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노브라 사진을 올리고 말들이 많았다. 이때 무서워하고 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외모 평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칭찬도 어쨌든 평가 아니냐.” (JTBC2 ) “2019년 4월 11일 낙태죄는 폐지된다. 영광스러운 날! 모든 여성에게 선택권을.” (인스타그램)지난 14일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진 직후부터 그가 남긴 치열한 분투의 기록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여성이라면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용기를 기억하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터져나왔다. ‘악플의 희생양이 된, 요절한 20대 여자 연예인’으로 설리의 삶을 축소할 수 없다는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다.설리..
아이와 영화 를 보기로 한 날, 낡아 고장 난 휴대폰을 먼저 바꾸기로 했다가 기기 변경 중에 휴대폰에 들어 있는 데이터를 잃어버렸다. 즉흥적인 결정이라 백업을 미처 하지 못해서 변경할 기기만 골라두고 다음 날 다시 올까 잠깐 망설였으나 아무 문제없이 데이터를 모두 옮길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데이터는, 모든 사라진 것들이 그렇듯 그중 가장 중요한 데이터이다. 물론 나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데이터인 줄을 사라지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그날은 저녁 내내 앓았다. 영화를 본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데이터 복구센터에 맡긴 저장장치마저 복구 불가라는 소식을 듣던 날, 오기로라도 그 영화를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가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던가. 실종된 딸을 데이터로 찾는..
하마터면 우연히 만난 그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라고 인사를 건넬 뻔했다. 그 사람은 나를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집은 얼마나 큰지 결혼은 했는지 한때 어떤 병을 앓았는지까지 미주알고주알 파악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그 사람의 남편이나 부인을 본 적 있고, 장인 장모에 시아버지 시어머니까지 낯설지 않고, 그 사람의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지켜봤고 자연스레 첫째 아이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고 둘째 아이의 성격도 알고 있다. 그 사람의 입맛도, 즐겨 입는 옷은 어느 회사제품인지도, 어느 디자이너의 신발을 신는지까지도 알고 있으니 잘 아는 사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와 그 사람의 ..
페미니즘, 그리고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 주장하는 모든 말은 항상 ‘논란’이나 ‘잡음’으로 취급되어 왔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사회가 아니라는 말, 보편적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배제와 차별을 거론하는 말을 ‘잡음’으로 취급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특정 집단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몇 주간 유례없는 빈도수로 한국 언론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기사에 올려왔는데, 그 결과 예외 없이 페미니즘은 ‘잡음’이 되어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배우 유아인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상에서 했던 발언이었다. 페미니스트가 연일 검색어 상위권 순위에 올랐고, 상당수의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공간에서 유아인의 발언과 이에 대한 반론, 변론, 보도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
학교에 다닐 때 이라는 오래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배경은 뉴욕시,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에 회부된 소년에 대한 배심원 합의가 진행 중이다. 12명의 배심원들이 만장일치 합의를 끌어내서 그 결과를 판사에게 알려주면 된다. 배심원들은 유죄냐 아니냐만 결정할 수 있다. 판사는 만약 유죄 합의를 이끌어낼 경우 소년에 대해 사형을 언도하겠다고 귀띔한다. 배심원들은 최종 합의를 이끌어낼 때까지 밀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첫 배심원 투표 결과는 무죄 1 대 유죄 11. 모든 배심원이 유죄를 생각하는 가운데 무죄라고 손을 든 배심원은 끊임없이 사건의 면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것을 주장한다. 어떤 배심원은 야구 보러 빨리 경기장에 가고 싶어 평결을 빨리 끝내자고 하고, 또 누군가..
뉴욕타임스가 13일 댄 베이커 수석편집국장 이름으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자사 기자들의 트위터·페이스북 사용 안내다. 핵심 사항 첫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기자들은 당파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관점을 고취하고,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뉴욕타임스의 명성을 깎아먹는 어떠한 공격적인 코멘트를 해선 안된다. 뉴욕타임스가 객관적으로 다루려는 이슈를 두고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언론인 E P 데이비스가 “기자들은 개인 의견이나 언론사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예외적인 경우를 빼곤 불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게 1884년이다. ‘기자 개인’ 의견 표명 자제는 저널리즘의 오랜 원칙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
길고 긴 추석을 보내고 나니 한 해가 거의 다 끝나가는 느낌이 벌써 든다. 낮에는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넘치지만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만 들어서도 소매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차다. 떨어지는 은행의 구릿한 냄새들이 영락없는 가을인데 나이가 든 탓일까, 사는 일에만 골몰한 탓일까, 마음에는 가을이 물들지 않는다. 사색의 계절이니, 독서의 계절이니 하는 이야기가 다 무슨 말인가 싶다. 아침 드라마 사이사이로 채널을 바꿔 홈쇼핑을 보면서 올해는 온열매트를 장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다가 과일가게 좌판에 놓인 붉고 말랑한 연시를 보면서도 달콤하겠다는 생각보다 올해 배추 값은 또 얼마나 하려나 아직 한 달도 더 남은 김장철 걱정부터 든다. 친정에서는 김장을 할 때 단맛을 내기 위해 연시를 넣는다. 연시가 ..
TV 인기 예능프로그램 MBC 에 출연한 방송인 김구라씨와 김생민씨를 놓고 ‘서민 비하’ 논란이 뜨겁다. 최근 ‘생활비 절약’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해 인기를 얻고 있는 김생민씨(44)에 대해 김구라씨(47)가 ‘짠돌이’ ‘자린고비’라는 등의 표현으로 비하했다는 비판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방송은 지난달 30일 방영된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 편이었다. 이날 패널로 초대된 김생민씨 등은 실생활에서의 돈 씀씀이와 절약 습관을 얘기했는데, 김구라씨가 이를 직격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그는 “짜다고 철든 건 아니다” “생활습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김생민씨를 비꼬기도 했다. 방영 이후 SNS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김생민씨의 일상이 우리 일상과 흡사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