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9일 열린 첫 정식 재판에서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등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런 공소장은 처음 봤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자문을 받아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를 두고도 “모든 직무행위를 뒤져 뭔가 법에 어긋나는 게 없는지 찾기 위한 수사였다.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고 비난했다. 함께 피고인석에 선 박병대 전 대법관도 “수사기록을 보니 많은 법관이 겁박당한 듯이 보였다”고 했다.형사재판의 피고인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장·대법관까지 지낸 법률가라면, 최소한 국가 형사사법 체계와 절차는 존중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
대법원이 사법농단 연루 법관 대다수에게 ‘셀프 면죄부’를 주자 비판이 거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9일 ‘양승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현직 법관 10명에 대해 추가로 징계를 청구했다. 검찰이 지난 3월 사법농단 수사를 마무리하며 비위 사실을 통보한 법관은 66명이었다. 대법원은 이들 중 절반은 징계시효(3년)가 지났고, 시효가 남은 법관 상당수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권순일 대법관조차 징계 대상에서 빠졌다. 그나마 징계가 청구된 10명 중 5명은 이미 기소된 상태이고, 3명은 지난해 6월 1차 징계 청구대상에 포함된 터다. 추가 조사를 이유로 늑장을 부리더니 결국 솜방망이 징계로 끝난 것이다.이대로라면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 기소된 초유의 사법농..
‘콜트콜텍’은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너무 익숙하고 안쓰럽고 분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사람에게는 튼튼한 벽과 지붕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콜트콜텍의 해고노동자들을 목격했던 곳은 죄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시내 한복판 한쪽에 자리 잡은, 너무나도 빈약해 보이는 천막이었다. 그리고 그 목격담은 마치 유령처럼 장소를 옮겨가며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야 그 지난한 투쟁이 콜트와 콜텍의 공동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년 만에 사측으로부터 ‘유감 표명’과 ‘합의금’을 받게 된 것은 1988년에 설립되고 통기타를 만들던 콜텍이고, 1973년에 설립되어 전자기타를 만들던 콜트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여전히 대법원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흔한 마피아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마피아들이 관리하는 지역에 새 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 식당 주인은 조직에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그는 마피아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자릿세를 뜯겨선 안된다고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고 다닌다. 조직에 이 식당 주인은 점점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결국 행동대장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시가를 피우고 있는 보스에게 다가가 식당 주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보스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알아서 해.” 행동대장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자리를 뜬다. 얼마 후 갑자기 자취를 감춘 식당 주인은 한 달쯤 뒤 인근의 강에서 시신으로 떠오른다. 다행히도 정의로운 검사가 식당 주인 사망 사건을 끈질기게 수사해 행동대장을 법정에 세운다. 검사는 행동대장이 ..
2008년 8월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보석을 허가한다. 10월에는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다. 관련 사건을 맡은 다른 법관들도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려보자고 한다. 다급해진 신영철 당시 법원장은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라”고 압박한다. 재판 개입이자 법관의 독립 훼손이다. 이듬해 2월 신 법원장이 대법관에 임명되자 이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한다. 법관 500여명이 각급 법원별로 판사회의를 열어 “재판권 침해”를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한다. 대법원장까지 나서 “대법관으로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신 대법관은 6년 임기를 ‘감내’한다. 법원을 떠난..
검찰이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전·현직을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직무와 관련한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됨으로써 8개월간 계속된 사법농단 수사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수사가 종결된다고 단죄까지 끝나는 건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 1인의 책임을 묻는다고 사법부 전체가 달라질 리도 없다. 시민의 기본권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사익과 맞바꾼 추악한 거래가 다시는 없도록 발본적 사법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11일 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하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모두 296쪽에 달하는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47개 범죄사실이 적시됐다. 일제 ..
한국에서는 자기 부족에 충실하고, 어떤 부족에 속하는지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한 부족끼리는 편의도 봐주고 서로 끌어줍니다. 계약도 쉽고 돈거래도 수월해집니다. 서로 참견과 잔소리도 주고받죠. 내부 위계질서도 중요합니다. 나이, 지위 등 권위가 귀할 수밖에요.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간 큰일입니다. 모난 놈이 되죠. ‘사회성’도 없는 놈이 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조심조심,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길들였습니다. 개인으로 온전히 서기가 불안하고 그렇게 서 있는 개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은 그 부작용일 겁니다. 게다가 판단마저 흐려지기 쉽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주장을 교환하기보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게 익숙하니까요. 우리 부족인지 저쪽인지, 우리 부족이면 내 밑인지 위인지 가늠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수감됐다. 사법부의 전직 수장이 구속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나, 당연한 귀결이다. 법원은 사법농단의 ‘주범’을 제 손으로 구치소에 보냄으로써 법의 엄중함을 보였다. ‘방탄 판사단’이라 비판받아온 법원도 헌정질서를 뒤흔든 사법농단의 중대성을 외면하기 어려웠으리라 본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정의 실현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진전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24일 영장을 발부하며 밝힌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혐의가 소명되며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이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것을 넘어 ‘직접 개입’한 증거들이 제출된 데 따른 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