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권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숫자가 존재한다. 예로부터 동양이나 서양에선 1을 근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수로 여겼다. 2는 여러 문화권에서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수로 통했다. 중국에선 두 쌍의 부부가 같은 날 결혼하는 것을 금기시했고, 유대교 율법은 남자가 두 여자나 두 마리 개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금했다. 숫자 3을 신성시한 수메르인들은 ‘아누’ ‘엔릴’ ‘엔키’ 등 3명의 신이 하늘과 대지, 물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동양에선 4를 죽음과 저주를 의미하는 수로 여기지만 서양에선 ‘질서와 통합’을 의미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처음 4개의 수인 1, 2, 3, 4를 더하면 완전한 숫자인 10이 되고, 세상이 물·불·흙·공기라는 4원소로 구성된 것만 봐도 4는 조화로운 숫자라고 했다. 5는 인간의 오..
이제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의 심판대에 올려놓았다.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력을 삿된 비선조직에 넘겨 국정을 농단하고, 세월호 등 수많은 재난과 사고에서 직무유기와 무능함으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구히 확보’(헌법 전문)한다는 국가의 존재 목적조차 저버렸다. 우리는 광장의 돌팔매를 대신한 탄핵의 절차로써 대통령이 벌인 탐욕과 불통의 막장드라마를 종결짓고자 한다. 사실 탄핵심판은 이 패악의 대통령에게 공식적이고 영구적인 징벌을 내리는 하나의 요식적인 법 절차에 불과하다. 지금 진행 중인 특별검사나 국정조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기에 국정농단 사건의 조사와 심판을 맡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그들의 입으로, 그들의 통치용어로 되뇌게 함으로써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기 40분 전에 조대환 변호사를 새 민정수석에 임명했다. 검사 출신인 그는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을 지냈다. 2014년 새누리당 추천 몫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 부위원장을 맡아 특조위를 무력화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을 상대로 정치편향적이라고 사퇴를 요구하며 결근투쟁을 벌였는가 하면, 세월호 진상조사를 혹세무민이라며 특조위 활동을 세금 도둑이라고 몰아 유족들 가슴을 난도질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로 추천됐다가 낙하산 비판이 일자 사흘 만에 물러났다. 지난 8월엔 현직 부장판사가 오피스텔 성매매로 적발되자 “성매매금지법은 폐지돼야 하고 성매매하는 사람 누구도 처..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의 이후 경제 컨트롤타워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탄핵으로 정치적 리스크가 경제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한국 경제가 표류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수출과 내수는 물론 생산·투자 등 지표가 모두 부진에 빠졌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대로 떨어졌다. 대외적으로도 미국 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가 등장하는 등 불확실성투성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년 경제운용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는 탄핵결의 뒤 경제장관회의 등을 열어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대외 신인도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업무를 지속 수행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 부총리에게 경제를 계속 맡기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야당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다. 정국을 수습하는 것은 물론 구체제를 청산하고 시민들이 요구한 개혁을 완수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에서 야당이 수권정당, 대안세력으로 인정받느냐는 앞으로 어떤 능력을 얼마나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박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고, 이를 대행하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권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국 주도권은 국회, 특히 야당에 돌아갔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시민으로부터 박 대통령과 함께 사실상 탄핵받은 처지여서 나설 입장이 못 된다. 이달 임시국회 운영이 중요한 이유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안정적 국정운영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방지 대책 등 시급한 현안은 국회 상임위를 통해..
‘밥상 이야기’라는 메뉴를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www.jirisan.com)가 있다. 사이트 주인장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밥상 사진을 올린다. 반찬과 식재료에 관한 간단한 코멘트와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소소한 이야기가 함께 올라온다.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이 아니라 집밥 사진이다. 아침, 점심, 저녁 대중없고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밥상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남의 집 밥상 구경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이다. 아무리 서먹한 사이라 해도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뭘 먹느냐에 따라 회의석상에서 나올 일 없는 이야기도, 숟가락을 놓고 컵에 물을 따르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풀려나온다. 그 사람과의 새로운 ..
“당신은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제 국회의 최순실 국정농단 2차 청문회.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증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독설을 쏟아냈다. 게이트의 책임자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참지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잘 모르겠다”(60번), “부끄럽고 죄송하다”(24번)란 답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청문회 후반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최순실 이름도 못 들었다”고 잡아떼던 그를 한 방에 무너뜨린 동영상이 등장한 것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누리꾼의 제보를 받아 공개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 동영상에는 최태민 관련 의혹에 대해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순실의 이름도 여러 차례 언급된다. 박 후보의 법률지원단장..
최순실 조카 장시호의 청문회 출석 소식을 다룬 기사도 어김없이 그 단어로 도배됐다. 의존명사 ‘년’이다. ‘닭년’ ‘무당년’ ‘미친년’…. 병신년(丙申年)을 앞둔 지난해 말부터 박근혜 관련 기사 댓글 서너 개 중 하나꼴로 ‘병신(病身)년’이란 욕이 들어갔다. “때론 언어가 의식과 행동을 규정한다”며 병신년 같은 말을 쓰지 않겠다는 지난해 12월31일 민주노총 성명의 울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의 범죄 혐의가 짙어질수록 욕설의 빈도는 높아지고, 강도는 세졌다. ‘년’은 11월5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2차 범국민행동’ 때 광장으로도 나왔다. 주최 측 무대 위아래에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저잣거리 아녀자” “강남 아줌마” 같은 말이 터져나왔다. ‘병신년’도 빠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