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선출된 국가권력인 대통령이 공적 절차 없이 사적 인연으로 그 권력을 사적 개인들에게 위임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사적 소유에 맞서는 좌우파의 공적 분노가 다시금 시민혁명으로 폭발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이 이 시위의 일차 목표다.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목표를 이룬 그 다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그 다음에 약했다. 4·19혁명은 5·16쿠데타를 막지 못했고, 1987년의 민주혁명은 5년 단임의 직선 대통령제로 환원되었다. 대안적인 정치경제체제를 설계할 실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정치로 번역할 수 있는 능력도 현저히 부족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성이 실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확인..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엊그제 육군협회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8~10개월 안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포대의 한국 전개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에 오는 사드 포대는 괌 포대보다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한국의 정정불안에도 사드 배치 일정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의 혼란한 정치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려 한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미국은 사드 배치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문란 파문의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의 국방부에 앞서 구체적인 사드 배치 계획을 사실상 발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한국의 안보 주권을 무시하고, 국정에 영향력을..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 20만명이 지난 주말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촛불은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타올랐다. 촛불 시민 사이에는 교복 차림의 중·고교 학생들도 있었다.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기는커녕 불평등을 조장한 대통령에게 절망한 미래 세대까지 거리로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70대 노인들도 길 위에 섰다. 한 노인은 “박 대통령에게 줬던 한 표를 되돌려받으러 왔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야말로 지역과 나이, 이념을 넘어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박 대통령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이유는 하나다. 민주공화국의 복원이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 시스템의 일부일 뿐..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하기로 유명한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집어냈다. 바로 ‘자괴감’. 박 대통령이 두 번째 대국민사과를 하자마자 SNS는 들끓었다.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이 대목에서 많은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유린된 상황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자괴감’이란 단어를 그 원인 제공자가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러려고 국민 했나, 자괴감 들어” “이러려고 세금 냈나 자괴감 들어” 등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코미디언 김미화는 트위터에 “내가 이러려고 코미디언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라고, 가수 이승환은..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여자는 좀 멀었다고 봐요.” 가뜩이나 엽기적인 뉴스에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 있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은 묘하게 흘러갔다. “하루 종일 손님들도 난리예요. 이게 말이 되는 나라꼴이냐고. 정신 나간 여자 둘이서 나라를 말아먹은 거지. 애도 낳아보고 시집살이도 해보고 그래야 뭘 해도 제대로 하지…. 아무튼 여자는 안돼.” 여자라서 나라를 말아먹다니. 무슨 말도 안되는 시답잖은 소린가 싶었지만 그냥 넘겼다. 소위 ‘역대급’ 국정농단 사건에 ‘멘붕’이 된 사람이 어디 이 아저씨 하나뿐이겠나. 마을버스 안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이었으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텐데 여자라서 얕잡아 보인 거다”라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일단의 할머니들 이야기도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오..
‘박근혜 게이트’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초반에 대북접촉 누설이나 드레스덴 선언의 사전유출 등이 조금 부각됐고, 최근에 사드를 포함한 무기구매 개입에 대한 정황 기사가 나오지만 국내 정치농단에 비하면 외교에 끼친 악영향 논란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그런데 외교에 끼친 해악이 훨씬 심각하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사회과학자로서 박근혜 정부의 외교를 분석해오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았다. 대중에게는 내치는 못해도 외교는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최악이었다. 남북관계는 극단의 단절 상태며, 북의 핵무기 고도화에도 제재만 고집하며 전쟁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급변하는 동북아에서는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났다. 위안부 문제 합의, 전작권 반환 연기..
박근혜 대통령이 이틀 연속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지명하더니, 어제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자신의 비서실장에 앉히겠다고 발표했다. 인사권을 휘둘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고 분노한 민심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번 인사는 절차와 과정도 문제지만, 예상외 카드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그 저의가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은 이제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제 김병준 교수 지명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분노가 거세졌다.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여야, 국회와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사권을 휘두르는, 여전한 오기와 독선 때문이다. 야당과 인..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허탈감에 빠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교사는 제자가 주는 캔커피조차 부담스럽고 공무원들은 지인과의 일상적인 만남도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공적 영역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세계가 실재하고 있었음이 확인되면서 평범한 국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더욱 커져 간다. ‘한국은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면서 국가 이미지는 추락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한식 세계화 사업을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지원받은 미르재단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 최순실의 권력이 독버섯처럼 확장되었던 음습한 공간들은 ‘잘나가는’ 강남 사모님의 일상생활 세계, 그들의 권력 공간과 묘하게 겹친다. 언론에 등장하는 최순실의 주요 활동 무대는 강남 사모님의 마법이 시작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