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소녀가 물랑을 잡고 있다 한쪽에 나무 한쪽에 노을 발목에서 시작 소녀와 소녀 사이에서 소녀가 뛴다 물랑에 걸려 소녀가 사라진다 소녀와 나무가 물랑을 잡는다 무릎에서 가랑이로 올라가는 물랑 소녀와 나무 사이에서 소녀가 뛴다 물랑에 걸려 소녀가 사라진다 혼자 남은 소녀 나무와 노을이 물랑을 잡는다 허리에서 겨드랑이로 올라가는 물랑 소녀는 나무와 노을 사이에서 뛴다 까르르 물랑에 걸려 소녀가 신영배(1972~) 어릴 적에 고무줄을 발목에 걸어 넘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길게 늘인 고무줄을 노래에 맞춰서 넘는 아이의 밝은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이 잡고 있는 고무줄 위를 아이가 뛴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은 물의 잠잠한 수면 같고, 출렁출렁하는 물결 같고, 고요한 수평선 같다. 고무줄은 무릎 높이에서..
꽃 한 다발을 사서 친구와 나눴다 오래도록 꽃이 없던 화병이 놓인 방이 활짝 밝아졌다 너, 아직도 꽃을 사는구나 언니가 말했다 이 꽃 누가 줬어? 대접받고 사는 친구가 말했다 넌 살 만한가 보다 일이 꼬인 친구가 말했다 드물게 지갑을 열어 꽃을 사는 나는 앞다퉈 피운 욕망의 뿌리가 잘린 꽃송이들을 보고 있다 반 다발의 뿌리 없는 꽃들 초연하다 조은(1960~) 간만에 지갑을 열어 꽃을 한 다발 산 시인은 친구와 반을 나눠, 그 반 다발의 꽃을 빈 화병에 꽂는다. 그 순간 방이 마치 빛 속으로 열린 듯이 한껏 밝아진다. 반 다발의 꽃을 본 언니와 ‘대접받고 사는 친구’와 ‘일이 꼬인 친구’가 반 다발 꽃의 출처를 심드렁하게 묻는다. 그냥 얻는 경우 아니라면 뭐 하러 돈을 내서, 그 나이에 꽃을 다 사느냐고..
밭에서 돌아와 아궁이 앞에 앉은 외할머니가 무명 치마에 묻은 호미와 괭이질의 무늬를 불에 털어 넣어 한 끼 저녁을 차렸지 꺾어온 보릿대를 아궁이 불에 적당히 태워 검댕이 묻은 손으로 껍질 벗긴 보리알을 건네주셨지 옛날처럼 여름을 세웠던 입하(立夏)의 양식처럼 불에 그을린 말들을 비벼 말껍질을 벗겨버린다면 시는 어쩔라나 배고픈 날 잘 익어 푸르스름한 보리알은 오래 씹을수록 달았었는데 심재휘(1963~)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식의 알을 약한 불 위에 잠깐 얹어 익힌 후에 손으로 비벼대고, 또 후우 하고 불면 푸르스름한 알곡이 나왔는데, 출출할 때 그걸 먹는 맛과 재미가 쏠쏠했다. 이따금 드물게 콩을 구울 때에는 타닥타닥 콩이 튀는 소리가 불 속에서 나기도 했다. 시인이라면 “잘 익어 푸르스름한 보리알” 같은..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이대흠(1968~) 언젠가 전라남도 장흥에 가서 천관산을 바라본 적이 있다. 봉우리와 기암괴석이 솟아오른 모양새가 면류관(冕旒冠)과도 같다고 해서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했다. 어느 날 해질 녘에 시인은 천관산을 마주 대하고 있었으리라. 새들은 날아 돌아오고, 서쪽 하늘에는 별이 떴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의 붉은빛이 바위를 물들였다. 시인은 바위와 마주 앉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진 속 도시 풍경은 1860년 미국 보스턴이다. 이제 드론을 띄워 무인 항공촬영을 하고, 구글어스로 항공사진을 볼 수 있는 시대라 큰 감흥을 주진 못한다. 하지만 당시 매우 특별했던 장면을 위해 사진가는 작은 열기구에 몸을 의지한 채, 공중에서 위험천만하게 사진을 찍었다. 거대한 도시만큼 사진가들에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드물다. 실제로 사진의 역사는 도시의 발달과 변화와 관계가 깊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는 ‘오스망화’로 알려진 도시 재설계가 추진되면서 도로 구축과 함께 백화점, 아케이드 등이 건설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유리와 철근 등 새로운 건축 재료와 공법이 개발되면서 고층빌딩이 생겨났다. 이처럼 현대화된 도시와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은 매력적인 촬영 대상이 되었다. 세계대전 ..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이성복(1952~) 서해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진 갯벌에는 게들이 살고, 또 밀물이 올라오면 서해는 질퍽하고 평평한 갯벌에 몸을 뒤척인다. 서해가 내 마음에도 펼쳐져 있다. 늘 파도가 치는, 붉은 낙조가 아름다운, 까마득한 서해 바다가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곳 서해에 끝내 가지는 않겠노라..
파란 고산지대엔 벌써 가을 처연함에 반소매는 아무래도 짧은 것 같죠 또 언제 이렇게 되었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첫가을이 온 것은 아침 해도 스치면 떨어지는 이슬을 먹으려고 산마루에 떠올랐다 그 해 있는 곳은 시의 나라에선 천공 속의 바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파도와 흰 구름과 새벽과 함께 이렇게 파란 배추와 무는 처음 보았네 한 번쯤 팔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은 다시 거둘 수 없는 생의 높이 때문일지 어른보다 먼저 아이들 얼굴에 가을이 와 있었다 아이들이 늘 세상과 아버지를 걱정하죠 가을은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또 지나가고 생채기 하나 유리금 긋는 저 고산지대 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고형렬(1954~) 해발 높은 곳에 파란 무와 배추가 자라고 있다. 고산지대는 기온이..
집 나간 마음이 되돌아오면 식구들끼리 하얀 옷 해 입고 깨끗한 식당에 가서 외식이라도 해야지. 집에만 처박혀 있는 쓸쓸한 개를 앞세우고 그 널찍한 등짝을 쓸어주면서 가까운 유원지에 소풍이라도 가야지. 그러나 마음이 되돌아오면, 하늘은 또 알타이어족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 없는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노란빛 되어 내 방의 창문을 물들이고 나는 다시 뾰족하게 성을 내는 아이가 되겠지. 벼락이거나 장대비겠지. 마음이 되돌아오면 화를 내다가 우는 아이가 되겠지. 장이지(1976~) 레몬옐로는 어떤 빛깔일까.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오던 빛, 장대비가 내리던 날의 제 창문에 비친 빛, 이번에는 그것을 ‘레몬옐로’라고 불러봅니다”라고 썼다. 이 레몬옐로는 빛깔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