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명부(冥府)다. 저승이란 곳이다. 저승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이 있다고 한다.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에 앉아 있다. 염라대왕 앞에는 아홉 면의 업경(業鏡)이 있다. 하나하나의 거울에 한평생 지었던 죄업이 차례로 떠오른다.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다. 일종의 CCTV다. 꼼짝 마라다. 이승엔 그런 거울이 없다. 그러니 마음 놓고 ‘모른다’고 발뺌할 수 있다. 김기춘은 1975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총지휘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이 대략 200~300명이었다는데 이 중 10%가량이 간첩으로 몰렸다. 혹독한 구타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 피해자들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김기춘은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기..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39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증인 1명 심문에 적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재판이 2주 이상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나 우 전 수석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사안에 ‘모른다’고 답한 인물들이다. 헌재 출석 요구를 받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모두 불응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나 주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인 송수근 제1차관과 문체부 간부들이 어제 정부세종청사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김종덕 전 장관과 김종 전 차관에 이어 조윤선 장관까지 줄줄이 구속되자 부처 차원에서 참회하고 자성의 뜻을 밝힌 것이다. 송 차관은 성명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보루가 돼야 할 문체부가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면서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으며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특별검사가 진실을 밝히는 일에 적극 협조하고 책임도 감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체부의 참회를 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체부를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챙기는 도구로 마음껏 주물렀다. 자질이 없는 사람들을 장차관으로 기용해 사기업도 못할 일을 서슴..
며칠 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결정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언론에 의해 잠깐 동안 제기됐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이번의 영장 기각결정은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론에 별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본다. 심지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그것이 이 부회장에 대한 무죄판결로 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유무죄를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라 원활한 수사를 위해 피의자를 구속해 신병을 확보해둘 필요성이 있느냐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이다. 따라서 법원의 영장기각은 현재 상황에서 특검 수사를 위해 이 부회장의 구속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라는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주말 동시에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문체부가 오늘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그 숫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한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은 작가, 최고 권위의 국제 문학상 수상 작가까지 망라돼 있다. 그들이 한 활동이라 해 봐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거나..
시민의 대표자로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은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정치인은 직무와 관련된 결정과 행위를 논리적으로 철저히 시민들에게 설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것은 위임받은 권력을 통치행위로 행사하는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격이며 도리이다. 직무 수행이 온전치 못했거나 판단 착오를 범했을 때, 더욱이 그것이 법규 위반으로 이어졌을 때는 그에 대한 입장 또한 명료한 언어로 밝혀야 마땅하다. 오늘의 정국은 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권력은 사적인 삶을 위한 도구로, 권력을 가진 자를 법치영역의 예외자로 만드는 일탈적 힘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상식적 언어의 변질, 부재라는 현상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언어..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출범한 청년희망펀드 모금이 청와대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청년희망펀드 모금 규모까지 정해줬다는 진술이 나왔다. 어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전경련 이모 상무는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박 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를 발표한 이후 청와대에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지시가 내려와 기업인들이 청년희망펀드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상무는 또 “기업인들이 1200억~1300억원 정도 참여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취지를 전달받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2015년 9월15일 국무회의에서 제안해 설립된 청년희망펀드의 실제 모금액은 1450여억원으로 청와대의 모금 목표액과 거의 일치한다. 이 상무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청년희망펀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재직 시절 극우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반대집회를 조직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규철 대변인은 어제 이런 내용으로 수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객관적 물증을 확보하면 추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조 장관은 2014년 6월 정무수석에 발탁된 뒤 우익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게 했다. 조 장관은 이들 단체가 시위에서 외칠 구호도 챙기고,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고소·고발까지 간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함께 근무했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의해 어느 정도 추정된 바였다. 비망록에 따르면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은 누군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