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지체된 정의는 정의에 대해 거부하는 것과 같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부정된 것이다.”(마틴 루서 킹 )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꺼내기도 무참하리만큼 참으로 너무 ‘오래’ 걸렸다. 청춘의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몸과 마음이 병든 채 해방 조국에 귀국한 이래 일흔세 해가 흘렀다. 일본에서의 법정 싸움까지 포함하면 소송 제기 21년, 국내 소송 기간만 따져도 13년이 걸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해당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이제야 나왔다. 늦어도 너무 늦었기에 소송을 낸 강제동원 피해자 4명 중 3명(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은 ‘제사상 판결문’으로 받아보게 됐다. 이춘식 할아버지(94) 홀로 승소가 ..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3년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춘식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은 이씨 등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제강점기 형성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효력이 없음을 선언한 판결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먼 이국땅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와 후손들의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다행이다. 그러나 사법농단으로 확정 판결이 5년이나 미뤄진 것은 유감스럽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
27일 구속된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양승태 대법원’ 당시 법원행정처가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유동수의 2심 재판 전략을 짜줬다는 혐의가 적혀 있다. 유동수는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벌금 90만원이 나와 의원직을 유지했다. 특허 무효제도를 도입하려던 특허청장을 국정감사장에서 혼내달라는 요청을 유동수가 수행한 대가로 법원행정처가 재판 전략을 써 제공한 것이다. 임종헌은 상고법원 법안을 발의한 자유한국당 의원 홍일표에게도 ‘법률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을 때 임종헌이 법원행정처 양형위원회 판사에게 대응 전략을 짜주라고 지시한 혐의도 영장에 적혔다. 사법농단 사태에서 다시 확인한 건 ‘양승태 대법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이하 행정처) 차장에게 오는 15일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으라고 통보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역임하며 재판거래·법관사찰의 실무 책임자 역할을 한,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이다. 임 전 차장의 검찰 소환은 지지부진하던 사법농단 수사가 정점으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진술 여하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및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행정처장 등 옛 대법원 수뇌부의 소환 시기와 신병처리 방향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임 전 차장의 혐의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과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를 둘..
검찰개혁에 이어 법원개혁에 대한 국민 여망이 뜨겁다. 법원이 사법개혁 귀착지라는 점에서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지만 사법부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끊임없이 검찰개혁이 논의되고 있는 사이에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에 총력을 쏟았다. 현직 법관이 입법 로비를 위해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찍이 몽테스키외 이래로 정립된 삼권분립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에 가깝다. 법관 사찰, 재판거래 의혹, 법원비리 수사 기밀 유출 및 비자금 조성 사건 등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모습이 기업의 행태와 흡사하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는 국민들은 참담한 심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관이 누구던가. 검은 천으로 두 눈을 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2015년 대법원이 허위 증빙서류를 꾸며 일선 법원의 예산 수억원을 빼돌린 뒤 유용한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라고 4일 밝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 돈을 상고법원 추진에 나선 고위 법관들에게 대외활동비·격려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비자금 조성을 엄단해야 할 대법원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법원이 범죄자들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범죄의 기술을 익힌 것인가. ‘양승태 사법농단’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법원의 행태는 건설회사 등의 비자금 조성 양태와 다를 게 없다. 2015년 당시 행정처는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를 현금으로 인출한 뒤 비밀리에 인편으로 건네받아 행정처 예산담..
그는 법원의 예언자였을까. “한 고위 법관은 ‘양 후보자가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 사법행정을 통해 재판에 영향을 줄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한겨레 2011년 8월19일자). ‘양 후보자’는 기사 게재 전날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양승태 변호사를 가리킨다. 우려는 적중했다. 이제 양승태라는 이름 뒤에는 사법농단이란 문구가 따라다닌다. 그런데 사법농단이 적확한 표현일까. 군이 적을 향해 겨눠야 할 총부리를 시민에게 돌렸다면? 군사쿠데타라 부른다. 법관이 사실과 증거 대신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재판을 했거나 계획을 세웠다면? 사법쿠데타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심한 표현이라는 시각이 있겠다. 사람이 죽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1·2심 판결을 깨고 KTX 승무원들의 복직 길을 막아서자 세 살배기 딸을 둔 해고자가 목숨을..
‘대한민국 대표 노동변호사’가 대법관이 됐다. 국회는 26일 본회의를 열어 김선수 변호사 등 대법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김 변호사는 다른 두 후보자와 달리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 재야 출신이다. 2015년부터 줄곧 대한변호사협회 추천으로 대법관 후보군에 올랐지만 번번이 대법원 문턱에서 좌절하다 이번에 마침내 입성했다. ‘대법관 김선수’의 등장이 대법원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 대법원의 주류는 고위 엘리트 법관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법관이 되고 기록을 통해 세상을 보아온 사람들이다. 적지 않은 대법원 판결이 기계적 법리 해석에 치우치고, 다원화된 가치와 시각을 반영하는 데 실패해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 변호사는 기존 대법관들과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