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문화와 소비의 시대인 1990년대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가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자마자 책 제목에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가 ‘나’였으니까요. 이 시기를 가장 압도했던 사상은 아마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른바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이 출판시장을, 젊은 여성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양귀자의 , 공지영의 , 이경자의 등은 ‘사랑(결혼)’이라는 전통적 가치보다 ‘일’이라는 자기실현을 중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후 소설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나날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천년 동안 못다 이룬 사랑을 완성하려는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인 양귀자의 이 등장한 것은 1995년이었습니다. 이때 하병무의 , 김상옥의 ..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를 다시 읽었습니다. 가상의 전체국가인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빅 브러더’는 독재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면서 정치권력을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사상경찰, 스파이단 등을 이용해 철저한 사상통제를 자행합니다. 방, 거리, 광장 등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과 산이나 야외에 숨겨져 있는 마이크로폰은 시민의 모든 행동을 철저하게 감시합니다. 어린이로 조직된 스파이단은 부모의 대화나 행동, 심지어 잠꼬대까지 엿듣고 사상경찰에 고발하도록 훈련받습니다. 오세아니아의 통치주체는 ‘당’입니다. 만능인 ‘당’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진실이며 사실입니다. 당은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마저 만들어 생각과 행동을 속박합니..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작은도서관’이란 잡지를 기억하실지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007년 말에 4호까지 펴내고 중단된 잡지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권양숙 여사는 작은도서관 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작은도서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예산도 점차 늘어났지요.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이 ‘권양숙 여사’ 예산이라면서 전액 삭감해버렸습니다. 아마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출판계에 안겨준 재앙의 시초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의 ‘김윤옥 여사님’ 예산은 한식 세계화로 바뀌었습니다. ‘4대강 사업’처럼 한식 세계화는 혈세만 낭비하고 아무런 소득도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판계에 안겨준 본격적인 재앙의 시발점은 ‘일제고..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호시노 도모유키 장편소설 (은행나무)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레오레’는 그냥 ‘나(오레)’로는 부족하여 ‘나야 나’ ‘나, 나라니까’ ‘내가 내가’ 하며 자신의 존재를 강조하는 표현이랍니다. 작가는 이 소설로 ‘제5회 오에겐자부로상’을 받으면서 한 인터뷰에서 ‘오레오레’는 “개인이 소멸되는 시대에 겁먹은 개인들이 지르는 비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인공 ‘나’(히토시)는 언제나 맥도널드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합니다. ‘나’는 어디를 가나 동일한 인테리어로 편안하게 맞이해주는 맥도널드가 집처럼 편안합니다. 맥도널드의 빨간색과 노란색이 눈에 들어오면 조난 중에 사람이 사는 섬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나’는 맥도널드에서 옆에 앉은 사람(다이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여성작가 여섯 사람이 섹스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단편소설집 (문학사상)를 읽어보았습니다. 빨간색 표지가 무척 자극적이었지만 내용은 “아주 은밀한 섹스판타지”라는 도발적인 광고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선을 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은요? 자신이 욕망 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했다가는 하루아침에 매도되기 쉬운 세상에서 검사 출신의 법학자 김두식은 욕망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결심의 결과물로 (창비)를 내놓았습니다. 김두식은 (교양인)에서 직접 체험한 법조계의 어두운 현실을 용기 있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사, 검사,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khhan21@hanmail.net 지난 5월 19일 안면도에서는 누동학원의 총동창회가 열렸습니다. 누동학원은 1975년 6월 15일 문을 열어 모두 8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1년 8월 30일 문을 닫은 중학교 과정의 농촌야학입니다. 제도화된 교육을 비판하며 바람직한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려 했던 누동학원을 유신정권은 ‘사설강습소법’을 핑계로 강제 폐교시켰습니다. 저는 6년여 동안 누동학원을 거쳐간 80여명의 교사 중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학년 9명의 담임이었지요. 마지막 졸업식이 있은 뒤에 한 학생이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떠나시는 선생님을 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 작은 소녀의 가슴에서 벅차 올랐어요. 선생님, 저는 그때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대략 1991년부터 2002년까지를 말합니다. 한때 일본 경제의 고공행진을 가능하게 했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락하자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습니다. ‘고이즈미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한 고강도 개혁 정책을 실시해 경기가 잠시 살아나는 듯했지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흔들렸고, 작년 3월11일에는 대지진마저 겪으면서 심각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은 이제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다지요. 로버트 기요사키는 (흐름출판)에서 세계 경제대국 가운데 첫 번째로 부도가 날 국가는 일본이라네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군요. 2010년의 국가 부채 비율은 일본이 200..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요즘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입니다. 한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니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박범신, 문학동네), (수잔 콜린스, 북폴리오), (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등 영화화된 원작소설 몇 편만이 순위에 들어 있네요. 성석제의 신작 장편소설 (문학동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의외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소설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꾸준히 ‘팔리는’ 몇몇 대형작가가 존재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발 재정위기로 이어져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평생 ‘위기’를 끼고 살아야만 할 것 같은 2010년대에는 대형작가들의 작품마저 ‘임팩트’가 강하지 않으면 곧바로 외면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