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출신의 18세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고인은 정착지원금 대부분을 대학 기숙사비 등으로 지출하고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다른 학생은 모두 집에 간 방학에 혼자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일어난 일이어서, 인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힌 지 60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만 18세에 복지시설의 보호가 종료되는 제도에 대해서는 오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작년 7월 국무회의에서 만 24세까지 보호받을 수 있고 자립수당 지급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발표되었고, 12월 법안 개정을 거쳐 올해 시행령이 의결됨으로써 6월2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고인은 개정 시행 이전에 종료 시점..
창부타령, 난봉가, 유람가 등에서 차차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래에서 인상적인 도입부나 강력한 마무리에 즐겨 쓰이는 말이 있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눈앞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모처럼 만난 친구가 참으로 소중해서, 마침 익은 술맛이 기가 막혀서 던지는 탄성이며,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역설적으로 내뱉는 탄식이다. 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탄성과 탄식의 바닥에는, 유한한 인생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며 고목에는 새가 날아들지 않는다. 길어봐야 백년도 안 되는 인생은 달리는 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막상 즐길 수 있는 날은 의외로 많지 않다. 참 상투적인 레퍼토리지만 누구도 부인하거나 벗어날..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차가운 연해주에서 동지들과 함께 무명지 첫 마디를 자르고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고 쓰며 투쟁을 맹세했다. 지금 남아 있는 유묵에 찍힌 손바닥 도장이 바로 이 ‘단지혈맹’의 기개를 그대로 보여주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그런데 왜 무명지였을까? 무명지를 자르거나 피를 내서 위독한 부모님의 입에 흘려 넣음으로써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이야기는 예로부터 효자열전에 자주 나오는 대목이다. 참으로 훌륭한 효심이긴 하지만, 이 역시 왜 무명지였을까? 무명지가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마음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엄지는 거벽(巨擘)이라는 표현처럼 첫째로 추대되고, 검지는 식지(食指), 두지(頭指)로, 중지는 장지(長指), 장지(將指)로, 새끼손가락도 소지(小指), 계지(季指..
황희 정승은 청빈함과 엄정함, 너그러움 등의 모습으로 여러 미담에 등장한다. 그중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어린 종 둘이 다투었는데 한 종이 와서 상대의 잘못을 호소하자 황희는 “그렇지, 네 말이 옳구나”라고 다독거렸다. 잠시 후 온 다른 종에게도 황희는 “그렇구나, 네 말이 옳지”라고 동의했다. 이를 본 조카가 이의를 제기하자 황희는 “네 말도 옳구나” 하고는 읽던 글을 계속 읽었다. 이 일화를 어떤 의견이든 인정하고 받아주는 포용력으로 읽거나, 시비를 따지기보다 마음에 공감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는 건성건성 대답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태도로 세상에 부합하는 기회주의자, 혹은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정치가의 면모..
어휘에도 운명이 있다. 한때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어휘가 어느새 까마득하게 잊히는가 하면, 잘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어휘가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기도 한다. ‘화수분’이라는 어휘는 후자에 속한다. 교과서에 실려 많이 읽힌 단편 소설 ‘화수분’이 여전히 대학 입시를 위한 필독서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프로야구에서 몇몇 팀을 두고 ‘화수분 야구’라고 부르는 용례의 힘도 의외로 크다. 오랫동안 다양하게 이어진 화수분 설화는 써도 써도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향한 욕망의 반영이다. 이 단지가 도깨비방망이와 다른 점은, 무언가 넣어야 나온다는 것이다. 쌀을 넣으면 쌀이, 돈을 넣으면 돈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애초에 무언가 넣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땅이 화수분..
유네스코는 시대의 변곡점마다 미래교육을 위한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작년 11월에 세 번째 보고서를 발간했고, 올해 3월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번역서가 공개되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 앞에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보고서는 더 늦기 전에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공공재로서의 교육일 뿐 아니라 공동재로서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공공이라는 말의 출처는 이다. 왕이 행차하는데 한 사람이 다리 밑에서 갑자기 뛰어가는 바람에 왕을 태운 마차의 말이 크게 놀랐다. 그를 겨우 벌금형에 처했다는 것을 듣고 화가 난 왕에게 장석지가 말했다. “법은 천자가 모든 사람들과 공공(公共)하는 것입니다. 법조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한다면 법이 백..
천화판(天花板)은 지붕 밑을 편평하게 해서 치장한 반자를 말한다. 실내에서 보면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중국에서는 외모나 능력 등이 최고치임을 인정할 때 최고봉, 혹은 이른바 ‘끝판왕’의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그 앞에 ‘돌파’를 붙이면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한계를 돌파하여 뛰어넘는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최근 “하향돌파천화판(下向突破天花板)”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천장은 가장 높이 있는 것인데 그 천장을 아래로 돌파한다고 했으니 말부터가 모순이다. 이는 인터넷 유행어인 ‘탕핑(平)’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탕핑은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인데, 아무런 의욕이나 열정도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상태로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지향을 가리킨다. 어차피 집과 차를 사고 결혼하여 아기 낳으며 소비를 즐기는..
아기는 태어날 때 왜 우는 것일까? 엄마 뱃속에서 양수에 둘러싸여 탯줄로 산소를 공급받다가 갑자기 자신의 입과 폐로 호흡을 해야 하는 변화 때문에 운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과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우는 것이라는 말도 그럴 법하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마음이 시원해서 우는 것이라고 했다. 좁고 캄캄한 엄마 뱃속에서 답답하게 웅크리고 지내다가 넓고 환한 세상에 나온 것이 하도 시원해서 참된 소리를 마음껏 지르는 것이다. 박지원은 사신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가다가 처음 요동 벌판을 마주하고서 “아! 울기 좋은 자리로구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별안간 울고 싶다는 말에 일행이 그 까닭을 묻자, 박지원은 울음의 철학을 펼친다.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게 아니다. 기쁨,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