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국제대회를 앞두고 한국 야구대표팀을 취재할 때였다. ㄱ선수가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대표팀 고참 선수가 대표팀 전원에게 선물한 것으로, ㄱ선수 말에 따르면 개당 80만원가량의 고가 제품이었다.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28명이었다.기자들은 고참 선수의 씀씀이에 놀라면서도 그 선수의 지난 몇 년간 연봉이 합계 수십억원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그런 선물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ㄱ선수는 손사래를 치며 “많이 번다고 다 그렇게 베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만 모든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은 아니며, 곳간 문을 열라고 타인이 강요할 수도 없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의료진과 코로나19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각종..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에서, 강인한 신체에 몰두하는 미국 사회의 욕망을 읽었다. 이유 없이 뛰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사상가가 보기에 ‘뉴욕 마라톤은 물신주의적이며 공허한 승리의 망상’이었다. 레이건의 애국주의가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나는 해냈다’고 외치는 1만여명의 마라토너에게서 강력한 물신주의를, 그리고 피트니스센터에서 뛰는 사람들에게서 ‘창백한 고독’을 읽었다.글쎄, 우연히도 나는 1995년 11월, 센트럴파크에 있었다. 뉴욕 마라톤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회가 시작된 지 예닐곱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가 본 주자들은 매우 느린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인도 있었고 휠체어 장애인도 있었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환한 표정에서 ‘물신..
프로야구 팬은 봄부터 ‘가을야구’를 기다린다. 가을야구는 6개월간의 정규시즌 경기에서 상위권에 든 팀들이 한 해의 챔피언을 다투는 포스트시즌 경기들을 칭한다. 보통은 10월에 열리는데 경기가 치열해지면 11월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프로야구가 성행하는 한국·미국·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11월12일이 역대 가장 늦게 끝난 날로 기록돼 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문에 프로야구 일정이 밀린 2018년 일이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로 일시 중단을 겪은 2001년 챔피언결정전(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11월4일에 끝난 게 메이저리그 100여년 역사상 첫 11월 가을야구였다.‘가을의 클래식’ ‘가을의 전설’로도 불리는 가을야구가 올해는 크리스마스에 열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
2001년 9월11일, 여객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했다.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는 “맨해튼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고 9·11 직후 분위기를 떠올렸다. 미국 내 모든 것이 멈췄다. 야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양키스 선수들은 야구장 대신 제이콥 컨벤션 센터를 찾았다. 피해복구 자원봉사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곳이었다. 조 토레 감독은 “우리가 여기에 오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야구하는 사람들일 뿐인데”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양키스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모여 들었다. 사인 요청 사진 속 실종자들은 양키스타디움에 있거나, 양키스 모자를 쓰고 있었다. 토레 감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야구였..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코로나19’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는 이렇게 갑자기 반전한다. 오랑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 초기에는 다소 주춤하여 도시는 “저녁마다 변함없이 인파로 가득 찼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갑자기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이 도착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고 있다. 시즌 막바지의 혈전이 벌어져야 할 경기장도 텅 비었다. 아니, 물론 그곳이 직장이요 삶의 터전인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을 지키고는 있다. 겨울 시즌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중이다. 누구는 조금 고약한 말도 한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해보니 이제야 관중 귀한 줄 알..
평소라면 나들이객들이 오갔을 일요일 한낮 덕수궁 돌담길에 인적이 드물었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로에도 차가 별로 없어 퇴근 시간이 15분 가까이 단축됐다. 코로나19의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도시의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사람들의 일상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났다.스포츠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정규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프로배구는 순위싸움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교통 접근성이 좋은 서울 장충체육관의 경우에는 평일에도 좌석이 매진된 것은 물론이고 입석 관중이 수백명에 달할 정도로 팬들의 발길이 잦았다. 그러나 프로배구는 25일부터 무기한 무관중 경기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보다 앞서 관중을 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여자프로농구의 선례를 따른 것이다. 시즌 개막..
‘혁신위의 시간’이 끝났다. 지난해 초, 우리 사회를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스포츠계 성폭력 사건 이후 이를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발족된 스포츠혁신위원회 활동이 7차례의 권고와 각 권고의 제도적 이행을 확실히 점검하고 마무리되었다.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스포츠기본법 추진, ‘학생 선수’를 포함한 엘리트체육 문화 혁신,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다양한 제도 권고 등은 향후 한국 스포츠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부터는 ‘문체부의 시간’이다. 장기적으로는 스포츠계 전체가 실질적인 주체이지만, 현재로서는 혁신위의 권고에 따른 법적이고 제도적인 정비 및 인력, 재정, 문화 등에 대한 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할 단계이고, 이는 당연히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 의무에 해당한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는 프로야구 구단의 비시즌 풍경을 다룬 작품이다. 1~2회에서 스타 선수 임동규와 신임 단장 백승수의 기싸움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임동규는 자신의 실력과 인기, 입지를 과신해 분란을 일으키다가 백 단장 손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는 운명에 처한다. 임동규처럼 ‘인성 논란’에 휩싸일 법한 프로야구 선수가 현실에도 있을까. 안타깝게도 있다.프로야구계에선 새해 벽두부터 폭행 사건이 잇따랐다. NC 2군 코치 ㄱ씨는 신고를 받고 자택으로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ㄱ코치의 부인이 ㄱ코치가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앞서 LG 현역 선수 ㄴ씨는 여자친구와 다투다가 이를 말리던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