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척결 및 공정 확립’, 최근 모 월간지 여론조사 결과 ‘차기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가장 높은 답을 받은 항목이다. 그 뒤로 사회 양극화 해소 및 균형발전, 국민 통합 및 정치개혁, 경제 성장 및 일자리 확대, 부동산 가격 안정, 저출산 고령화 대책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명 조국 사태를 통한 공정 열망과 함께 LH 사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뿐만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자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 가족과 관련된 갑질을 포함한 부패 논란이 선거 내내 주요 이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 여망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당선인의 정책 공약집을 찾아보면 100개가 넘는 세부과제 중에서 ‘부패 척결 및 공정 확립’과 관련된 것은 넓게 보더라도 ‘부모찬스 없는 공정한 대입제도 마련’ ‘공정한..
론스타는 2012년 1월, 5조원에 가까운 이익을 보고 한국을 떠났다. 그해 겨울, 론스타는 또 5조원이 넘는 돈을 배상하라며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하였다. 10년을 끈 론스타 중재 판결이 임박했다. 국민은 대통령이 세 번 바뀌는 오랜 기간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론스타 사건에서 한국이 완전 승소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마땅한 사건이다. 애초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없었다. 금융기관을 인수할 수 있는 금융자본이 아니었다. 나는 2006년에 낸 에서 론스타 사건과 같은 국제중재 회부제 자체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투자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대상 나라의 정부정책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권한까지 갖는 것은 공공정책의 자율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외국 자본도 한국의 행정..
지난 24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공개한 국토교통부의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가덕도신공항 사업의 비용편익비율(B/C)이 고작 0.41~0.58이라고 한다. 보고서에서 밝힌 가덕도신공항 사업 예상 사업비는 최대 13조5100억원으로 당초 부산시가 제시한 7조5000억원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인데, B/C를 0.5로 잡으면 사업비 13조원을 들여 얻는 편익이 6조5000억원, 즉 국민혈세 6조5000억원을 낭비하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B/C 1.0을 넘겨야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 국회의원들 사비를 모아서 신공항을 지을 것도 아니고, 손해가 6조5000억원이면 국회의원 1명당 나랏돈 243억4000만원을 허비하는 셈이다. 2021년 2월26일 국회 ..
e메일을 받은 날은 2018년 8월30일이었다. 다가오는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던 때였다.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전문연구원으로부터 온 것이었기에 당황했다. 2학기에 담당하게 된 4학년 전공수업에 들어올 한 학생에 대한 안내 사항이 담겨 있었다. 주요 내용은 ‘하희은(가명) 학생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전문속기사를 배치했다. 속기사가 실시간으로 강의내용을 타이핑한다. 속기록은 해당 학생에게 학습을 위한 목적으로 제공되며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다. 강의실의 지정 좌석에서 들으며, 학생의 발음이 어색할 수 있으니 세심한 이해를 부탁한다’였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첫 만남의 느낌은 ‘이번 학기 정말 힘들겠다’였다. 모든 강의 내용이 기록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위축되었다..
미국 검찰은 당연히 수사개시권, 보완수사권,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당장 유색인종 및 여성 검사장들을 중심으로 과거 경찰의 총기남용에 의한 사망사건들을 직접 재수사하겠다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경찰이 자신의 동료들을 수사하지 않을 테니 검찰이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사개시권을 자주 행사하지는 않는다. 보완수사권도 경찰수사가 너무 미진하면 직접 행사를 할 수 있지만 거의 행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수사지휘권은 같은 미드를 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다. 힘들게 잡아온 피의자를 석방하라거나 어렵게 찾은 증거를 무효라며 악인들을 잡아넣기 위해 안달난 경찰을 통제한다. 하지만 이 수사지휘권도 상명하달식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진다. 검찰이 게이트키핑 역..
자살 문제에 관한 책을 두 권 쓰며 ‘열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도 치사한 세상의 불평등이 예외 없이 관철된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씁쓸했다. 좋은 대학을 다니다 목숨을 잃은 ‘열사’들은 그의 대학 동문들이 출세한 ‘민주화’된 세상에서 크게 추앙받고 ‘영원한 청년’으로 잘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아마도 그 ‘열사’가 노동자이거나 ‘학벌’이 없으면 더 그렇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삶과 죽음을 살았어도 말이다. 그렇게 잊혀진 이름은 너무 많다. 그런데 사실 부끄럽게도, 나도 얼마 전에 나온 라는 책을 보기 전까지 ‘장애인 해방 열사’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은 ..
당선인의 어퍼컷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효과가 꽤 괜찮아 보였던지 상대 후보도 발차기로 화답했다. 선거 기간에는 그런 보디랭귀지가 허용된다. 말과 글로만 하는 유세가 아니라 모든 정보를 통해 자기를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고, 유권자들 또한 표정 하나하나로부터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직접 정치력을 지니고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의 시간이 끝나면 당선인은 두 나라가 아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과 글은 이제 선전과 선동이 아니라 과학과 책임의 영역으로 박제가 되어 국격이 된다. 유세장에서는 눈앞의 군중에 매료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보디랭귀지가 지지자의 환호를 가져오는 그 순간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고 환호하는 군중 그들만이 진정한 애국자로 보이..
4월15일, 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 신청 추진을 의결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다른 FTA들과 비교하여 개방 수위와 강도에서 높은 강제력을 가진 조약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자동차·부품·철강 등 수출 주력 분야에는 유리하나 농축수산업에서는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와 재계의 논리는 과거와 똑같다. 농업 부문 피해보다 다른 산업의 이익이 크니 작은 시장 내주고 큰 시장을 얻겠다는 것이다. 생명과 이윤을 같은 무게로 저울질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손익 계산법은 이제 시장에서조차 적합하지 않다. 지금은 세계화의 결과를 알 수 없었던 1990년대가 아니다. 자유화된 세계시장의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