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정부 부처별 추진 전략이 나오고, 기업의 탄소중립 선언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지구의날, 40개국 정상이 참여한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이틀 전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했고, 어제와 오늘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탄소중립에 추진 속도가 중요하다면, 추진 방향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방향은 기술과 경제 일변도였다. 기술 혁신으로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발상에는 현재의 생활양식은 변함없이 유지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생활양식의 전면적 전환 없이 제한된 시간 내에 기술만으로 탄소중립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탄소중립은 감축 못지않게 시간과의 싸움이다. 며칠 전 기상청은 1.5..
지난 4월 열린 기후정상회의에서 한국의 기후행동을 강화하기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환영한다. 한국이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처럼 2050년 온실가스 ‘넷제로’ 목표를 법제화하고 탈석탄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넷제로 추진 방향을 제시해줄 탄소중립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한 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나는 영국의 2008년 기후법에 근거해 설립된 독립기관인 기후변화위원회(CCC)의 의장직을 맡고 있다. CCC는 기후변화에 관한 영국 정부의 정책을 점검하고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는 넷제로 달성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 목표에 대해 조언을 한다. 여기에는 매년 영국의 온실가스 감축 경과를 평가하고, 검토한 내용을 의회에 보고하는 업무가 포함된다. 지금까지 CCC가 수행해온 정기적인 ..
일본 정부는 지난 13일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의 탱크에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기로 했다. 이는 일본 국내외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중국, 러시아, 대만이 정부 차원의 우려를 표했고, 국내 관련 단체들도 항의하면서 결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국내외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2년 뒤 오염수 해양 방출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염수 저장탱크들의 용량이 내년에 다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부지 내 추가 공간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높지 않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들기에도 궁색하다. 필자는 일본이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결정한 것은 2023년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재처리시설 가동을 염두에 두고 삼중수소는 안전하다는 인식을 국내외에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 롯..
식목일을 바꿀 때가 왔다. 세계 40여개국에서 기념하고 있는 식목일은 이집트의 1월15일부터 말라위의 12월 두 번째 월요일까지 각 나라의 지리적 위치와 기후에 따라 다양하다. 식목일은 나무를 심었을 때 나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시기, 즉 나무의 뿌리는 자라기 시작하였으나 잎이 나오지 않는 때가 적당하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수탈로 황폐해진 산림을 녹화하기 위해 중부지방에 나무 심기가 적합한 4월5일을 1946년 식목일로 지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물론 전 지구의 기후가 바뀌고 있다. 우리 국토 면적의 63%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은 기후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국지성 집중호우의 빈발로 인한 산사태 증가, 겨울철 고온건조일수의 증가로 인한 산불피해 대형화, 고산지역..
미국 행보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 재임 기간만큼 지연된 기후변화 대응 시간을 만회하고자 민·관·산·학이 움직이고 있다. 가장 먼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파리협정 복귀’라는 행정명령에 잉크를 묻혔다. 2015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재임 당시 체결된 이 협약은 기후위기로 심화될 전 지구적 재앙을 막고자 산업화 시대 대비 평균기온 1.5도 이상 상승 억제를 목표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감축을 국가 목표로 채택·이행한다는 국제적 합의다. 이를 달성하고자 현재 한국 출신 이회성 의장이 이끄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주문하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는 가히 기호지세다. 저명한 기후과학자 마이클 만, 퓰리처상에..
기후위기와 함께 탈탄소 에너지 전환이 화두인 시대에 친환경적이고 무한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핵융합발전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들릴 법하다. 핵융합발전 관련 뉴스가 국내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지도 오래고, 많은 일반인들은 핵융합발전이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것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과연 그런가? 지상에서 핵융합 반응을 이루려면 연료 온도를 2억도까지 올려야 한다. 이러한 초고온에서 연료는 완전히 이온화되어 핵융합 반응을 발생시키는 ‘연소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현재 연소 플라즈마의 통제는 여전히 과학적 난제이다. 핵융합 연료인 삼중수소를 바닷물에서 거의 무한하게 얻을 수 있음을 보이려면 핵융합로 내 자급을 위해 삼중수소를 생산·회수·저장·공급하는 연료주기 기술의 개발을 국제..
친척들을 만나지 않은 채로 명절이 지나갔다. 연휴 내내 미세 먼지가 많았어도 춥지는 않았다. 나의 외할머니 이존자씨라면 충청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가. 날이 푹햐.” 존자씨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푹하다’라는 말이 좋았다. 겨울날이 퍽 따뜻할 때 푹하다고 소리내어 말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 말을 얼굴 보고 들을 수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다 같이 모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존자씨는 살다 살다 이런 세상은 처음이라며 탄식했다. “입을 아주 틀어막는 세상이자녀.” 그게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임을 한발 늦게 알아듣고 나는 막 웃었다. “울애기, 많이 웃어.” 그는 아직도 나를 ‘아가’ 혹은 ‘울애기’라고 부른다. 세상은 세상이고 울애기는 참말로 기특하다고, 열심..
기후변화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전보다 1도 상승했다. 수많은 매체와 논문, 학술지에서 이 ‘1도’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기온이 10도 이상 오르내리는 일교차나, 계절별로 한여름과 한겨울의 기온 차가 30도 이상 나는 경우를 본다면 평균기온 ‘1도’의 상승은 아주 미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기온 1도의 상승은 체온 1도 상승과 맞먹는다. 체온이 37도인 사람에게 1도가 오르면 38도가 된다. 열이 나고 아픈 상태가 되는 것이다. 지구의 1도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지금 열이 나고 아픈 상태인데, 우리가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과 같다. 실제 하루에도 10도 이상의 기온 변화가 있고,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