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9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혼, 비출산을 결심하는 청년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계속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청년 여성들의 결정이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종종 들린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여성들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결혼 시장에서 밀려난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일도 있었다. 미디어에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행복하게 보여주는 것은 나쁜 프로그램이고 미성년자 시기부터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게 된 어머니를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발언까지 나왔다. 우리 미디어가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말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혈..
판사와 검사들은 파업을 결의했다. 법복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행진을 하고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법조 파업 이야기다. 판검사들은 법무부 예산 감축에 항의하고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재정경제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쉬지 않고 50건의 재판을 소화하느라 몇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의 얘기를 단 7분밖에 들어줄 수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법원이 이 위험천만한 서커스를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사법부 노동자들과 판검사들이 함께 파업을 벌이는 것은 프랑스에선 드물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법전을 불태우는 ‘과격한’ 행위도 벌어진다. ‘자영업자’인 변호사들도 종종 이 파업에 가세한다..
대학 시절, 를 배웠다. 물론 자발적 학구열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일종의 필수 과목이었다. 열등생이었던 나는 뭔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다. 특히 맹자와 왕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앞부분 구성 자체가 괴로웠다. 맹자는 융통성 없는 꼬장꼬장한 노인이었던 반면, 왕들은 눈치가 너무 없었다. 첫머리에서 양혜왕은 맹자에게 묻는다. 어르신께서 먼 길 와주셨으니 우리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죠? 보통 사람들은 허허 웃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시느라 수고했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맹자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하필 이익을 말씀하셨습니까? 오직 어짊과 의로움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고는 의로움이 왜 이익보다 중요한지에 대한 설교가 하염없이 이어진다.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 그래도 왕인데? 하는 생각..
11월27일 일요일 의협·간호조무사 등 13개 보건의료단체가 국회 앞에서 간호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간호사 측은 21일 여의도에서 여야 공통 대선 공약인 간호법 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한 바 있다. 양측의 공방이 매우 뜨겁다.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의료법 제1조)을 둔 의료법에는 의료인으로 의사, 간호사를 규정하면서, 각자의 업무를 의사는 의료, 간호사는 진료 보조와 간호로 하고 있다. 진료 보조는 의사의 지도 감독하에 시행하며, 간호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이번 간호법은 간호사의 두 가지 업무 중 하나인 간호를 분리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무면허 의료행위 처벌’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보자. 간호사가 환자의 피부를 봉합하는 시술..
정부는 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애도의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슬프지만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적 애도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살아남은 자를 때로 병들게 한다. 이 세상에 남겨진 자들이 이전처럼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슬픔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랑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떠난 이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다시 애착을 가질 새로운 대상을 이 세상에서 찾는 일, 이것이 정신분석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애도’다. 하지만 철학자 데리다는 이런 애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애착을 끊어내는 일, 그 사랑을 새로운 대상에 옮겨놓는 일..
지난달 2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저출생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별안간 동성애와 동성혼을 언급했다. 이왕이면 동성 부부뿐 아니라 인종과 장애를 막론하고 구성되는 다양한 가족 모델에 재생산권과 이후의 안정적인 생애주기를 보장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럴 리가. 김진표 국회의장은 의원 시절부터 보수 교계에 적극 힘을 실으며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일삼아온 인사로, 시민사회로부터는 오래전부터 비판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개신교 등에서 동성애·동성혼 치유회복운동을 포함해 생명존중운동으로 승화해 추진한다고 말한다. 국회의장이나 되는 이가 종교계의 움직임을 대안인 양 취급하는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동성애와 동성혼을 치유해서 저출생 문제를 해..
그들은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는 무한 책임이 아니라 ‘사법적 책임’과 유가족의 ‘보상받을 권리’를 말한다. 책임은 대법원 판결까지 미뤄지고 생명은 돈으로 환산된다. 그들은 사과하지 않는다. 버티기 힘들면 ‘죄송한 마음’이라는 주어 없는 말로 넘어가고, 합리적인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로, 상식적인 물음에는 ‘언급이 부적절하다’로 비켜간다. 그들은 위로 갈수록 더 무책임하고 더 뻔뻔하다. 그들은 국민 안전에 무한 책임을 진다며 도로 위의 명백한 위험은 외면한다. 화물차 사고 사망자가 매년 700명에 이르고, 화물노동자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겨우 생활비를 건진다. 2020년부터 올해 말까지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적용하는 현재의 안전운임제는 과속·과적·과..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유치원생만 돼도 ‘반지’가 뭔지는 안다. 하지만 반지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반지’를 써야 할 표현에 엉뚱한 말을 쓰는 일도 흔하다. ‘가락지’가 그것이다.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고리 하나를 얘기하면서 “이 가락지는 네 시어머니의 유품이다”라는 식으로 잘못 말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옛날을 무대로 한 드라마에서 옥으로 만든 고리를 가리킬 때 유독 ‘가락지’가 많이 쓰인다. 하지만 “장식으로 손가락에 끼는 두 짝의 고리”를 한자말로 ‘지환(指環)’이라 하고, 이를 달리 부르는 말이 ‘가락지’다. 즉 두 개가 한 쌍을 이루는 것이 가락지이고, 그 반쪽만 있는 것이 반지다. 한자도 절반을 뜻하는 ‘半(반)’에 손가락을 의미하는 ‘指(지)’를 ..