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스케줄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수시로 감독했고, 우리들은 딴짓을 할 수 없었다. 선수들이 일탈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를 받았다.” 기성용 선수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합숙소 생활을 했던 관계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기성용 선수에게 유리한 내용이 담긴 이 증언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위와 같은 통제된 생활이다. 일단 기성용 선수와 관련된 직접적인 사안은 좀 더 추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렇다고 사건의 심각한 정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된 채 생활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21세기의 벽두에. 이 정황 자체를 중대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 수..
1988 서울 올림픽 개최 7년 전인 1981년 9월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84차 총회. 꿈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일찌감치 올림픽 개최를 선언하며 준비해온 일본 나고야를 누르고 대한민국 서울이 개최 도시로 선택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올림픽 유치에 고무된 우리 정부는 1982년 3월 한국 체육행정을 총괄할 체육부를 창설하고 5공화국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체육부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1988 올림픽뿐 아니라 1986 서울 아시안게임까지 관장하며 한국 체육사에 있어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다. 2개의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시키면서 국가 브랜드 상승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체육 강국으로서 입지를 굳힌 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러나 ‘..

제41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이기흥 후보가 재당선됐다. 낙승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디 쉬운 선거가 있겠는가. 그간의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선 이후 보름 정도가 지난 이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치하보다는 날카로운 격려가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명실이 상부해야 한다. 이전 4년 동안의 재임 기간이나 또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누구보다 이 회장 스스로 ‘스포츠선진국’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스포츠인권 향상을 통한 선진화’에 대해서도 적극 호응하였다. 명실이 상부한다는 것은, 내세운 가치와 그것의 구체적인 사업이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진천선수촌에는 ‘스포츠선진국’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걸려 있고 대한체육회의 공문서에도 이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 ..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이 지면을 ‘모두까기’로 채울 수도 있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얘기다. 4년 동안 체육회를 이끌어 온 이기흥 후보와 이에 맞서는 3인의 후보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세간의 풍문을 들어봐도 그렇고 언론 보도를 봐도 그렇고, 4인 후보의 철학과 공약을 살펴보는 경우는 드물고, 온갖 험한 말들이 넘쳐나는 형국이다. 이에 편승하여, 그동안 뭐 하다가 선거에 뛰어들었느냐고 힐난할 수도 있고 지난 4년 동안 뭘 했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쩌랴. 어쨌든 현재 입후보한 4인 중 한 사람이 선택받을 것이고, 그에 의하여 앞으로 21세기의 한국 스포츠가 전개될 터이니 우선 4인의 공약을 검토하는 것이 그래도 선거의 순기능에 부합하는 일이다. 어느 역사가의 말처럼, 냉소가 ..

NC 다이노스 주장 양의지가 장대한 은검을 번쩍 뽑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를 에워싼 동료들도 두 팔 뻗어 손가락 끝으로 검을 가리키며 환호했다. 지난 24일, 올해 프로야구 챔피언에 오른 NC의 우승 세리머니는 게임 속 피날레 장면 같았다. 국내외 야구계의 시선을 강탈한 검의 정체는 모기업 NC소프트의 인기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대표 무기 ‘집행검’의 모형이었다. 이 집행검 세리머니를 두고 미국 CBS스포츠는 “참신하다”고 소개했고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최고의 트로피가 아닐까”라고 평했다. 집행검 모형은 세리머니 직전 그라운드에서 구단주인 김택진 NC소프트 대표가 손수 공개했다. 어찌 보면 그가 직접 만든 것이기도 하다. 한국시리즈 경기 중에도 방영된 최근 리니지 ..

‘꼰대 아재’들은 쉽게들 말한다.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옛날에는 더 심했다”고, 그런 ‘꼰대 아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저녁 점호하고 청소 검사를 받을 때 몸을 살짝 밀면서 지적을 해요. 군기를 잡으려는 것 같아요. 인원 보고는 하루 네 번 하는데, 모두 층장, 총층장, 사감 등에게 보고해야 해요. 일반 학교 기숙사 친구들이 ‘너희는 군대나 교도소에서 사는 것 같아’라고 해요.” 체육고등학교 육상부 2학년생의 말이다. 다름 아닌 2019년의 증언!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7개 학교, 비수도권 9개 학교, 학교급별로는 중학교 3곳, 고등학교 13곳 등 총 16개 학교를 방문 조사하는 과정에서 채록한 것이다. 지금의 중·고교 학생들이면 21세..
국내에 10개밖에 없는 일자리가 있다. 프로야구 감독이다. 본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예이고,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야구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다. 감독은 스타와 신인을 가리지 않고 수십명의 젊은 선수들에게 ‘인사권’을 행사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로 보도되고 주 6일 얼굴이 TV로 생중계되는 유명인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거액의 연봉도 받는다.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자리가 프로야구 감독이다. 하지만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이기도 하다. 여론에 워낙 민감한 자리이다보니 제아무리 스타 감독이라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경질될 수 있다. 해마다 중도 사퇴하거나 시즌 종료 후 재계약하지 못하는 감독들이 나오는데, 2020시즌은 유독 중도 낙마한 감독들이 많..
스포츠는 아름답다. 지네딘 지단은 말했다. “언제까지나 지금 이 상태로 플레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공과 일체가 되어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최고의 상태 말이다.” 이럴 때 스포츠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월드클래스 못지않게 전 세계 경기장에 자기 영역을 표시했던 이영표 선수도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다. 작년 여름 내가 물었다.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그렇게 물어보면서 나는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강렬했던 순간들, 예컨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터진 안정환의 골든골 1초 전의 극적인 어시스트라든가, 유럽에서 치른 산전수전의 결정적 장면을 얘기할 줄 알았다. 그랬는데, 그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토트넘에서 뛸 때, 절묘하게 패스했던 순간을 그는 떠올렸다. 공이 허공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