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사건, 나는 2년여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암 수술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유·무형의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암 중에서는 가장 예후가 좋다고 이야기되지만 그럼에도 ‘암’자가 붙은 수술을 받고 나니 인생의 가치관이 전환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진도를 더 나가게 되었다. “인생 한방이다” “내일은 없다.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자” 등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작년 어느 날 당시 고등학생, 중학생이던 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아무리 조심해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어. 엄마가 갑자기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내 미리 유언을 남기마.”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향하여 사뭇 ..
“그 사람은 분명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일 거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화를 나누기에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단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심지어 자신을 공주나 왕자, 혹은 영웅의 자리에 위치시키며 떠들어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슬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공주(왕자)나 영웅을 들먹이는 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의 다른 표현이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향하여 너무 쉽게 말을 뱉어대곤 한다.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거야”라고. 그처럼 성장과정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는 핵심에는 ‘그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한 가족’에 대한 비난이 자리잡고 있다. ..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어휴, 남편은 그냥 월급날 담장 너머로 월급봉투만 던져주고 갔으면 좋겠어.” “1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가 되고, 3대가 덕을 쌓아야 격월부부가 된다는데 조상이 원망스럽다.” 이제 쉰 살이 가까워지니까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느라 관계가 소원했던 옛 친구들과의 만남이 최근들어 시작되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가 자식을 대학교 보낸 비법에서 시작해 남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수다 보따리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다들 결혼생활 15년차를 넘고, 이혼율이 가장 높은 40대 초반을 훌쩍 넘어서다 보니 자포자기 상태에서 남편과 살아가는, ‘괴담(怪談)’ 수준의 이야기들도 터져나온다. 물론 아내를 ‘공주마마’ 모시 듯하며 살아가는 남성들이 들으면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그..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의 일이다. 학력고사를 마치고 미팅에서 만난 한 남학생과 아주 짧은 기간 교유하였던 적이 있다. 좋았던 감정도 잠시, 결국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냈다. 연습장에 미리 편지 내용의 초고를 작성했다. 그리고 하얀색 편지지에 한자 한자 정성껏 연습장의 초고를 참고하여 편지를 써내려갔다. 무려 10장으로 마무리된 편지를 하얀색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 빨간색 우체통에 넣었다. 이별의 편지를 보낸 후 답장을 받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당시에는 기다림이란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시간’의 다른 말이었다. 최근 10여년 동안 사람들의 일상, 일터와 가족생활에 가장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요인 중의 하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다. 이제는 변화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성공한 남성의 뒤에는 아내가 있고, 성공한 여성의 뒤에는 나이든 여성 혹은 이주여성이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올해 하반기부터 손자녀를 기르는 할머니들에게 월 40만원씩 현금을 주는 ‘손주 돌보미 사업’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각계의 반응이 뜨겁다. 여성가족부의 발표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뒤로 하고, 실제로 맞벌이 가족에서 어린 자녀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것으로 보인다. 무한경쟁사회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 바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상을 관리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에서 면제되어야 직장에서의 헌신이 가능한 과로사회에서 성공한 남성들은 아내의 내조에 기대고 있고, 성공한 여성은 할머니 혹은 이주여성들의 돌봄..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주은아, 나 어떡하니. 우리 애 회장 됐어.” 업무 중 친구로부터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의 내용은 펑펑 울고 있는 이모티콘도 함께 나에게 전송되었다. 12년, 9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회장은커녕 줄반장 한 번도 못해본 아이 둘을 둔 나 같은 엄마에게 그런 문자내용은 일종의 ‘자랑질’에 해당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의 문자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고 만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또래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자녀를 둔 부모는 얼마나 행복하랴마는 그것조차 요즘에는 고민이 되는 부모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가족은 한부모 가족이 아닐까 싶다. 2010년 기준 전체 가족형태 중에서 한부모 가족은 9.2%나 된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사회는 ‘모든 학생들은 양부..
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아… 진짜… 알아요. 알아.”“쾅!(진도 2를 방불케 하는 강한 진동을 동반하며 강하게 문을 닫는 소리가 남)”“쾅!(또 한번의 여진을 동반하며 화장실 들어가는 소리)”(20분 동안 샤워기에서 씻는 행동은 전혀 없는 듯 물 쏟아지는 소리만 지속됨.)“(화장실 문을 격하게 두드리며) 물만 틀어놓고 자고 있는 거지! 이제 그만 나와.” 2년 전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등교전쟁을 치르던 몇 달간의 끔찍했던 상황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축구할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학교가 재미없으니까 시간 맞춰 등교하기 싫었으리라. 어쨌든 모자간에 최소한의 교양을 벗어던진 채 날선 명령과 거친 반응을 주고받았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바야흐로 입학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