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요즘 그림책을 읽으시는지요? 오십대 중반인 저는 올해 팔순이신 어머님과 자주 그림책을 펼칩니다. 치매예방에 좋다고 하는 그림책이 글과 그림의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깊은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수준 높은 그림책은 펼칠 때마다 늘 색다른 감동을 줍니다. 약 10여 년 전의 어느 토요일, 저는 붐비는 일본의 대형서점에서 그림책을 넘겨보다가 발랑 넘어져 있는 고슴도치를 모든 동물들이 둘러서서 “재! 왜 저래!”라며 놀라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장면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마저 잊어버린 그 그림책을 저는 다음 날 호텔의 텔레비전 화면에서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동물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주었지만 전날의 감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2002년,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도쿄에서 디지털 시대의 출판 비즈니스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 소각칸의 멀티미디어 책임자는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아시아 출판사들이 일본 출판만화를 불법 복제해 출판 자본을 형성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상 앞으로는 자신들이 저작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책을 직접 판매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지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0년에 소각칸은 인기 만화가인 마쓰모토 다이요의 애플리케이션(앱)을 29개 나라에서 동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회는 무료로 볼 수 있지만 2회부터는 유료로 보는 방식이었는데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는 스스로 치유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방송, 영화, 연극, 미술 등 전 문화 영역에 ‘셀프힐링’의 거대한 열풍이 휘몰아쳤습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철학’으로 물꼬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사이)라는 책이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약 2000년 전에 유행했던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입니다. 세네카는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와 숨김이라고 말합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처음에 끓어오르던 기세는 누그러지고 마음을 뒤엎었던 어둠은 걷히거나 최소한 더 짙어지지 않게 된다고 하네요. 출간 즉시 인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등장합니다. 고대 로마제국 3대 황제인 독재자 카이사..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출판시장은 처절하게 추락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성장을 구가하던 아동서적과 청소년 책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출판의 그림책 만드는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한때 우리는 영국의 DK나 프랑스의 갈리마르가 만들었던 책들을 놓고 감탄했지만 지금은 우리도 이만큼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그림책이 해마다 세계적인 상을 수상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정도로 눈부신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청소년 도서의 수준도 크게 일취월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만들어도 별로 팔리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부활시킨 일제고사로 말미암아 책을 읽히지 않는 학교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어버린 일제고사는 성적에 따라 학교..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겨울호로 100호(창간 25주년)를 맞이한 ‘문학과 사회’는 상업주의 및 문학 대중화와 문학의 사회, 정치적 쓰임을 배격하고 문학주의를 추구하는 ‘소수문학’을 지향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올해 들어 “진보적 문학의 급진적 재구성”을 표방해온 ‘실천문학’은 “작품으로서의 문학과 텍스트로서의 문학이 수명을 다한” 지금, ‘사상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마련하는 특집을 꾸렸습니다. 그동안 우리 문학시장은 계간지를 펴내는 몇 출판사가 담론을 주도해왔습니다. 이제 그런 계간지들마저 ‘소수문학’이나 ‘사상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하는 세상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계간지뿐만 아니라 최근 베스트셀러를 펴낸 바 있는 출판사들도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보입니..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우리 사회는 5년을 주기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2003년의 카드대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권의 온갖 파행이 드디어 끝나는 2013년은 위기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은 해입니다. 그런데 위기 때마다 소설적 상상력이 대중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들었습니다. 1998년에는 판타지 소설 붐이 엄청났습니다. 총 누적 판매량 1000만부의 신화를 이룬 이우혁의 과 한국형 판타지의 원조로 꼽히는 이영도의 가 등장한 것을 필두로 김예리의 , 이수영의 등이 줄줄이 등장해 사상 초유의 국가 환란에 넋이 나간 젊은 세대의 관심을 압도했습니다. 이해에는 영화 원작을 소설화한 영상 소설들이 크게 인기..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지난 9월2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낙하산 인사로 초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이 된 이재호씨를 내세워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년)’을 발표했습니다. 새로운 정책이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재탕삼탕의 아이디어를 나열하고 예산을 칼질해 나눠주는 관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요. 요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뒤흔들어서일까요? K팝(Pop)과 K스타일(style)이 뜨니 K북(book)을 갖다 붙이면서 ‘글로벌 출판문화강국’이라는 비전과 ‘출판문화 활성화를 통한 출판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설정한 다음 출판수요 창출 및 유통선진화,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활성화, 전자출판 및 신성장동력 육성, 글로벌 ‘출판 한류’ 확산, 출판문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비정규직을 몇 년 떠돌다가 비록 2년 계약직일망정 그나마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27세의 여성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지나서는 일하지 못하게 했고, 휴일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고급차를 끌고 가족여행을 다녀온 직장 상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서장이 바뀌자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최근의 실태를 파악해보니 실제적인 정년이 46세였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30대 후반의 직원들도 전전긍긍했습니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로의 이직이 어디 쉬운가요?” 그 여성의 말은 이어집니다. “결혼한 친구의 아이가 너무 예뻐서 나도 결혼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