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유가족은 물론 나라 전체가 슬픔에 젖었다. 천붕지통(天崩之痛)은 보통 제왕 또는 부모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국가적 재난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번 참사에서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뉴스 등을 통해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접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죽음과 맞닥뜨리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상사(喪事)를 당사자로서 직접 겪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 까닭인지 평소에 상사와 관련해 잘못 쓰는 말들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분향소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따위처럼 언론 보도에서도 자주 나오는 ‘조문’과 ‘문상’이 대표적 사례다. 조문(弔問)은 “남의 죽..
지난달 17일 경향신문 10면 상단에 “SPC 빵공장 노동자 끼임사 … 1주 전 비슷한 사고 있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같은 면 바로 아래에는 “기재부 ‘형사처벌’ 빼자 중대재해법 힘빼기 노골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모순의 현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SPC 계열사 SPL에서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산재 사망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18일 밀양 한국화이바에서 추락으로, 19일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지게차에 깔려, 20일 DL이앤씨 경기도 광주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추락으로, 21일 SGC이테크건설 경기도 안성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추락으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DL이앤씨의 사망사고는 올해만 벌써 4번째다. 일하다 죽고 죽고 또 죽는 참혹한 현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엄격히 적용하고 개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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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6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셰이크에서 개막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로고가 새겨진 벽 앞을 지나고 있다. 샤름 엘셰이크|신화연합뉴스 전쟁과 참사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기후정상회의가 개막했다. 6일 시작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라는 긴 이름의 이 회의 개최지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이다.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Parties)의 영문 앞글자와 올해 회의 차수를 따서 ‘COP27’로 부른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체결된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라 1995년 독일 베를린의 첫 총회(COP1) 이후 매년 대륙별로 돌아가며 연다. 1992년 리우 회의 이후 30년간의 기후외교가 없었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더 뜨거워졌을 것이다. 구속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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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 사고 열흘째인 4일 오후 구조 당국이 고립된 작업자 2명의 생존 신호를 확인하기 위한 천공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경북 봉화군의 아연 광산 매몰 사고다. 지난달 26일 일어났으니 열흘째를 맞았다. 4일 당국은 고립 광부 2명의 생존 확인 및 구조 진입로 확보 작업을 벌이고 있다. 광부들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 부근까지 구멍을 뚫는 데는 성공했다. 구멍에 내시경을 넣어 살펴보니 다행히 물이나 토사가 차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존 신호는 없고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사고 당시 갱도 내부에서는 총 7명이 레일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토사가 ..
e메일을 열어보는 손끝이 떨렸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를 위한 교내 합동 분향소 설치를 안내하오니, 애도의 마음을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읽으면서, ‘아’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참사의 희생자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중앙대 대학원생 3명이 희생되었다. 모두 유학생들이었다. 캠퍼스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를 예비 석사, 박사들이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반 뼘쯤 땅에서 떠 있는 상태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들, 유족들의 절규와 통곡,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들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그런 나 자신이 낯설었다. 숱한 죽음의 이야기들을 현장과 거리를 둔 채 읽으며 슬퍼했..
정부가 과로사회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30인 미만 기업의 추가연장근로제 시한을 2년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해외 건설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생겼을 때 주 64시간 이내까지 연장노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무한 노동으로의 질주를 보는 듯하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상황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모르겠다. 저임금, 영세, 고령, 간접고용, 여성 등 취약노동자에게 더 가혹한 상황이 될 것 같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오래된 이야기다. 병원 간호사, 판교 IT 개발자, 유통 판매직 노동자 4명 중 1명은 52시간 이상 일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크런치 모드와 같은 집중 업무는 IT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대표적 문제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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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서, 문득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혀 고개를 들고 창문을 바라보는 순간, 어떤 물체가 유리창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방금 읽다만 소설 속의 일일까,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2층 사무실 베란다로 얼른 내려갔다. 어이쿠, 내 짐작이 맞았다. 화분들 사이에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는 건 한 마리의 작은 새였다. 주먹만 한 새는 추락하는 동안에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한 듯했다. 다행히 그 와중에도 두 다리로 몸뚱이를 버티며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뇌진탕인가. 한쪽 발도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뭔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불길한 징조가 하나 더 있었다. 바닥에 닿아 있는 새의 꼬리였다. 새..
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린보트’ 두 번째 출항에 여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탔다. 보름 동안 1000명 이상이 한배를 타고 진행하는 연수 과정이라 아이랑 너무 오래 떨어지는 게 힘들어 함께 배에 올랐다. 어찌저찌 일을 보다 첫날 갑자기 아이를 선내에서 잃어버렸다. 8층짜리 건물 크기 크루즈선이라 정신이 아득했다. 나 역시 처음 타보는 배라서 잔뜩 긴장하며 문마다 열고 다녔는데, 어느 문을 하나 열고는 무릎이 꺾여 주저앉았다. 시퍼런 파도가 난간에 들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은 매우 무겁지만 만약에 아이가 이걸 열고 나갔을 생각이 들자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지나가는 우리 직원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나 좀 살려줘”라고 말했다. 여섯 살짜리 아이를 이 배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디서도 안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