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하는 벚꽃의 여흥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커피숍과 편의점, 미용실, 건물 청소 용역, 경비업체 등 수많은 곳에 흩어진 최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벚꽃 향만 맡아도 최저임금의 계절이 돌아왔다고 으스스 몸을 떨 정도로 삶이 팍팍하다.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요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최저임금 이야기가 자주 도마에 오른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해에 정해진 최저임금이 잘 지켜지기만 해도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쥐꼬리만 한 임금이 조금이라도 오를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약속한 것이라도 잘 지키라는 이 바람을 “왜 이리 소박하냐…”고 타박할 수도 없다. 법과 제도가 정한 최저임금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까. 이러한 현실과 함께 우..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3월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새 정부가 야심차게 구상한 부처 개편도 이루어졌고, 4월9일 현재 아직 해양수산부 장관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자리가 공석이긴 하지만 대략 인선도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장관 인사가 끝나면 그 아래로 줄줄이 인사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고 비로소 마비 상태였던 국정 업무가 수행될 수 있을 터다. 이중국적 문제로 낙마한 김종훈 후보자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아무튼 독특한 논점을 제시했다. 그와 달리 다른 경우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그만큼 지리멸렬한 소재들로 검증받았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의무 이행 여부, 논문 대필, 법인카드 유용 등이 그것이다. 이런 요소들을 넣고 필터링을 해보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무려 장·차관급 7명이 통..
정지은 | 문화평론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편이다. 졸업 1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해 들어간 첫 직장의 입사자는 스물세 살 막내인 나와 왕고참 스물여덟 살 언니를 포함해 열 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경력의 나와 최소 5년 경력직의 월급은 별 차이가 없었다. 현실을 마주한 나는 내 운에 감사하는 한편 ‘저 언니들만큼은 되지 않겠어’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연봉의 3배를 받는 동갑내기 정규직, 알바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언니들 사이를 오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직장생활은 그런 거라고 했다. 2003년 영화 가 개봉됐고, 여주인공의 나이는 왕고참 언니보다 한 살 많은 스물아홉이었다. 서른 살이 되면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데 스물아홉이라니! 나는 “서른 살이 되기 전 인생의 숙제,..
유재인 | 에세이스트 ‘담뱃값 인상 반대시위’라는 사진을 봤다. 피켓의 내용을 살펴보니 내용이 소심했다. 아예 반대한다는 시위가 아니었고 ‘점진적으로 인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어떤 피켓은 슬프기도 했다. ‘정말 담배를 못 피우게 하고 싶으면, 담배 소비만이 아닌 판매·구입·소지를 전면 금지하라.’ 노력은 했으나 결국 못 끊은, 그리하여 결국 본인들의 주머니만 털리고 말 것을 예측한 애연가들의 사연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 안 해본 건 해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지만 앞으로도 담배는 못 피울 것 같다. 건강은 둘째고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싶지 않다. 담배에는 발암물질이 가득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이 타인까지 해한다는 사실이 강조되는 추세다. 그리하여 금연빌딩이나 ..
노정태 | 자유기고가 지금보다 열살가량 어렸던 시절, 한창 혈기 넘치던 나는 지워버린 블로그에 이런 내용을 적어두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정신이 박힌 젊은이는 두 가지의 선택 중 하나를 강요당한다. 안보를 걱정하는 좌파로 살 것인가, 분배를 근심하는 우파로 살 것인가.” 이런 식의 ‘자기 인용’이 대단히 부끄러운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보니 저 문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상징적인 사건이지만,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양쪽 모두 제대로 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일간지들의 사설을 검토해보자. 이른바 보수적이라고 불리는 쪽이건 그 반대편이건, ‘유능한 재외동포가 국내에 들어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우리가 박탈한..
노정태 | 자유기고가 이 신문이 하나의 건물이라고 생각해 보자.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1층이 1면이고, 맨 마지막 페이지의 광고는 건물 옥상에 얹혀져 있는 옥외광고라고 연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설은 꼭대기층에 놓여있는 펜트하우스 같은 것일 테고, 비슷한 방식으로 이런 저런 지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비유를 연장해보자. 어떤 신문이 필자에게 칼럼을 쓰게 해준다는 것은, 다른 식으로 이해해 보자면, 어떤 공간을 임대해 준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건물주는 임대료를 받는 반면 신문사는 원고료를 준다. 하지만 건물주가 자신의 건물에 들어올 업체의 성격, 종류, 매출 규모 등을 세심하게 따지듯, 언론사 역시 ‘외부 필자’들을 선별하고 관리한다. 그리고 이 지면의 이름은 ‘..
유재인 | 에세이스트 가끔 백일도 안된 아기를 때려 사망케 한 엄마가 구속됐다는 공포영화 같은 기사가 나온다. 그를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안다. 출산 후 불균형한 호르몬, 변화된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 정신적 부담과 육체적인 고됨, 거기에 잠 안자는 아기. 안자고 우는 아기에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어떤 게 있다. 그리하여 0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첨예한 논쟁 주제는 ‘수면교육’이다. 아기를 길러보지 않았다면 ‘자는 것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잠드는 것조차 혼자 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수면교육 찬성론자들은 말한다. 약간의 교육을 하면 아기는 혼자 잠들 수 있다. 졸음이 와서 울더라도 안아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아기도 푹 잘 수 ..
김지숙 | 소설가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카운터가 소란해진다. 한 고객이 커피를 앞에 두고 항의하는 중이다. 방금 산 커피에서 비닐조각이 나온 모양이다. 한눈에도 어리고 서툴러 보이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어쩔 줄을 모른다. 환불을 해줄지 다른 상품으로 교환해줄지 묻는다. 고객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팔짱만 끼고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고객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고 연신 사과를 한다.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진다. 고객은 지점장을 찾는다. 그러나 지점장도, 사장도 없다. 교육받은 지 얼마 안된 아르바이트생이 전부다. 결국 고객은 나중에 사과전화를 하라면서 번호를 남겨놓고 간다. 아르바이트생은 땀을 닦으며 서둘러 다음 주문을 받는다. 흔한 광경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