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정치사를 두 시기로 나누라면 언제를 나눠야 할까? 당연히 1987년이다. 그 이전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시대고, 그 이후는 민주정부시대다. 1987년 이후를 두 시기로 나눈다면 언제를 나눠야 할까? 한국 정치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일어난 1998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2003년이라고 생각한다. 2002년까지가 민주화 1기라면 그 이후는 민주화 2기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민주화에 관한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그것은 ‘대통령의 탈권위주의화’ ‘탈사당정치’이다. 그 이전 시기는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에 사당정치가 기승을 부렸다. 한마디로 그 이전은 지역주의와 함께 사당정치가 지배했던 ‘3김정치’시대였다. 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린다. 달러가 기축통화인 데다, 연준은 발권력까지 갖고 있으니 영향력이 절대적이어서 나온 말이다. 요즘 이 표현이 별로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26일 세계 중앙은행 책임자들이 모이는 잭슨홀 미팅에서 강력한 긴축(기준금리 인상)을 천명한 뒤 1주일 동안 전 세계적으로 5조달러(약 7000조원) 규모의 주식 가치가 증발했다. 연준발 긴축은 한국에서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청년층에 이자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몇 가지 사례일 뿐 언제 어떤 식으로 강달러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경제를 뒤흔들 것인지 예측불허다. 연준이 성장을 희생하고라도 물가부터 잡으려는 건 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주말 대구에 있는 ‘김광석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영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 담대하기까지 하다. 그는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버린 것 같다. 그간 국민의힘 내부 갈등의 쟁점은 ‘당대표의 품행이 문제인가, 아니면 당 주류의 독선이 문제인가?’라는 것이었다. 이준석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와 같은 그간의 쟁론을 다른 국면으로 바꾸려는 것 같았다. 그는 지루해지고 점점 더 민망해지고 있는 국민의힘 내부 권력투쟁을 ‘가치’투쟁으로 끌어올려 윤석열 대통령과 맞서고자 한다. 그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를 비롯한 각종 연설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자유라는 가치를 환기하며 그것을 싸움의 고리로 걸고 나섰다. 그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라고 못을 박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던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슬그머니 공론화하고, 전광석화처럼 결정했을 때 미심쩍었다. 광화문은 떡밥이었을 뿐, 애초부터 용산을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닐까. 문재인 정부가 경호와 교통 등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광화문 이전을 포기했다는 것을 윤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을 터였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국방부 이전에 따른 안보공백 우려, 예산 편성 등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음에도 서둘렀다. 기왕 이전을 결정했다면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져야 마땅한데도, 기어이 임기 첫날을 용산에서 맞았다. ‘나쁜 땅’ 청와대를 벗어나 ‘명당’ 용산에서 임기를 시작하겠다는 풍수지리적 고려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윤 대통령 부부가 천공·건진 등 무속인들과 가깝다는 ..
1997년 10월 중순, 홍사덕 정무1장관이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을 손에 쥐고 정부종합청사 10층 총리실 기자실로 들어섰다. 홍 장관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대뜸, “정치권의 일을 검찰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입을 열었다. 1주일 전, 강삼재 신한국당 의원이 김대중(DJ) 국민회의 후보의 ‘670억 비자금’설을 제기한 데 이어 관련 계좌까지 공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김영삼(YS) 정권의 정무장관이 야당 대선 후보의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니! 홍 장관은 며칠 뒤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홍 장관은 한 공청회에 참석해 “여야가 비자금 문제에 정직하게 접근함으로써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는 사태를 막고, 선거를 통해 국민이 심판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자금 폭로를 중단하고 정책 대결을 ..
![](http://i1.daumcdn.net/thumb/C148x148/?fname=https://blog.kakaocdn.net/dn/blr4Rq/btrLx0UF55I/M0ukiiQ31U5ebA1PbNBRfk/img.jpg)
한국갤럽이 지난 2일 공개한 9월 첫 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7%였다. 전주(8월 4주)와 같았지만, 국정수행 부정평가 이유 중에는 변화가 있었다. 8월 1~4주 조사에서 모두 1%에 머물렀던 ‘김건희 여사 행보’가 3%로 오른 것이다. 시민이 김 여사에 대해 뜨악한 지점은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코바나컨텐츠 관련 업체가 관저 공사 계약을 따낸 문제, 누군가에겐 김 여사가 고가 장신구를 지인에게 빌린 일, 누군가에겐 김 여사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취임식에 초청된 사안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표기한 논문, 누군가에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일 것이다. 내겐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이었다. 지난달 19일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에 윤 ..
필자가 미국에 연구년으로 체류하던 2014년, 박진 외교부 장관이 당시 우드로 윌슨 센터에 리서치 펠로로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 박 장관의 소신 중의 하나가 돌고래론이었다. 이전까지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에 비교되곤 했지만, 이젠 더 이상 새우가 아니고 미·중 사이에서 당당한 외교를 주도하는 돌고래가 되었다는 담론이었다. 당시는 또한 외교부나 한국의 학자들이 통일대박론을 열심히 홍보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대박’ 즉 보난자(Bonanza)를 역설하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박 장관은 보난자라는 표현보다는 굳이 ‘위대한 자산’(Great Fortune)이라는 번역을 고집했다. 외교란 격조 있는 언어를 통해 국격을 높여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통일이라는 과업을 노다지를 연상케 하는 보난자라고 표현하는..
‘달동네’는 1960~1970년대 가난의 대명사였다. 높은 곳에 동네가 자리잡고 있어 달이 잘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업화에 따른 대규모 이농으로 도시에 몰려든 주민들이 산비탈이나 고지대에 모여 다닥다닥 붙어살던 곳이었다. 달동네는 싼값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터전이자 생존 공동체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쓸려들어온 도시생활의 각박함 속에서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줄 이웃의 따뜻한 정도 있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들어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달동네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90년대 후반에는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까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달동네는 ‘반지하’와 ‘옥탑방’ ‘쪽방’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