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어느 문학상 심사 때의 경험이다. 선배 격인 평론가 작가인 남성과 후배 격인 내가 심사위원이었다. 선배 작가가 당선작감이라고 추천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여성을 성적 소모품 취급하는 남성의 판타지였다. 더욱 나쁜 점은 여성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워 그녀가 자발적으로 성적 관음과 파괴를 갈구하는 듯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작품이 당선작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세 사람이 의견을 조율한 결과 그 작품이 당선되지는 않았다. 심사 후 식사 자리로 옮겼을 때 선배 작가는 미간을 찡그린 채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잠시 후 소주를 한 병 주문하더니 술을 마시며 기어이 불편한 속내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무조..
그 후배 여성은 아버지의 폭력 피해자였다. 그 아버지는 아내도, 다른 자식도 때리지 않았는데 유독 큰딸에게만 폭력을 행사했다. 무언가를 잘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집안에 회초리를 마련해두고 잘못하는 일이 발견될 때마다 아이에게 직접 매를 가져오게 했다. 맞는 게 공포스러웠던 아이가 장롱 뒤편으로 회초리를 숨기자 “이게 안 맞으려고 별 꾀를 다 쓴다”면서 딸의 눈앞에서 PVC 관을 잘라 새 회초리를 만들었다. 관 위에 청테이프를 감으면서 “이렇게 때리면 자국이 남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노출 심한 옷차림에, 18세기에서 온 듯 온순한 태도를 취했다. 그 온순함은 온 힘을 다해 아버지의 폭력에 적응한 결과였다. 대신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기쁜 소식을 들었다. 후배 여성이 딸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그 소식이 특별히 반가웠던 이유는 후배의 딸이 고등학교 입학 한 달 후부터 등교를 하지 않은 채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중증 우울증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딸은 중학교 때까지 리더십 강하고 활발한 학생이었다. 특별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는 딸이었고, 엄마는 딸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그녀는 가끔 딸이 공주처럼 굴면서 엄마를 시녀처럼 부려먹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평온한 가정이었다. 후배는 처음에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해했다. 아이는 종일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차에 실어 강제로 학교에 데려다주..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내용이 대체로 두 가지다.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는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엿본다. 상대의 말꼬리를 끊고 자기 이야기를 밀어넣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점잖은 목소리로 이웃과 사회를 걱정한다. 특정인을 화제로 올리고 그를 판단·평가하는 데 열을 올린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과 남의 얘기만 하는 사람이 만나면 한쪽은 상대방을 자기밖에 모르는 미숙아로 취급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방이 속내를 내놓지 않는 음흉한 사람이라 여긴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피하고자 특정 분야의 객관적 사실을 언급하면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어른들 말이라면 사사건건 반발심이 일던 사춘기에는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때가 되면 어른다운 일을 하면서 어른스럽게 말하고 성숙하게 행동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생물학적·법률적 성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알아차린 단 한 가지 사실은 “어른도 별게 아니구나”였다. 스무 살이 되어도 나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았고, 둘러보면 또래들 모두 미숙하고 비릿한 아이처럼 보였다. 혹시 우리가 ‘어른’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큰 환상을 부여해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 어른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집중적으로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으며 그들은 어떻게 절망을 넘어서고, 위기에 대처하면서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았는지 알고자 했다. 많은 이들의 삶을 종합..
그는 사십대 초반의 직장인 남성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결혼 후 그들 관계는 급전직하로 변화했다. 부부는 늘 갈등상태에 있었고 자주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며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들은 무모하게 헤어지기보다는 함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우선 삶의 모델이 되어 줄 것 같은 선배들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그러면서 저마다 자신의 문제를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자립했고,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해내기 어려울 때마다 상대방을 탓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아기처럼,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감정 문제를 상대방이 돌봐주기 바랐으며,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떼쓰는 아..
삼십대 후반의 그 후배 여성은 타인의 호의와 친절을 유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돌아서서 생각하면 명백한 의존성임에도 막상 마주 앉으면 지지와 격려를 건네게 되곤 했다. 그녀는 여러 해를 두고 틈틈이 안부를 묻듯 나를 사용했다. 그녀의 삶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정더미에 묻혀 정체되어 있음이 명백히 보이던 어느 날, 독하게 그녀를 직면시켰다. “왜 아직도 나를 찾아와 이런 것을 달라고 하느냐?” 당시 그녀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날부터 자기 삶을 점검하며 마음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독한 직면의 의미를 이해했다는 e메일을 보냈고, 또 몇 달 후 혼자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지점을 만난 것 같다고 전화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자기가 어떤 부모 환경에서 양육되었는지..
일전에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는 김찬호의 에 대한 서평회가 있었다. 그 책의 토론자로 요청받았을 때, 책을 읽기 전, 모멸감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책 어디에서도 모멸감을 주제로 연구한 글을 본 적이 없었다. 모멸감이란 타인이 나를 모욕하거나 멸시한다고 느끼는 마음일 텐데, 그렇다면 그 마음의 배면에 있는 감정이 무엇일까 먼저 생각해보았다. 모멸감은 우선 병리적 나르시시즘의 다른 얼굴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 여기며 남들이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상대방의 태도가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상대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느끼기 쉽다. 또한 모멸감은 낮은 자기 존중감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자기 존중감이 낮은 사람은 남들이 특별한 의도 없이 건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