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좁디좁은 골목에서 15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이 허망한 죽음을 맞은 다음날 아침. 국민의 안전을 총책임지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은 귀를 의심케 했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당장 머리 숙여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희생자들과 유족, 국민들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책임 회피였다. 정부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해 정쟁을 멈추자고 하면서 이번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는 지침을 내놓았다. 참사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기보다 자신들에게 미칠 후폭풍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부는 참사를 막지 못한 제도적 한계도 주장하고 나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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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전북 익산시의 심벌마크에 눈길이 갔다. 익산의 대표 문화재인 미륵사지 석탑을 이미지화해 디자인한 것이다. 그런데 심벌마크 속 미륵사지 석탑은 온전하지 않다. 탑의 한쪽 옥개석들이 아래로 기울어 무너지는 듯한 모습이다. 그 옥개석의 기울어진 선(線)을 익산의 ‘益’자와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이 심벌마크에서 무너져 내리는 듯한 옥개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미륵사지 석탑을 어떻게 기억해왔을까. 흔히 이 탑을 두고 7세기 백제의 석탑, 현존하는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석탑,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석탑으로 설명한다. 그렇다. 하지만 기억의 측면에서 보면, 더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탑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그 위태로운 부분이 콘크리트로 덧씌워져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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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덕수궁 돌담길 1971년, 2022년 덕수궁 돌담길.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연인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드라마 에서 우영우 변호사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던 남자에게 묻는다. 덕수궁 돌담길은 ‘걷다’보다는 ‘거닐다’가 어울리는 한가로운 산책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조선의 왕이 살았던 덕수궁의 돌담길은 고종에게는 한가로운 길이 아니었다. 덕수궁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살해된 후, 고종이 거처를 경복궁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덕수궁’으로 현판이 바뀌었다. 덕수궁 돌담은 러시아공사관의 담과 맞닿아 있었는데 여차하면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덕수궁 돌담부터 러시아공사관까지 거리는 120m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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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D조 올림피크 마르세유(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 어깨에 얼굴을 부딪쳐 치료받고 있다.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안면골절 수술을 받게 돼 2022 카타르 월드컵 출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마르세유/AP연합뉴스 손흥민은 22세 때 월드컵에 처음 나갔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그 대회에서 1골을 넣었다. 알제리를 상대한 조별리그 2차전 후반 5분에 자신의 월드컵 첫 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골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 한국이 0-3으로 지고 있던 터라 기뻐할 새가 없었다. 그 경기가 결국 2-4 패배로 끝나자 손흥민은 홀로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그때부터 그에게..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156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희생자 중 10~20대가 116명이다. 세월호 참사와 그것이 남겼던 과제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다짐과 노력은 어디로 갔을까. 말로 다 못할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삶을 누리지도 못한 너무 젊은 희생 앞에서 ‘명복을 빈다’고 말하지 못한다. 거대한 사태에는 복합적이고 다기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살아갈 이 체제 자체에 대해 다시 진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국뽕’ ‘선진국’ 같은 허위의식 따위는 버리고 말이다. 이태원에는 온갖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고 또 그만한 문화적 축적이 있다. 이주민 중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무..
이태원 참사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날을 떠올린다. 그사이 이태원과 서울광장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되었는데,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고’와 ‘사망자’는 책임을 미루고 지우는 단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뜻밖에 일어났기에 손쓸 수 없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사망자 또한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통해 죽음을 단순화시킨다. 그러나 사고가 아닌 참사다. 사망자가 아닌 희생자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다. 애통하다. 참담하다. 참사 당시, 국가는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국가는 왜 책임을 다하지 않았는가.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마련되기도 전, 대대적인 온라인 여론전이 이루어졌다. 핼러윈은 외국 전통이 상업적으로 변질돼 청춘의 방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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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중의 복은 오래 사는 복이라덩만. 모르겠어. 얼마나 살아야 오래 사는 건지는. 누군 자유 자유 해쌌던데, 제 명에 못 살고 ‘일찍 죽을 자유’ 말고는 없는 거 같은 요즘 세상이야. 한 유랑자 객승이 있었는데, 제자에게 다음 두 가지 가르침을 명심하라 했대. “1. 절대 길에서 죽지 말 것 2. 길에서 죽지 말라는 1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말 것.” 그렇다고 명줄이 하늘에 달렸는데, 제 뜻대로 될 것이냐만. 목사가 전기의자에 앉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소원이 뭐냐 물었어. 사형수는 “죽을 때 외로우니 제 손을 꽉 잡아주세요”. 순진한 목사가 “그 정도 소원이야 당연히 들어줄 수 있죠”. 그리곤 둘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얘기. 이승이나 저승이나 혼자는 외로워. 저번날 동네 어르신들이랑 같이 생선토막 놓고 조촐..
“어린아이를 혼내기 위해 경찰서에 데려 오시면 아이 마음에 상처만 남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묻고, 듣고, 답해주는 인내의 시간보다 더 나은 훈육은 없습니다.” 최근 어느 경찰서가 내걸어 화제가 된 현수막의 문구다. 자녀 또는 손주가 말썽을 피우는데 혼내도 말을 듣지 않으면 경찰서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나 조부모들이 종종 있어서 난감하다고 한다. 훈육의 어려움이 적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자녀의 수가 줄어들었는데 부모 노릇은 왜 이렇게 버거워졌을까?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부모 이외에 여러 어른과 관계를 맺으며 자라났다. 이모나 삼촌 등의 친척이 함께 살거나 자주 집을 찾아왔고, 동네에서는 이웃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늘 마주쳤다. 그들은 아이를 함께 보살피면서 잘못하면 꾸지람도 해주었고,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