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聖杯)는 신성하고 고귀한 술잔이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포도주를 나눈 잔을 지칭하기도 한다. 기적의 힘을 지닌 성물로 여겨진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나서는 전설도 전해내려온다. 근래에는 ‘독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라는 말이 숙어로 쓰이며 귀에 익숙해지고 있다.‘독이 든 성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4대 비극 중 하나인 에 쓴 뒤 널리 퍼졌다. 1막 7장의 서두, 부인이 자신에게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기를 부추기는 상황에서 나온 주인공 맥베스의 독백이다. “정의의 신은 ‘독이 든 성배’를 따른 자의 입술에 그 독을 퍼부을 것이니….” 독이 들어있는 줄 알면서도, 비극적인 결말이 예견되는데도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독배를 들이켜고야 마는 인간의 욕망과..
아마 잘해보려다가 그리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상황에서 FC서울 구단은 경기 분위기도 살리고 마침 K리그가 세계 곳곳으로 중계도 되니 홍보 기회로 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성인용품 ‘리얼돌’이 관중석에 등장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특한 마음으로 개인적 이득을 취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잘해보려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고 따라서 언제든지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는 비상한 상황에서는, 단지 잘해보려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니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격려할 게 아니라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구조적인 ..
어지간한 야구팬이라면 요기 베라(1925~2015)를 모를 리 없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포수이자 감독, 월드시리즈 우승반지 10개, 뉴욕 양키스의 등번호 ‘8번’ 영구결번…. 요기 베라를 모르는 사람도 이 말은 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그의 이름보다 유명한, 그가 남긴 명언이다. 뉴욕 메츠 감독이던 1973년 여름, 팀 성적이 꼴찌로 처져 잘릴 위기에 처한 그에게 리포터가 “다 끝난 것 아니냐”고 묻자 그가 했다는 말이다. 이후 메츠는 거짓말처럼 승승장구해 9.5경기차 열세를 뒤집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거머쥐었다. 본명은 로런스 피터 베라인데, 어린 시절 단짝 친구가 인도 영화에서 본 요가 수행자와 닮았다며 붙인 별명 ‘요기’(Yogi)를 이름으로 삼았다. 그라운드의 수다쟁이이자 ..
프로야구 KBO리그가 지난 5일 개막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개막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보건 공무원과 의료진이 흘린 땀방울,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한했던 시민들의 수고가 개막이라는 결실을 이뤘다.전 세계 스포츠가 멈춘 상황에서 KBO리그 개막은 지구촌의 화제이기도 했다. 개막은 한국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거의 승리하고 있다는 표상이었다. 중동의 알자지라를 포함한 많은 외신들이 개막전 현장을 취재했다. 더 나아가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은 KBO리그 TV 중계권을 구입해 미국 내 중계방송을 시작했다. KBO리그가 졸지에 미국 무대에 오르게 됐다.그동안 KBO리그는 즐거웠다. 팬들은 멋진 플레이에 환호했고 패배를 분하게 여겼으며 실책성 플레이엔 유머 코드를 ..
“한국 프로야구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복귀한 전 세계 최초의 주요 프로 스포츠리그 중 하나가 됐다.” 5일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은 한국 프로야구 개막 소식을 홈페이지 머리기사로 전 세계에 타전했다. ESPN은 ‘각 팀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 등 10여 꼭지의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NC 개막전을 생중계했다. 일본의 유무선플랫폼 스포존도 ESPN과 함께 매일 한국 프로야구 경기를 생중계한다. 이날 각 구단 개막전 현장에는 미국·일본·중국·프랑스·카타르 등의 20여개 유력 언론사가 찾아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무키 베츠(LA 다저스)는 “KBO가 돌아왔다”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보영상을 올렸다.한국 프로야구가 지각 개막, 사상 첫 무관중 경기에도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관..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로 소문난 드라마 를 보다가 진짜로 충격에 빠졌다. 욕망과 치정의 남자 주인공. 그를 협박하러 누군가 찾아온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추궁한다. 누구냐고, 왜 집에까지 찾아왔냐고. 남자가 군색한 변명을 한다. 신문 보라고 찾아왔다고,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요즘 세상에 누가 신문을 본다고…”.하아, 그렇구나. 요즘 세상에, 누가, 신문을 본다고? 방금 물음표를 달았지만 느낌표를 달아도 무방하다. 오래전부터 느껴오던 일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문 읽으라고, 사설도 읽고 칼럼도 읽고, 그래야 세상 보는 눈이 운운하면서 신문 읽기를 권면하였으나, 그 또래 아이들처럼 좀처럼 읽지 않았는데, 아뿔싸, 그런대로 별 탈 없이 성장하고야 말았다.종이신문 종사자들의 푸념과 달리, 젊은 세대가 세상만사..
2020년 봄은 허전했다. 개학·꽃놀이·여행…. 늘 있던 일을 보고 겪지 못해서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한마디 보탤 수 있다. 당연한 줄 알았던 프로야구가 열리지 않아 서글프다고 하소연할 만하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이 경기 전날 반드시 감자탕을 먹는 일상의 ‘루틴’을 잃어버린 느낌일 것이다. 코로나19가 휩쓴 스포츠 세상은 우울했다. 전 세계 스포츠가 ‘올스톱’하고 올림픽이 1년 뒤로 연기됐다. 스포츠뉴스에는 선수들이 ‘집콕’하며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등 온라인 화면 속에서 경주하는 사이클·카레이싱 대회가 소개됐다. 코로나19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다중이용시설인 경기장에 관중이 모일 수 없다고 예상됐다. 스포츠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뉴 노멀’을 경험했으니 스포츠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
1920년 8월17일, 클리블랜드 유격수 레이 채프먼이 야구공에 맞아 사망했다. 뉴욕 양키스의 옛 홈구장 폴로그라운드에서 열린 경기였다. 양키스 투수 칼 메이스가 던진 공이 타석에 있던 채프먼의 머리를 강타했다. 채프먼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12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경기 중 사고로 선수가 사망한 유일한 사건이었다. 야구는 위험한 종목이다. 명예의전당에 오른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의 첫 문장을 ‘두려움(Fear)’이라는 한 단어로 시작했다. 140g짜리 야구공은 한 손으로 갖고 놀기 편하지만, 150㎞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순간 무서운 흉기로 변한다. 그 공을 받는 포수는, 그래서 두꺼운 가슴보호대와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쓴다. 공을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