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세간에 회자된 모든 의혹이 속속 근거 있는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권력서열에 관한 얘기, 연설문 수정 의혹, 십상시와 팔선녀 등등. 비서실장만 몰랐던 듯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못 박아 부정했지만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명명백백한 증거가 노출되기까지. 역사의 시계가 ‘잃어버린 몇 년’ 정도가 아니라 지금 우리를 봉건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 대통령은 최순실 관련 의혹 제기를 두고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로 깎아내리고, 국민과 언론의 근거 있는 의혹 제기를 비방과 유언비어, 괴담으로 매도하고 불법과 무질서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여느 피의자처럼 물증을 들이대니 시인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어제 황교안 총리 주재로 긴급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었지만 아무런 수습책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한 축인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 퇴진론이 분출하는 속에 친박근혜 세력까지 붕괴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물음에 탄핵 또는 하야해야 한다는 응답이 42.3%로 나와 내각·청와대 인적쇄신(21.5%)으로 마무리하자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90% 투표했던 대구·경북지역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 안보 등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대통령이 자초한 국정문란으로 식물정권이 되어버린 ..
온 나라가 최순실씨 이야기로 들끓고 있다. ‘아주 평범한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이었다(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언론 인터뷰)’는 최씨의 국정농단에 어린 학생들조차 부모에게 나라가 망하는 거 아니냐 묻고 대학가에선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외신들은 또 하나의 대통령 비서실이 한국을 흔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심각한 안보·경제위기 속에 흔들리는 국정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나라가 비상상황임에도 최씨 및 그와 결탁한 청와대 참모들이 보여주는 황당한 문제인식과 후안무치한 행태에 시민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독일로 도피한 최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을 신의로 한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대통령 연설문 개입이 민주 정치체제를 유린하는 심각한 행위임에도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
미국의 사회학자 랄프 키즈는 2004년 사회생활에서 진실과 신뢰가 실종되어 부정직과 기만이 판치는 점에 주목해 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진실 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들춰 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는 ‘진실 뒤의 정치’ 수법을 구사하며 오바마를 비판했다. 이것은 2016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행한 여러발언의 모델이 됐다. 그리고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탈파는 ‘진실 뒤의 정치’를 내걸어 일정한 지지를 얻었고 관철됐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짓이 남길 후과를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완벽한 거짓은 완벽해 보이는 진실 뒤에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진실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진실이..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황당하다고 해야 하나? 국회에 나와서 임기 내에 개헌을 주도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할 때만 하더라도 독선적인 표정이 역력했는데, 바로 이튿날 “국민들께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과한다면서도 빤한 거짓말을 몇 마디 하고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하는 것을 보고 그걸 진솔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국민’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늘 자기만 옳다는 독선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권력자가 저렇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낯선, 결코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생각할수록 기괴스럽다. 국정원의 개입 덕분이든 뭐든 박근혜 정부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정권의 막후에서 국..
백남기 농민의 부검영장 집행이 무산되었다. 처음부터 억지였다. 사건 현장과 병원에 도착한 직후 백남기 농민의 상태, 파기해서 없다던 경찰의 ‘상황속보’는 사인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말해준다. 그런데도 경찰은 ‘병사’로 왜곡된 사망진단서를 빌미로 끝내 부검영장을 받아냈다. SBS의 는 ‘수압 15바’의 물대포 위력이 어떤지 보여주었다. 수박이 깨지고, 나무판이 뚫리고, 철판이 휘어진다. 살인적이다. 사인은 더욱 명확해졌다. 불필요한 부검의 포기가 순리고 상식이다. 고인과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도 경찰은 끝까지 영장을 집행하겠다며 유족을 위협했다. “이미 승인을 했는데 시범적으로 해보자.” 지난 18일 환경부 장관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시범’은 ‘모범을 보인다..
최순실씨 딸의 승마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해 좌천됐던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이 3년 만에 결국 옷을 벗었다고 한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이 지난 7월 잇따라 명예퇴직했는데, 박 대통령이 “이 사람들이 아직도 (문체부에) 있어요?”라며 문제 삼은 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권력 사유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이번 사례야말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는 공무원을 대통령이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축출한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노 전 국장과 진 전 과장은 2013년 박 대통령 지인 최순실씨의 딸이 국가대표 선발 승마대회에서 2위로 밀려나자..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은 법조계 이너서클의 실체를 파헤친 역저다. 출간 시기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이다. 지금쯤 속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경준·홍만표 이야기가 아니다. 청와대 주변 부나방들 얘기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법학자인 손기병 교수(가명)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합니다. 실력주의, 업적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사람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체제입니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마이클 영에 따르면 메리토크라시는 지능지수와 노력에 의해 수월성(merit)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메리트를 오직 시험에 의해서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