 위로금을 지급했다. 이후 자살하는 농부의 수는 더 늘었다. 자신이 떠나면 남은 가족이 위로금이나마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이가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교수는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팀별로 논의해 답을..
군대는 불편한 것투성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당장 의식주부터 불편하다. 언제나 제복을 입어야 한다. 쉴 때도 똑같은 운동복을 입어야 한다. 머리카락 길이도 스타일도 통제한다. 늘 ‘용모단정’을 요구한다. 여럿이 함께 자는 것도 불편하다. 입고 자는 거야 단체생활이 으레 그렇겠니 싶을 수도 있지만, 먹는 것은 좀체 적응이 어렵다. 세끼를 모두 부대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어야 한다. 메뉴를 선택할 수도 없고, 먹고 싶을 때를 고를 수도 없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없다.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없다. PX에서 컵라면이나 냉동식품 등 간편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진짜 곤혹스러운 건 밥을 짓는 일이다. 군인들이 먹는 밥은 군인들이 만든다. 그런 법이 있는 것도,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