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채비를 마치고 거개의 나무들이 적막에 드는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유난스레 돋보이는 나무가 있다. 호랑가시나무다.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의 빨간 열매가 도드라지는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겨울나무’ 혹은 ‘크리스마스 나무’다. 잎 가장자리의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 해서 호랑가시나무라고 이름 붙인 나무인데, 일부 지방에서는 얼기설기 엮은 가지로 호랑이가 등을 긁을 때 쓸 만하다 해서, 호랑이등긁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만든 나무라고도 하고, 예수의 이마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다가 자신의 여린 몸이 찢겨 피를 흘리며 죽어간 작은 새 ‘로빈’이 좋아하는 먹이여서 예수의 수난과 함께 기억하며 성탄 장식에 썼다고도 한다. 크리스마스가 ..
국회가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내년도 예산안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가 포함된 국회선진화법이 2014년 시행된 이후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를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장이 15일 본회의를 마감시한으로 예산안 처리를 압박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예산의 내용과 규모를 두고 ‘새 정부 vs 전 정부’ 구도로 여야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법인세 같은 예산 부수법안에서도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과거처럼 해를 넘겨 예산안이 처리되거나, 아예 사상 첫 준예산 편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진화’라는 별칭을 따로 붙여야 할 정도로 선진화법 이전의 국회는 그야말로 후진적이었다. 예산 처리 시..
1948년 5월 5일 제주 4·3 대책회의 참석을 위해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간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 4.3아카이브 제공 1948년 ‘제주 4·3’이 격화되자 미군정은 4월17일 모슬포에 주둔 중인 국방경비대 9연대에 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와 경찰의 도민 탄압이 사태의 도화선이라 보고,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김 중령은 4월28일 남로당 제주위원회 조직부장이자 무장대 군사총책 김달삼과 만나 72시간 안에 전투를 중지하고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뤄지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협상 결과를 무시했다. 사흘 뒤인 5월1일 발생한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은 무력진압의 신호탄이 됐다. 미군정과 경찰은..
모로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1일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포르투갈과 맞선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1-0으로 이겨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도하 | AP연합뉴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삼사자 군단’으로 불린다. 빨간 혀와 발톱을 지닌 파란 사자 세 마리가 새겨진, 잉글랜드 축구협회 엠블럼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 엠블럼은 12세기에 등장한 왕실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즉위하면서 원래 한 마리였던 국장에 한 마리를 추가했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한 마리를 더 넣어 세 마리의 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사자는 잉글랜드와 자국 축구의 상징이 됐다. 각국 축구대표팀을 친숙하게 부르는 별명이 다양하다. ‘레 블뢰’(..
노옥희 울산교육감이 지난 3월22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 때 한 학생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누구나 살면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경험을 하는 순간이 있다. 교육자 노옥희(1958~2022)에게 그런 순간은 20대 중반 울산 현대공고 수학교사 시절 한 제자와의 만남이었던 것 같다.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어렵게 학교에 다니던 이 학생은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노동조합은 없었고,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한 푼도 보상받을 수 없어 절망했다고 한다. 노옥희는 2011년 책 에서 그때를 회고하며 “학생들에게 전공과목만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
조두순이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들은 불안해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그러자 정부는 여러 정책을 쏟아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이번엔 조두순이 현재 거주지에서 딴 곳으로 이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사 지역 주민들이 결사반대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나? 더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조두순보다 심각한 성범죄자가 오늘도 출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정부 대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당한 분노이고, 지역 주민들의 불안 또한 내 주변 가족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불안이다. 이러한 분노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답을 제시하여야 한다. 답은 ‘어떻게’라는 질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왜’..
세상은 참 이상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도 이상해질 때가 있다. 일상의 사물은 표면의 일부만 슬쩍 보여주면서 제 비밀을 털어놓을 상대를 늘 기다리고 있다. 주말 농사에 열심인 친구가 모둠전을 앞에 두고 한마디 했다. 이상해, 밭일하다가 호박을 만나면 유독 기분이 움푹 깊어져. 그땐 달리기에 막 빠져서 그랬을까. 그 말을 듣는데 문득 텃밭이 육상시합이 벌어지는 운동장, 그중에서도 호박은 줄기 따라 뛰어가는 마라톤 선수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 무렵 잠실에서 출발하여 송파 일대를 달리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호기롭게 시작하였으나 이내 기진맥진, 어느 교차로에서 길이 갈렸다. 풀코스는 좌회전, 하프코스는 우회전. 나는 경험하지 못할 경지를 향해 뛰어가는 선수들의 등을 바라보는데 왠지 눈시울이 좀..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이 1년이 되었다. 장애인에게도 교육받고, 노동하고,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말을 당연한 말로 만드는 것이 참 힘들었다. 20년 전부터 선로에 뛰어들고 도로를 기어가는 일을 숱하게 반복하고 나서야 이동편의증진법, 특수교육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 등이 제정되었다. 그런데도 장애인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미흡한 법률도 문제였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 컸다. 정부는 매년 예산이 아니라 말을 책정해왔다. ‘노력하겠다’, 이것은 말이지 돈이 아니다. 그리고 말로써는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담은 투쟁이 이토록 계속된 것은 정부가 자꾸 돈 대신 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전국장애인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