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는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가 있다. 지금껏 15년쯤 이어진 잡지. 대전에는 ‘토마토’, 수원에는 ‘사이다’라는 잡지가 있다. 지난주에 이 잡지를 펴내는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지역에서 책을 내는 잡지사와 출판사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전국에서 알음알음으로 책 낸다는 집은 얼추 모였다고는 하지만, 도나 광역시마다 고작해야 한둘. 한국의 출판사와 잡지사는 거의 다 수도권에 있다. 수도권과 그 나머지, 이런 구분만이 실감이 있다. 출판사의 숫자를 헤아려봐도 마찬가지다. 지방엔 손으로 꼽을 만큼이다. 그래서 상추쌈출판사는 경남 하동 촌구석에 있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는 조건은 부산이나 광주 같은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요즘 서울이든 지방이든 어디에서나 작고 새로운 책방들이 생겨나듯, 지방..
집 안에 있는 책을 정리했다. 얼추 세어 보니 3500권 정도 된다. 책 욕심이 많아 좋은 책이 나오면 일단 사고 본다. 절판된 책이 있으면 동네 헌책방을 뒤지거나 인터넷 헌책방에 검색해서 사들이고 만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책을 읽지 않아 바보처럼 세상을 살았던 게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내가 2006년에 낸 책 서문에 그런 내용을 썼다. “책이 제 삶을 바꿨습니다. 라는 만화책을 가장 먼저 보았습니다. ‘세상 사는 게 왜 이렇게 답답하고 힘들까. 내가 못나서 그럴 거야. 못 배운 게 죄지.’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다가 그 만화책을 한 권 보니 깜깜한 굴속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을 보고, 남미의 혁명가 , , , , 같은 책들을 골라서 읽었습니다. ..
여행의 즐거움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여행기에서 똑같이 말하는 것은 낯선 풍경과 처음 보는 사람들,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나 실수, 장엄한 자연 앞에서 압도되던 기억이나 이색적인 문화체험, 때로는 함께 간 일행들과의 소소한 불화 때문에 겪은 마음고생까지 즐거운 추억이 되더라는 것이다.그러나 지난 주말에 하룻밤 이틀을 함께했던 스물두 명의 사람들이 크게 만족했던 이번 여행은 좀 달랐던 편이다.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폭염이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아 무척 더웠는데 우리는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잤다. 방이 두 개 있는 마을회관에서 잤는데 방은 두 개지만 여자들이 자려 했던 방이 너무 작아서 일부는 큰 방에서 남자들과 같이 자야 했고 샤워도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밥은 음식점에서 사 먹..
8월12일 오후 2시50분, 조용한 복도에 벨이 울린다. 단원고 2층, 2학년9반 교실 복도 쪽 유리창과 벽에 붙었던, 간절한 기도를 적은 무수한 쪽지가 일주일 새 다 떼어졌다. 유리창에서 딱 하나 떼지 못한 건, ‘경미’. 초록 면테이프로 글자를 만든 이름이다. 양쪽 창 가운데 벽에 걸린 그림이 새삼스럽다. 화가 뭉크가 그린 ‘절규’다. “못 들어가겠어.” 교실 뒷문 앞에서 돌아서는 엄마. 그러기를 몇 차례, 숨을 크게 쉬고는 복도에 놓인 갈색 종이 상자를 두 손으로 들고 교실로 들어간다. 상자 앞면과 뚜껑에 노란 리본과 딸의 이름 ‘오경미’가 새겨진 종이가 붙었다. 경미 생일인 지난 8월6일에도 엄마는 이 교실에 왔다. 교실 이전을 앞두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 성직자가 참회하는 기도를 올렸다. 얼마..
여기 시골에 내려와 지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8년쯤. 길에 나서면 늘 지나치는 몇 사람이 있다. 몸이 불편하다. 서울에 살면서는 아무렇지 않게 장애인과 만나거나, 길에서 마주친 적이 거의 없었다. 동네에 그런 사람이 살았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었다. 여기 와서는 금세 사정이 달라졌다. 몸이 불편한 많은 사람들이 늘 자기 일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런 사람들은 자동차 없이 걷는 일이 많아서 더 자주 마주쳤다. 금세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마을에서 살면, 이사를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점점 더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땅을 가꾸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에 가장 애를 쓴다. 땅과 이웃을 떠나는 일은 거의 난민이 된다는 소리나 비슷하고. 그러니, 예전에 ..
지하철에서 60대 초반 정도 되는 장사꾼이 물건을 판다. “이 매트로 말할 것 같으면….” 열심히 선전을 했지만 아무도 사는 이가 없다. 그런데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노인네가 버럭 큰소리친다. “왜 여기서 물건을 팔아?” 80대로 보이는 노인네는 시커먼 물을 들인 군복에 해병대 모자를 쓰고 있다. 왼쪽 가슴에 명찰이 붙어 있다. ‘국가 유공자.’ 장사꾼이 쳐다본다. 노인네는 다시 소리친다. “뭘 쳐다 봐? 여기서 팔지 말란 말이야!” 장사꾼이 힘없이 대꾸한다. “저도 먹고살려고 그래요.” “어디서 대들어? 엉? 이걸, 고발하겠어.” 노인네가 벌떡 일어나더니 장사꾼 손수레를 잡는다. 어떤 아주머니가 “할아버지, 고만하세요. 놔 주세요. 먹고살려고 하는 걸 뭘 그러세요” 하고 말린다. 노인네는 나라를 구하려..
나는 나를 믿는가. 믿는다. 아니다, 어떨 땐 믿고 어떨 땐 의심한다. 의심한다고? 그러면 나를 의심하는 그 순간의 나는 믿는가. 믿을 때도 있고 헷갈릴 때도 있다. 의심하는 나를 늘 발견하는가. 그건 아니다. 한참 지나서 발견하기 일쑤다. 그래도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과 생각을 중심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미덥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제는 옆집에 가서 “할머니. 동네 길을 새로 잘 닦았으니 개통식 해야죠?”라며 거봉포도를 한 송이 드렸다. 친정에 와 있던 일흔이 다 된 따님도 활짝 반긴다.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자니 민망하고 죄송했다. 내가 내 죄(?)를 알기 때문이다. 그 전날이었다. 야생으로 돼지감자를 키우는 뒷산 밭으로 올라가려는데 길이 막혀 있었다. 찔레나무 등 고약..
‘꿈에 친구가 살아 왔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친구가 다른 애들과 웃는데 나는 꿈이라는 걸 아니까 울었어요. 이제 친구는 우리보다 두 살 어린 건가요? 새로운 거, 좋은 걸 경험할 때마다 생각해요. 친구도 나처럼 이런 거 해보면 좋을 텐데. 정신없이 바쁠 때는 가끔 잊어요. 그러면 미안해요. 일 끝내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으면 친구가 생각나요. 어느 날 걔가 막 보고 싶어 전화를 했어요. 한참 신호를 들었어요. 나중에 친구 엄마가 번호를 보고 전화하셨어요. 우리는 같은 대학에 가자고 약속했어요. 친구가 배우고 싶었던 화학 과목을 내가 대신 들었어요. 사실,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 친구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길게, 좀 아주 길게 멀리 여행 가서 아직 안 온 것만 같아요. 내 친구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