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장기 내내 텔레비전에서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광경을 보며 자랐다. 그들은 맨주먹으로 뒤엉켜 싸우기도 하고, 몽둥이 같은 것을 휘두르기도 하고, 테이블 위로 올라가 상대방을 겨냥하여 몸을 날리기도 했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치기도 하고, 문을 잠그거나 때려부수기도 했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생각이 많아졌다. 다 큰 어른들이, 벌건 대낮에,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싸우는 걸까…. 궁금했다. 초등학생들도 고학년만 되면 그런 식으로 싸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더욱 궁금한 사실은 그 난폭한 폭력 장면에 대해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왜 그토록 분노에 차서 싸우는지, 싸우는 방법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는지, 그런 관행을 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관용구 중에 “남부끄러워 못살겠다”거나, “남보란 듯이 잘 살아주겠다”는 표현이 있다. 나라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국가적 망신이다”라고 여기기도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저 모든 문장들에는 우리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그 시선이 우리를 판단하거나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느끼고, 그 시선에 의해 우리의 가치가 좌우된다는 믿음이 들어 있다. 심지어 그 시선이 우리보다 강하고 선하다고 느끼는 무의식까지 있다.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해결하고 그 경험에서 소중한 지혜를 배우는 일에 무능하다. 그들은 하루 빨리 사건을 덮어두고, 문제가 없는 듯한 겉모습을 꾸미고, 남들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치장에 집중한다. 그런 태도는 자신이..
최초의 충격이 지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던 우울의 시기도 지나가고 있다. 슬픔과 함께 밥을 삼키고 묵직한 감정을 내면에 간직한 채 일상을 영위했다. 모든 기능들이 조금씩 둔화되어 있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수가 줄어들고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하고 싶어졌다. 동년배 여성이 문자를 통해 “이런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몰아치기로 드라마를 시청한다고 했다. 중년 여성의 판타지를 극대화시켜 놓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것이 그동안 사용해온 방어기제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고 대답했다. 슬픔과 우울감이 몸을 관통해 지나가도록 그냥 있는 것,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서른 살짜..
오래전, 내가 유년기를 보낼 때 당시 부모들은 친구와 다툰 후 울며 귀가한 아이를 안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친구끼리 놀다가 서로 다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 경험을 어떻게 처리하고 넘어가야 하는가에 중점을 두었던 듯하다. 그들은 아이를 안아 달래면서 이런 지혜를 물려주었다. “참는 사람이 장사다.”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아이는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싸움에서 지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부모가 안아서 다독여주었던 경험을 내면화시켜 마음속에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기능을 간직할 수 있었다. 내가 청춘기 무렵이 되었을 때 당시 젊은 엄마들은 친구와 다툰 후 울며 귀가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왜 만날 맞고 다니느냐? 다음부터는 맞은 ..
20대 남자에게 “애인에게 준 가장 비싼 선물은?” 하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게임기라고 답했다. 여러 달 용돈을 아껴 선물했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 선물을 준 후 얼마만에 헤어졌어요?” 당황하는 기색으로 그는 기간을 계산했다. 약 열 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 예상은 6개월이었는데, 예상보다 길었다. 그 연애가 곧 끝났을 거라 예상한 이유는 그들이 좌충우돌하는 열정을 지닌 젊은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자가 원했든 아니든 자신의 능력에 벅찬 선물을 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남자의 마음속에는 이미 불안과 비하감이 존재한다. 만약 여자 쪽에서 먼저 비싼 선물을 요구했다면 그녀는 관계를 물질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관계는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체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까지 고통이 느껴지도록 몸을 훈련해야 체력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설 수 있다. 가슴이 뻐근해질 때까지 달린 다음에야 폐활량이 커지고, 근육이 타는 듯한 고통이 지나간 다음에야 근력이 는다. 고통스러운 지점을 돌파하지 않고 몸이 편안한 상태에서만 운동하면 현상유지는 될지 몰라도 체력의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신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론이 적용된다. 인간의 정신도 고통이나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 힘들고 아파 꼭 죽을 것 같은 지점을 넘어서야만 정서의 폐활량도 커지고 마음의 근력도 는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대체로 고통의 경험 앞에서 주춤거리는 듯 보이는 때가 있다. 대학교 학생상담실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에 의하면..
일전에 지방 국립대학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 일이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다는 그 학생들은 메일, 전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청탁했고, 강의를 수락하자 자기들의 고민과 질문을 미리 메일로 보내왔다. 메일은 다섯 통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많다.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를 기억하고 분노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 역할을 강요했으며, 그래서 항상 아버지와 마찰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입장 따위는 고려해보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했으며, 그래야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강연 이튿날 다른 학생이 메일로 비슷한 질문을 보내왔다. “제게는 한 가지 문제가 ..
그 후배 여성은 서른 다섯 살이 되는 새해에 회사에 사표 내고, 남자 친구와도 헤어진 후 외국 여행을 떠났다. 첫 목적지는 알래스카였다. 성장기에 꿈꾸던 알래스카 설원을 밟은 다음 아메리카 대륙을 남으로 횡단하리라 계획했다. 나는 여행 떠나는 그녀를 격려했다. 이별에 따른 애도 작업도, 중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도 필요해 보였다.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중년기 이후의 삶을 건강하게 펼쳐나갈 거라 기대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외국에서 5년을 살았다. 처음에는 알래스카 설원이나 뉴욕 뒷골목 사진에 안부를 적어 보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이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공예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미의 한 나라에 멈추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것 같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