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한 정치인의 부고가 잔잔한 울림을 만들고 있다. 허대만 더불어민주당 전 경북도당 위원장의 얘기다. 어제(24일) 아침 포항종합운동장에서 장례식이 있었다. 향년 54세, 한창 일할 나이, 암 투병 끝에 부인과 3남 1녀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타계 소식이 애달팠던 것은 그러한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한 그의 정치 여정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1992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그는 지방자치가 부활하자 곧장 고향 포항으로 달려갔다.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고 한다. 그 길로 1995년 제1대 포항시의원으로 당선, 26세 최연소 지방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인의 성공 여부가 배지를 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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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범죄가 증가하고, 한국사회의 부와 성장을 상징하는 강남은 물에 잠기고, 물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오르고 금융시장은 불안정하다. 우리를 에워싼 국제 환경은 더욱 녹록지 않다. 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팬데믹, 중국과 미국의 충돌은 어느 때보다 국가의 정치력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정권이 새롭게 바뀌었음에도 ‘새로움’을 느끼기는커녕 짜증이 날 정도로 구태의연하다면, 우리 정치가 민주화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늙어 ‘장로(長老)정치’(gerontocracy)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로정치란 글자 그대로 대부분의 성인 인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지도자가 통치하는 과두정치의 한 형태이다. 물론 ‘장로’는 단순히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
‘야당복.’ 문재인 정부가, 아니 국민의힘이 한국 정치에 기여한 새 용어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할 때마다 국민의힘이 더 죽을 쒀서 살려줬기 때문이다. 나는 2020년 초에 쓴 ‘야당복? 야당독!’이란 칼럼에서 이 같은 국민의힘의 죽 쑤기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사실은 야당복이 아니라 ‘야당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나의 우려대로 야당복에 안주한 민주당은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달려 나와 성공시킨 촛불항쟁을 5년 동안 다 말아먹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주는 역사적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시중에는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하나님’ 수준이 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죽은 사람(나사로)을 다시 살린 것은 하..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한 한반도를 강습한 폭우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우리에게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던져주었다. 특히 폭우에 대처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공적 담론은 대체로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과 언행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나는 해당 사안이 단순히 순간적 판단 오류나 ‘홍보’의 실패, 혹은 스타일과 언행의 문제라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비판은 매우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통령은 매우 일관된 ‘세계관’ 내에서 움직였고,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일 따름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을 ..
77주년을 맞는 광복절 기념식. 행사는 엉성했다. 행사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이 문제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번째 맞는 행사였지만, 국민이 함께 공감할 만한 대목은 별로 없었다. 성공한 행사가 되려면 지켜보는 이들과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그저 따분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행사 장소를 왜 용산 대통령실 앞마당으로 골랐는지 모르겠다. 설마 대통령의 편의 때문은 아니겠지만, 독립기념관, 서대문형무소 터 등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숱한 장소를 굳이 건너뛴 까닭을 모르겠다. 뜨악했던 건 행사 도중에 불쑥 튀어나온 이종찬씨의 ‘기념 말씀’이었다. 광복회장의 축사와 대통령의 경축사 중간이었다. 육사 16기, 전두환 신군부의 핵심으로 민정당에서 맹활약했고, 여러 부침 끝에 김대중 정부에서 ..
윤석열 정부 100일이 어수선하다. 대선에서 호언했던 연금개혁도 그렇다. ‘대통령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던 공약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애초 정부가 연금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까지 든다. 대신 국회가 나서는 모양새이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하여 내년 4월까지 여야합의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상황이 이러니 행정부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공약대로였다면, 대통령직속위원회가 재정계산을 토대로 개혁안을 준비하면 무난했는데, 입법기관이 먼저 합의안을 만드는 ‘거꾸로 일정’이다. 어차피 개혁안은 입법부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있다. 연금개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바로 연금개혁 논점별 팩트 정리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금개혁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말했다. 독립운동은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독립운동은 분단된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말했다. 시대적 사명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이 자유에 대한 위협에 함께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시대적 사명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이익에 희생되지 않을 분단 극복과 평화이다. 마침내 대통령은 말했다. 일본은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칠 이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일본은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한국을 희생시킬 수 있는 강대국의 하나이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외교 전략을 들을 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경축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일본의 핵심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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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있었던 무참한 폭우사태로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강남땅을 밟은 적이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수해의 정도를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보도만 보아도 엄청난 피해가 있다는 것을 곧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페친은 이 사태와는 관련이 별로 없어 보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감사예배, 나라의 번영과 국민통합을 위해 기도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지난 기사와 사진을 올렸다. 이번 폭우사태와 윤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보수적 기독교와 함께 부촌인 강남지역을 머릿속에 두고 올렸던 것 같다. 기독교인이 아니기에 이 예배를 주관한 원로목사들의 면면을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기사의 내용은 모두가 다 내로라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원로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의 설교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